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철 요리

Ⅴ. 건강·음식

by 이들멘

몇 년 전 가을 후배가 전화했다. 학교 후배와 함께 식당에 있으니 형님도 나오라고 했다. ‘어디냐?’라고 물으니 대답했다


“형님 댁에서 멀지 않은 맛집입니다.”

전화를 끊고 가보니 오래된 식당이었다. 정말 맛집인지 초저녁인데도 빈자리가 별로 없었다. 후배들은 이미 소주를 각 1병은 비웠다. 음식은 세 가지가 있었다. 그중 유독 먹음직스러운 게 있었다. ‘이게 무슨 요리야?’ 술이 얼큰해진 후배가 말했다.


“전어 초무침입니다. 이 집의 별미로 많은 사람이 즐기는 요리입니다.”

‘아!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오게 한다는 그 전어!’ 전어는 회나 구이로 해서 먹는 음식으로 알고 있었는데 초무침이라니. 주위를 둘러보니 여러 테이블에 같은 음식을 담은 그릇이 있었다. ‘이 집 대표 음식이 맞기는 맞는 모양이네’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젓가락을 들었다.


입에 한 조각이 들어가니 알싸한 느낌이었다. 새콤달콤한 맛은 소주잔을 찾게 했다. 초고추장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으나 싱싱한 전어의 은빛 비늘이 반짝이는 모습은 마치 바다의 한 조각을 옮겨 놓은 듯하다. 전어 한 점을 집어 입에 넣는 순간, 바다의 신선함이 혀끝에서 터졌다. 전어의 고소한 맛과 함께 아삭아삭한 채소들이 어우러져 씹는 재미를 더했다. 오이와 당근이 보였고, 특이하게 애호박이 눈에 많이 띄었다. 잘게 썬 애호박이 이 집에서 비장의 무기인 듯했다. 채소들의 상큼함이 전어의 풍미를 한층 더 돋보이게 했다. 입안 가득 퍼지는 맛의 향연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소주잔을 기울이며 한 입, 한 입 먹을 때마다 가을 바다의 풍경이 눈앞에 그려졌다. 파도가 잔잔히 밀려오는 서해안 바닷가, 그 위를 날아다니는 갈매기들, 그리고 바닷속에서 헤엄치는 물고기들.

그해 가을 후배 덕분에 우연히 전어 초무침을 먹으며, 가을의 정취를 온몸으로 느꼈었다. 바다에 직접 가지도 않고 맛본 바다의 신선함과 가을의 풍요로움이 어우러진 그 풍취. 어떤 미사여구로도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이었다.


반대로 이번에는 이른 추석이긴 했으나 9월이 절반을 지났는데도, 사람들은 ‘덥다, 더워’하면서 비명을 지른다. 명색이 가을 ‘추(秋)자’가 들어간 추석인데, 아직도 30도 이상의 날씨가 이어지고 있으니 어찌해야 좋을지. 더 걱정은 올해가 가을도 더운 예외적인 해가 아니라 가을의 더위가 일상화되는 원년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다.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오게 한다는 전어도 가을 전어를 말하는 거지, 더운 날씨가 계속 이어진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전어 초무침 한 접시로 가을을 만끽했던 그때가 그립다. 전어 요리도 좋았으나 그와 함께 선선한 날씨가 받쳐주었기에 가을과 바다의 느낌을 만끽했었다.

‘화중지병(畵中之餠)’이란 말이 있다. 그림 속의 떡. 이제는 그 말을 하중지병(夏中之餠)으로 바꿔야 할지도 모르겠다. 여름 더위가 가을까지 이어지면 음식이고 뭐고 그걸 즐기기보다는 더위가 어서 끝나길 바라는 마음이 더 클 테니까.


제철 요리도 제철 요리이지만 더위에서 벗어나는 게 사람들이 바라는 우선순위다.


keyword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이전 26화곰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