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주가 모두 중요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집은 모든 사람들의 삶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애태움의 영역인 것 같다. 한때 유명세를 탔던 '삼시 세 끼'라는 어촌생활을 방송으로 보면서 섬마을의 초가집과 함석집이 대비되어 파노라마처럼 흘러갔다. 비도 숨죽여 소리 없이 스며들었던 초가집의 전설은 폭풍이 휘몰아쳐 삼켜버리기 일쑤였고, 바람의 길을 꽉 막아버리면 무슨 탈이라도 날까 봐 구멍이 숭숭 뚫린 돌 담벼락이 만들어졌다. 마을 사람들은 바람이 요동치는 날이면 너 나할 것 없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새끼줄을 길게 꼬아야 했다.
"여보게 새끼줄 꼬아 놓은 게 있는가" 하고 묻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바람이 불면 왜 어른들은 새끼줄을 찾지?' 하고 혼잣말로 중얼거려보기도 했다. 그런 의문들은 그렇게 길게 가지 않았다. 바람이 세차게 불기 시작하고 집안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던 가재도구(家財道具)들을 쓸어가는 소리가 들리면 그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조금 전에 가졌던 의문들도 금세 풀리기 시작했다.
방 안에 갇혀 있다가 마당에 나와보면 초가지붕 위에는 장정들과 노인들이 여럿이 서서 새끼줄을 주고받기도 했다.마치 새끼줄 던지기 놀이를 하는 것처럼지붕을 사이에 두고 새끼줄을 던지고 받았다.
"어이, 이 줄 좀 잡아줘."
"그래, 줄을 지붕 좌측으로 댕겨서 매어주게."
"줄을 처마에 단단히 묶어야 하네."
노인들은 장정들을 시켜 지붕을 새끼줄로 단단히 다시 묶었다. 지붕을 쓸어가는 바람이 오기 전에 새로 만든 새끼줄로 조이고 손보아야 했다. 그렇게 단도리를 철저히 해도 안심하고 잠을 청할 수 있는 날이 많지 않았다.
세월이 얼마나 흘렀을까 어느 때부터인지 기억은 희미하지만 초가집은 눈에 띄게 사라지고 있었다. 겨울철 함박눈이 내리는 날 하얀 호빵처럼 변해버린 한 폭의 동양화 속의 초가들은 소리 없이 자취를 감추고 도단이라고도 불렸던 함석지붕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한여름 뜨겁던 날에 함석지붕 위는 찜질방을 방불케 하는 열기로 가득 찼다. 초가지붕에 묻혀 숨죽여 내렸던 소낙비는 이제 맘껏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다양한 악기를 흉내 내며 연주를 하기도 했다. 세찬 소나기가 함석지붕을 두드리기라도 하는 날이면 바람 앞에 힘없이 날려갔던 초가지붕이 떠오르며 함석지붕의 단단함에 맘이 놓이기도 했다. 마을의 초가지붕들은 하나 둘 함석지붕으로 바뀌어 가면서 바람이 불어도 새끼줄을 꼬아야 할 일도 많이 줄어들었다. 산 위에서 바라본 마을은 울긋불긋 페인트로 단장한 함석지붕과 파란 바닷물이 잘 어울렸다.
격년제로 초가지붕을 단장하기 위해 짚이라고 불리는 보릿대를 보관했던 헛간은 텅텅 비어 있었다. 집안의 큰일이 되었던 초가지붕 이는 거추장스러운 일은 함석지붕이 생기면서 하지 않아도 되었다. 몇 년 사이 이엉으로 인 지붕인 초가지붕은 섬마을에서 서서히 기억 속에서 사라져 갔다. 그리고 함석지붕이 그 자리를 이어받았다. 함석은 바닷바람이 해일이 되어 덮치면 녹이 슬었다. 요즘 어촌이나 산촌 생활을 재현하기도 할 양 방영되는 '삼시 세 끼'라는 방송을 보면 마을의 함석지붕을 페인트로 칠한 것을 자주 본다. 아마도 미적인 측면보다는 녹슬기 쉬운 함석을 보호하기 위한 용도가 더 컸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마을의 초가집 지붕용으로 짚이나 새(풀)로 이엉을 만들고 새끼줄을 꼬았던 노인들은 겨울철 함석지붕 아래서 쉴 수 있는 날들이 많아지고 다른 소일거리도 생겼다. 새끼줄을 꼬았던 언 손은 아궁이 속 고구마를 굽는데 더 많이 시간을 보내었다. 정취 있는 초가집들은 자취를 감추었고 요즘 낙도의 섬마을을 방문해보면 함석집이 낯선 방문객들을 맞이한다. 초가와 함석집의 추억은 바람이 노래하는 날 더욱 선명하게 모두의 심장을 요동치게 한다.
그 옛날 섬마을 사람들에게 집은 생존을 위한 보금자리였으며 하룻밤을 편히 쉬게 하는 안식처였다. 요새 사람들이 가지는 집에 대한 생각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섬마을에서 거주지인 집이란 오히려 석기시대 원시인들의 동굴생활이나 이동생활에 더 가깝다고 해야 할까. 집을 팔고 사는 일을 반복하며 돈을 버는 일이란 애초에 엄두를 내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평생 집 한 채를 가져도 자연재해 앞에 속수무책이었으니 집에 대한 애환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초가집이 함석집으로 바뀌면서 변화가 있기도 했지만 태풍의 위력 앞에 온 몸으로 부딪히며 걱정을 안고 살아간 사람들을 떠올려보면 격세지감이란 말만 나온다. 지금은 부동산 정책이 도마에 오르고 가격 폭등과 부유층의 집사재기로 또 다른 집 걱정을 하는 세상이 되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수 요소인 의식주 가운데 오늘날 가장 핫한 것은 주(住)인데, 예나 지금이나 집이 주는 걱정거리는 매 한 가지인 것 같아 씁쓸한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