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

Ⅳ. 삶·일상

by 이들멘

시골에서 올라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어린 나이에 겁도 없이 시계를 갖고 싶어 했다. 그것도 일반 시계가 아닌 자동 손목시계.

“시계 사주세요”라고 노래하며 틈만 나면 엄마에게 떼를 썼다.


한 달 이상을 떼썼으나 엄마는 “중학생이 무슨 시계를 차니?”라고 하면서 요지부동이었다. 그러나 시계를 갖고 싶다는 내 간절한 바람도 만만치 않았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어느 날부터는 방의 문 창호지에 ‘시계 사주세요’라고 바늘로 계속 찔러댔다. 그리고 그때 알았다. ‘부모가 자식을 이기지 못한다’라는 말이 틀리지 않는다는 걸. 엄마는 내 손을 잡고 청량리역 로터리에 있는 시계 상점으로 가자고 했다. ‘만세’를 부르며 신이 나서 단숨에 달려갔다. 하지만 태엽을 감아서 작동하는 보통 시계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흔들면 움직이는 자동 시계를 사달라고 졸랐다. 의외로 어머니는 선선히 그 비싼 자동 시계를 사 주셨다. 오리엔트 자동 시계! 대단한 물건이었다. 당시 태엽으로 가는 보통 시계를 차고 다니는 애들도 거의 없었는데, 자동 시계를 차다니! 뛸 듯이 기뻤다. 세상을 다 가진 심정이었다. 그 시계는 보물 1호가 되었다. 그때부터 꽤 오랫동안 내 손목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다.


그러다 대학교 2학년 때 어이없게도 헤어지고 말았다. 그 허전함이나 애틋함이란? 헤어진 장소는 원주 치악산이었다. 후배들과 MT를 갔다가 여관비 대신 볼모로 맡겼었다. 그때만 해도 후배들은 단단히 약속했다. ‘서울에 올라가서 돈을 마련해 줄 테니 시계를 찾으세요’라고. 그러나 서울에 올라온 이후에는 후배 중 어떤 녀석도 시계에 대해서는 말이 없었다. 나도 차일피일 미루다가 다시 치악산에 가지 않았다.


이후 장가를 갈 때는 일제 세이코 손목시계가 나에게 와서 몇십 년 동안 내 왼쪽 손목을 빛나게 했다. 세월이 흘러 고장이 나 움직이지 않을 때까지 잠시도 쉬지 않고 시침과 분침 그리고 초침은 제 역할을 충실히 했다. 지금은 몇 년 전 아내가 결혼기념일 선물로 사준 오메가 손목시계가 오른쪽 손목에서 하루 24시간 한시도 떠나지 않고 봐달라고 아양을 떨고 있다. 그 시계가 오른쪽 손목에 있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주인이 왼손잡이라 거기에 있으면 불편해하지 않을까 해서 사람들의 이목을 받는 부담에도 불구하고 돌출행동을 한 것이다. 24시간을 잠시도 떠나지 못하고 손목에 붙어 있는 이유는 별나다. 바로 움직이지 않고 그대로 놓아두면 작동을 멈춰 시계 본연의 임무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주인이 얼마나 움직이지 않는지 잠이 들면 시계도 가끔은 같이 잠을 잔다. 처음엔 당황했으나 지금은 시계도 얼마나 힘들면 잠을 자겠나 싶어 그대로 받아들인다.


내 숨은 꿀템은 [오리엔트 손목시계]다. 물론 지금은 회사가 없어졌고 제품이 단종되어 찾을 수 없다. 하지만 어릴 때 엄마에게 떼를 써 얻었던 물건이기에 지금도 마음속의 꿀템으로 남아있다. 기왕 꿀템 이야기로 엄마를 소환했으니 오늘 밤에는 꿈속에서라도 뵈어야겠다. 마을 속의 영원한 우상인 아버지도 함께 계신 하늘나라로 올라가 봐야겠다.

keyword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이전 22화죽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