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본 3회의 주제를 ‘기계와 모방의 역사’로 설정하였다. 여기서 말하는 기계란 사진기나 인쇄기와 같은 근대적 발명품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기계란 인간이 창작을 위해 근원적으로 사용해 온 도구들을 은유하는 개념이다. 인간은 자연을 관찰하고 두려워하며 그것과 소통하려는 욕망 속에서 도구를 만들었고 그 도구는 생존을 넘어 감각의 확장을 가능케 했다.
북은 천둥소리를 흉내 내며 만들어졌고, 인도네시아의 전통 타악기인 자블란(zablan) 역시 자연의 울림을 재현하려는 시도에서 비롯되었다. 거대한 타악기의 반복적인 울림은 바람과 천둥 같은 자연의 힘을 닮아 있으며, 인간은 이를 통해 자연과 소통하고자 했다. 불빛을 가두어 만든 전구 역시 마찬가지다. 인간은 태양의 빛을 모방하며 어둠 속에서도 빛을 재현하고자 했다. 이처럼 초기의 도구와 기계는 단순한 생존의 수단을 넘어자연을 이해하고 삶을 확장하려는 인간의 창조적 시도이기도 했다.
기계의 발달은 곧 예술 장르의 변화를 이끌었다. 인쇄술은 판화를 통해 이미지를 대량으로 확산시켰고 예술을 사회적 공유물로 만들었다. 사진기의 발명은 회화가 담당하던 재현의 기능을 기계가 대신하게 하면서 회화를 재현의 예술에서 표현의 예술로 이동시켰다. 더 나아가 전자기술과 영상 매체의 등장은 미디어아트를 탄생시켰고 디지털 네트워크는 예술을 실시간으로 생성하고 공유하는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냈다. 이렇게 예술은 언제나 기계와 함께 변형되고 확장되어왔다.
예술과 기계는 사실상 하나의 생태에서 자라난 쌍생아와 같다. 예술은 자연을 재현하고 표현하려는 시도였고 기계는 그것을 가능케 하는 도구적 장치였다. 따라서 기계의 역사를 되짚는 일은 곧 예술의 역사를 되짚는 일이기도 하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모방이다. 모방은 단순한 흉내가 아니라 창작이 발생하는 가장 근본적인 방식이었다. 인간은 결코 무(無)에서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없다. 자연과 세계에서 배운 형상과 리듬을 빌려오고, 기억과 경험을 가공하며, 때로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수많은 모방의 층위를 거쳐 창작을 수행한다. 그러므로 모방은 창작의 부차적 요소가 아니라 창작을 성립시키는 본질이다.
이 지점에서 오늘날의 인공지능을 떠올리면 흥미로운 평행이 드러난다. 인공지능 역시 데이터를 모방하고 패턴을 재구성하며 결과물을 생성한다. 인간이 자연을 모방해 예술을 만들어온 것처럼 인공지능도 이미지를 학습하고 재배열하여 새로운 형상을 만들어낸다. 이 과정은 인간 창작 방식과 놀라울 만큼 닮아 있다. 그러나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인간은 자신이 창작한 방식과 의도를 스스로 서술할 수 있지만 인공지능은 그렇지 못하다. 설령 설명을 내놓는다 하더라도 그것은 실제 창작 과정의 반영이 아니라 결과를 근거로 한 사후적 추론일 뿐이다. 인간의 창작은 행위와 의도의 언어를 포함하지만, 인공지능의 창작은 데이터와 산출만으로 완결된다.
다시 돌아가 예술과 기계의 역사를 돌아보면 우리는 늘 모방을 통해 창작을 해왔다. 인공지능 역시 같은 계보 속에 놓여 있지만 동시에 인간과는 다른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 우리는 그 차이를 단순히 기술적 한계로 치부할 수 없다. 오히려 그것은 예술의 본질을 다시 묻는 중요한 단서일 수 있다. 따라서 이번 장을 마무리하며 이렇게 정리 하고자 한다. 인공지능의 한계를 분명히 인식하는 동시에 그 한계를 어떻게 수용하고 분석할 수 있을지가 앞으로의 논의에서 다루어져야 한다. 이는 곧 다음 장, 인공지능의 한계와 미학적 함의로 이어질 질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