Ⅴ. 건강·음식
토요일 저녁이다. 연일 열대야를 기록하는 날짜가 늘어나며 사람들의 얼굴에는 ‘오늘 밤은 또 어떻게 견디지?’ 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우리 집도 마찬가지다. 에어컨이 돌아가고 있지만 오랫동안 가스 불을 켜고 요리를 하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그걸 아내는 매일 하며 땀을 흘리고 있었다. 오늘은 내가 나서보기로 하고 냉장고를 열어 봤다. 큰 용량의 김치 통이 있었다. 뚜껑을 여니 김치 한 포기가 있었고 시큼한 맛이 코로 스며들었다. ‘옳지. 저거로 김치볶음밥을 만들면 한 끼는 충분히 해결할 수 있겠다’라는 마음이 들었다.
작업(?)을 시작했다. 김치 포기를 꺼내 도마 위에 올렸다. 칼을 들고 솜씨를 발휘해 ‘썰고 또 썰고’. 원래 김치의 모습은 형태도 없이 사라졌다. 대신 작게 조각난 김치들이 그다음에는 어떻게 될지 두려움에 떨며 빨간 핏물과 함께 뒹굴고 있었다.
가스 불을 켜고 그 위에 프라이팬을 올려 달궜다. 핏물과 함께 잘게 썬 김치를 넣고 이리저리 휘저으니 지글지글 소리가 났다. 김치가 어느 정도 익어 숨을 죽였다고 생각되었을 때 냉장고 속에 있던 찬밥을 꺼내 프라이팬에 투하했다. 십여 분이 흘렀다. 김치와 찬밥은 골고루 섞였다. 물론 미리 넣은 양파 조각과 어울려 김치볶음밥의 모습을 갖추어 갔다. 흰자와 노른자가 골고루 섞여 있는 달걀을 쏟아부었다. 김치볶음밥은 고유의 빨간색에 달걀의 노란색이 더해져 더욱 요염해졌다. 마지막으로 참기름을 더하니 고소한 냄새가 진동하며 집안 공기를 바꿨다. 머릿속에서 맛을 보고 있는데 거기에 냄새가 더해지니 입안에는 군침이 확 돌았다.
볶음밥을 접시에 담아 식탁에 올려놓았다. 기본적으로 빨간색인 김치볶음밥은 형형색색의 모습으로 무장하여 어서 수저를 대보라고 손짓하는 듯했다. 꿀맛이었다. 아내도 대만족이었다. 냉장고 털기도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작게 썰린 김치가 핏물과 함께 뜨거운 프라이팬 속에서 몸서리치는 순간을 지켜보면서 마음이 영 편치 않았다. 위선자라서 그런가? 박애주의자라서 그런가? 솔직히 잘 모르겠다.
‘위선자(僞善者)는 겉으로만 착한 체를 하거나 거짓으로 꾸미는 사람’ ‘박애주의자(博愛主義者)는 인종이나 종교, 국가 등을 초월하여 인류 전체가 평등하게 사랑하여야 한다는 생각을 주장하거나 그것을 따르는 사람‘이라고 사전에 쓰여있다. 그렇다면 나는 위선자보다는 박애주의자에 가깝다. 왜냐하면 최소한 마음속으로는 겉으로만 착한 척을 하려고 애쓰지는 않는다. 또한 사람들은 누구나 지위고하를 차치하고 평등하며 서로 도움이 되는 일을 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심지어는 눈에 보이는 생명이 있는 사람이나 짐승은 물론이고 그게 확실하게 보이지 않는 식물이나 물건도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뭐든지 생각에 행동이 더해져야 완성이다. <냉장고 털기>가 ‘생각과 행동’이라는 삼천포까지 가다니. 무더위가 원인일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