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인간 예술의 본질적 속성

by kim hojin

인간의 예술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인간의 예술은 경험과 감각, 그리고 타인과 나누려는 소통의 욕망에서 출발한다. 삶의 사건은 되돌릴 수 없는 흔적으로 남아 기쁨과 슬픔, 고통과 결핍을 비가역적으로 쌓아 올린다. 예술은 이 흔적을 표현하려는 행위로 나타나며, 그 표현은 단순한 정보 전달이 아니라(가끔은 있다.) 독백 같은 진실의 형식을 띤다. 타인을 향해 있지만 동시에 내면의 고백이기도 한 이 모순된 구조가 예술을 인간적인 것으로 만든다.


이 지점에서 인공지능의 생성 방식은 다른 결을 갖는다. 알고리즘은 삶을 겪지 않고, 고통과 기쁨을 체험하지 않는다. 대신 방대한 데이터를 학습해 패턴을 분해하고 재조합한다. 언뜻 보기에 이는 반복 가능한 절차 같지만 실제로는 완전히 동일한 반복이 불가능하다. 같은 조건을 입력해도 결과는 늘 미세하게 달라진다. 이 확률적 편차는 인간 경험의 비가역성과는 다르지만, “되돌릴 수 없는 차이”라는 점에서 기묘한 유사성을 보여준다.


포스트모던 시대 이후 예술은 또 다른 전환점을 맞았다. 장 프랑수아 리오타르는 [포스트모던의 조건 1979]에서 근대 사회를 지탱하던 대서사가 무너졌다고 진단했다. 진보, 이성, 계몽과 같은 보편적 서사는 더 이상 예술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되지 못한다. 대신 모든 지식과 예술은 다양한 언어 게임 속에서만 정당성을 얻는다. 이 관점에서 보면 예술에 절대적인 기준은 존재하지 않으며 맥락에 따라 무엇이든 예술로 간주될 수 있다. 뒤샹의 레디메이드가 사물을 예술로 변모시켰듯이 인공지능의 산출물 역시 포스트모던의 조건 안에서 예술로 포섭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모든 것이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선언 자체가 아니다. 인간의 예술이 경험과 감각, 고통과 기쁨의 비가역성 위에서 성립한다면, 인공지능의 생성은 확률적 편차와 반복 속에서 성립한다. 전혀 다른 기원을 갖지만 두 방식은 결국 차이를 만들어내는 행위라는 점에서 닮아 있다.

따라서 인공지능을 단순히 인간 창작의 보조 도구로 이해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인공지능은 인간이라는 이데아를 반영해 태어난 하나의 미메시스적 산물이자 우리의 거울이다. 그러나 거울은 양방향으로 작동한다. 언젠가는 인간이 인공지능을 닮아가며 배우는 국면이 도래할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인공지능 미학은 인간 중심 미학의 단순한 확장이 아니라, 인간과 기계가 서로를 비추는 거울 사이에서 새롭게 형성되는 전혀 다른 축 위에서 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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