색의 전도 가설:

내 노랑이 당신의 빨강일지도 모른다

by kim hojin

나는 어릴 적 색에 대한 남들과 다른 생각을 했다. 아버지가 색약(심한색약)이었기 때문이다. 갈색과 초록을 구분하지 못하는 아버지를 보면서 단순한 호기심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우리가 같은 색을 보고 있다는 확신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눈의 모양도 다르고 눈동자의 크기도 모두 다른데 내가 노랑이라 부르는 빛을 다른 사람은 빨강처럼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노랑’이라고 부르며 살아간다.


이런 의문은 철학에서 말하는 색의 전도 가설(색의 전도 가설은 우리가 같은 색을 본다고 확신할 수 없다는 문제를 제기한다. 내가 보는 노랑이 사실은 당신의 눈에는 빨강처럼 보일 수도 있다는 가정이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그것을 ‘노랑’이라 부르고 같은 세계를 공유한다고 믿는다.)과 맞닿아 있다. 즉 서로 다른 감각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언어와 합의를 통해 같은 경험을 공유한다고 믿는 가설이다. 나는 막연한 호기심을 품은 채 몇몇 논문을 찾아보기도 했지만, 색의 주관적 경험은 인지의 문제와 맞물려 경계가 뚜렷하지 않았다. 그래서 더 깊이 나아가기보다는 질문만 남겨둔 채로 시간이 흘렀다.


미술을 공부하면서 보색 대비와 조화의 이론을 접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배운 대로 따라가면 설명은 명확했지만 이상하게도 보색의 개념이 자연 속에서는 너무 자주 드러나서 오히려 인위적인 것처럼 느껴졌다. 열매와 잎사귀, 푸른 하늘소에 노란색점. 대립과 조화는 이미 자연의 질서 속에 있었고 그 사실은 나를 낯설게 했다. 색은 문화적 학습의 산물이기도 하다. 한국 전통의 오방색은 우주의 원리를 상징하고, 서양 미술의 색채 이론은 또 다른 질서를 만든다. 하지만 조금만 거슬러 올라가면 그 기원은 단순하다. 노랑은 땅, 파랑은 하늘, 빨강은 불 같은 근원적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다. 우리는 자연에서 색을 배우고 그것을 사회 속에서 언어로 굳혀낸다.


지금 돌이켜보면 색은 나에게 최소한의 합의된 감각이다. 하지만 그 합의는 완전히 동일한 경험이 아니라 서로의 차이를 지닌 감각들이 기묘하게 연결된 교차점이다. 나의 노랑이 당신의 빨강일지라도 우리는 그것을 같은 이름으로 부르고 그 안에서 함께 살아간다. 색은 결국 공유할 수 없는 것을 공유 가능한 것으로 바꿔주는 은밀한 약속이며 그 틈에서 우리는 여전히 저마다의 세계를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기계가 인간을 대신할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