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이 빚은 비단길

달이 바다에 비단길을 만들면

by 나꿈



보름달이 바다 위에 금빛 비단길을 만들면 그 길을 따라 걸어가고 싶다. 달이 어낸 길 위로 사뿐사뿐 수평선 끝까지 가보고 싶다. 바다 끝에 가물거리는 작은 불빛들을 따라 오징어잡이 배도 만나고 멸치잡이 어선도 손짓하며 바다 끝 저너머로 달려가고 싶어 진다. 그저 아스라이 멀어져 가는 고깃배들을 뒤로하고 나 혼자 더 멀리 달을 따라 가보고 싶어 진다. 지친 하루를 보내고 저녁이 되어 달이 뜨면 바닷길을 걸으며 철썩이는 파도의 수많은 포말만큼이나 상상의 나래를 펼쳐본다. 시원한 바닷바람이 불어오면 흐릿한 정신은 맑아지고 몸도 한층 가벼워짐을 느낀다.




그 길에 들어서기라도 할 양 뭍과 금빛 비단길이 만나는 지점에 다가갈수록 파도의 웅장한 오케스트라 소리도 들려온다. 철썩철썩 파도는 소리를 내어 환영의 인사라도 하는 듯하다. 파도가 남기는 파문은 쉴 새 없이 밀려와 하루 동안 땡볕에 지친 바위들을 어루만지고 다시 또 밀려와 자갈과 모래톱도 쓰다듬는다. 그 광경을 바라보노라면 한나절에 있었던 짜증과 스트레스를 모조리 꺼내어 파도는 바닷속으로 씻어가 버리곤 한다.



달이 뜨는 바다를 손꼽아 기다리는 사람들은 많다. 새까만 바위에 걸터앉아 바다에 낚싯대를 드리운 낚시꾼들이 보인다. 하루해가 짧게 지나가버려 미쳐 걷지 못한 이들이 밤길을 걸으려 나오기도 한다. 강아지들은 덩달아 좋다. 집안에서 하루 종일 답답하게 보내다가 늦은 밤에도 코에 바람을 넣을 수 있으니 신난다. 데이트를 즐기는 젊은 남녀도 코로나로 절차가 까다로운 곳을 벗어나 편한 밤길을 걸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 달밤인가.




먼 곳의 지인이 보름달이 뜬 날 파도소리를 듣고 싶단다. 퇴근 후 주섬주섬 운동 복장으로 갈아입고 특별한 약속이라도 있는 사람처럼 바닷가로 향했다. 파도소리가 가장 잘 들릴 수 있는 포인트로 다가갔다. 달이 빚어낸 비단길과 파도소리를 함께 영상으로 담아본다. 영상을 받아볼 사람을 위해 몇 번이고 찍은 달빛과 철썩이는 파도소리도 리플레이시켜 본다. 그렇게 또 할 일 하나를 하고 나니 몸은 어느새 리프레쉬된 느낌이다.



바닷가가 아니더라도 보름달과 하루를 마무리할 곳은 많은 것 같다. 달빛에 비친 호숫가는 또 얼마나 좋은가. 가까운 경주의 보문호의 달빛이 생각난다. 경포호수에서 내님을 노래한 옛 시인의 그때 그 시절이 그려지기도 한다. 드넓은 들판과 시냇물이 흐르는 얕은 하천에서 달빛을 감상하는 재미도 색다를 것 같다. 교과서에도 실렸던 이효석의 소설 '메일꽃 필 무렵'의 정감 넘치는 산허리를 상상해보라.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붉은 대궁이 향기같이 애잔하고, 나귀들의 걸음도 시원하다." 달빛은 바쁘고 지친 오늘을 사는 현대인들에게 먼발치에서 휴식을 주는 선물이다. 보름달은 꼭 드론처럼 떠올라 힘든 하루를 보낸 이들을 어루만지기도 하고 보살펴주기도 하는 것 같다. 자주 오는 기회가 아니다.



지친 하루를 피해 가기 위해 달이 뜨는 날을 기억해보자. 밀물과 썰물의 흐름도 알아두면 뭍을 점령한 바다의 양을 짐작할 수도 있다. 요새는 색다른 레트로가 기대하지 않은 여유와 희망을 주기도 한다. 음력도 체크하며 달과 바다의 끌고 당기는 힘의 조율을 느끼며 살아보자. 지친 하루에 생기를 불어넣고 잠을 청하라. 밤바다도 좋고 철썩이는 파도소리도 좋다. 한적한 강가를 거닐거나 드넓은 들에서 뜨거운 하루를 식히는 것은 또 어떨까. 그것도 안 되면 그런 시원한 상상이라도 하며 조용한 음악이라도 들어보자. 달이 뜨는 밤에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은 어디일까. 지친 하루를 피해 가려면 손품이나 발품도 필요할 것 같다. 오늘 하루도 가벼운 몸을 만들어 단잠을 청해 보자. Good Night, and Good Lu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