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노래처럼 들리는 섬이 바다에 점점이 떠 있다. 풀이 샛바람 앞에 나부껴 눕고 또 마파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섬사람들은 바람이 부는 날 삼삼오오 모이기만 하면 하나같이 노래처럼 읊조렸다.
"그때, 정말 대단했지."
"지금 이렇게 살아 있는 것이 꿈만 같아."
노인들이 하는 말을 어깨너머로 엿들은 아이들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뭐가 말이에요?" 하고 찰싹 붙어 되묻기도 했다.
"낼모레 태풍이 올라온다는데, 또 사라호 같은 게 오면 어쩌나."
"사라호가 뭔데요?"
"사라호가 뭐긴 뭐야. 무시무시한 태풍이지."
한여름을 지나고 바닷물이 차가워질 때쯤 심한 바람이 요란한 굿판처럼 들리는 날이면 언제나 빠지지 않고 어른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이야깃거리가 사라호 태풍이었다. 그래서 겪어보지도 못한 태풍 사라호는 어린아이들의 맘속에 두려움과 공포로 자리하고 무서운 도깨비 같은 바람으로 살아오고 있었다.
다도해해상국립공원
1959년 추석이 임박했을 때 사라호라는 태풍이 남해안을 덮쳐 그 당시 사람들의 말로는 무시무시한 피해를 안겼다고 한다. 마을은 물바다로 변하고 지붕은 산으로 날아가고 사람들도 폭풍에 떠내려갔단다. 그래서 태어나기도 한참 전에 발생했던 그 태풍 이름을 아이들은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태풍 사라호에 대한 기록을 찾아보니
'1959년 9월 12일 발생한 국제명 SARAH는 열대성 저기압 등급 중에서 가장 높은 “카테고리 5등급”까지 발달했던 태풍으로, 대한민국 최대 명절인 추석날 한반도를 강타하여 당시 사회에 큰 상처를 남겼다.' 고 되어 있다.
언제나 바다만 바라보고 사는 섬사람들에게 그 당시나 지금이나 태풍은 커다란 재앙과도 같은 존재였다. 일기예보가 허술했던 그 옛날에는 태풍이 일어날 때 뭍에 있기라도 하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하고 뱃일을 하러 바다 한가운데 떠있기라도 하는 날엔 큰일이 아닐 수 없었다.온 가족들은 어부들의 무사귀환을 빌며 뜬눈으로 지새우기 일쑤였고 마을 어귀 시사를 모시는 당집이나 마을 수호신이 있는 서낭당에는 짚신이 닳도록 정화수를 떠놓으러 다녀야 했다.
폭풍이 지나가고 평온이 찾아오는 시간, 고깃배가 깃발을 올리고 마을로 들어오기라도 하면 사람들은 승전보를 울리며 전장에서 돌아오는 용사를 맞이하듯 선창가에 모여들었다. 그 모든 일들이 수호신의 의지며 뜻이라는 걸 굳게 믿으며 바람의 노래와 함께 미신은 쌓여갔다. 하루를 넘기고 또 다른 하루를 넘기며 커다란 파도의 너울을 넘어가듯 섬사람들은 그렇게 살아가고 살아왔다. 누가 누구를 탓하는 일이란 있을 수가 없다. 오로지 바다에 순응할 뿐이고 폭풍에 몸을 맡겨야만 하며 그냥 주어지는 것들을 받아들이는 삶이 그들이 할 수 있는 전부였고 최선의 선택이 되었다.
섬사람들은 바다의 신, 용왕님께 고사라고 하는 제사를 지내기도 했다. 마을 어른들이 좋은 날을 점지받아 고사를 지내는 날이면 온 동네가 떠들썩했다. 흑돼지를 잡아 돼지머리를 제사상에 올렸고 시루떡을 준비하여 마을을 지키기 위한 축원을 올리기도 하였다. 고사를 지내는 날에 마을 사람들은 모처럼 생선이 아닌 육고기를 맛보며 잔칫날처럼 지내기도 했다. 사라호에 대한 기억은 그렇게 시작되어 아이들이 어른이 되고 또 그들의 아이들에게 바람의 전설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뚜렷하여 바람도 여러 가지로 이름을 달고 불어온다. 동서남북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순우리말로 샛바람, 하늬바람, 마파람, 된바람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이들 바람들은 주로 봄, 여름, 가을, 겨울에 불어온다. 어느 날에는 요란스럽기도 하고 또 어느 날에는 구슬프기도 한 바람은 노래가 되어 모두의 가슴 속에 스며들어 면면히 흘러 흘러 그렇게 이어져오고 있었다.
살면서 듣게 될까 언젠가는 바람의 노래를 세월 가면 그때는 알게 될까 꽃이 지는 이유를 나를 떠난 사람들과 만나게 될 또 다른 사람들 스쳐 가는 인연과 그리움은 어느 곳으로 가는가 나의 작은 지혜로는 알 수가 없네 내가 아는 건 살아가는 방법뿐이야 보다 많은 실패와 고뇌의 시간이 비켜갈 수 없다는 걸 우린 깨달았네 - 바람의 노래 中 -
세월이 반세기나 흘러도, 과학의 발달이 급속히 진행되어도, 또 우주여행이 성큼 다가왔다고 호들갑이어도 여전히 인간은 자연 앞에 미약하고 보잘것없는 존재임을 숨길 수 없는 것 같다. 한반도를 휩쓸고 서남해안의 낙도에 씻을 수 없는 상흔을 안기며 레전드가 되어버린 사라호 태풍은 많은 지혜와 교훈을 주고 소멸되었다. 하지만 지금도 그런 바람이 불어오면 비껴갈 수는 없다. 결국, 아무리 새로운 문명이 인간 세상을 바꾸어 가더라도 어쩔 수 없이 함께 할 수밖에 없는 것들은 존재한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 속에서도 그렇고, 자연과 인간의 관계 속에서도 마찬가지다. '바람의 노래' 구절 속의 '보다 많은 실패와 고뇌의 시간이 비켜갈 수 없다는 걸... '로 이어지는 노랫말이 귓가에 맴도는 까닭은 무엇 때문일까. 자주 불리는 대중가요 '바람의 노래' 노랫말처럼 세상 사람들이 자연에 순응하며 또 삶의 순리에 따라 지혜와 사랑을 배우고 베푼다면 좀 덜 힘들게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삶은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것이라고 묘사한 베스트셀러 작가의 말이 귓가에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