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색소음 지하철에서 책 쓰기

by 나꿈



예전에는 지하철을 타면 눈을 지그시 감고 시간을 보내었다. 그리고 마주 보는 사람들과 시선을 피하기 위해 멀뚱멀뚱 천장을 쳐다보기도 하고 주로 음악을 들으며 지냈다. 20여 년 전에 일본에서 생활할 때는 전철을 타보면 무표정한 사람들의 지친 모습이나 작은 문고류를 손에 쥐고 읽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는 기억이 난다. 또 안타깝지만 그 당시 의사자로 추모되는 이수현 씨의 신오오쿠보 전철역에서의 선행도 불현듯 떠오른다. 그때만 하더라도 핸드폰 화면이 크지 않았고 지하철에서 폰에 글을 쓰는 사람들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던 것 같다. 요즘엔 지하철이나 각종 대중교통에서는 스마트폰에 글을 쓰거나 현란한 손동작으로 폰을 다루는 사람들을 흔히 보게 된다. 모든 분야에서 세상이 변했고 문화도 바뀌어가고 있는 것 같다. 그 속에서 글을 쓰는 문화나 방식도 변해오고 있으며 풍류를 논했던 옛 선인들의 글쓰기 모습이나 숨결 같은 것은 온데간데없다.




요즘 지하철을 타보면 간간이 흘러나오는 코로나 예방수칙이나 다음 역을 안내하는 방송이 나온다. 시대가 시대인 만큼 코로나 19 예방을 위한 홍보방송이 어딜 가나 귀에 들리고 눈에 띄게 중심을 잡고 있는 느낌이 든다.. "코로나 19 확산을 예방하기 위해 마스크 착용 시 코나 입을 완전히 가려주세요"라는 멘트나 일본어와 중국어가 뒤섞인 다음 역 안내가 모두에게 귀에 익어서 다들 외울 수 있을 정도로 된 것 같다. 또, 전철은 브레이크를 밟으면 바퀴와 철로가 밀착되는 소리도 들리고, 정차했다가 출발할 때의 전철 특유의 소리나 정상 속도로 달릴 때의 일정한 높이의 기계음 그리고 가끔 문틈에서 새어 나오는 삐거럭거리는 소리까지 귀에 익숙해졌다. 어찌 보면 시끄럽고 짜증 나는 소리인데 그 속에서 곤히 잠을 청하거나 꾸벅꾸벅 조는 사람들이 자주 보인다. 그들에게 지하철에서 나는 소리는 백색소음 즉, ASMR인지도 모른다. ASMR이란 자율감각 쾌락반응(Autonomous Sensory Meridian Response)의 줄인 말로 광고에 종종 등장하기도 하고 불면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그 소리를 들으며 잠을 청한다는 말도 있는 흔한 용어가 된 지 오래다.




이제는 귀에 거슬리지 않는 소리가 되어버린 지하철의 각종 소음들은 내게는 백색소음이 되어 아침, 저녁 출퇴근 시간에 책 쓰기를 위한 최적의 공간이 되곤 한다. 집에서 나와 15분가량을 산책 삼아 걸으면 도시철도의 승차할 곳에 도착한다. 타는 곳이 종착역 부근이라 글쓰기에 편한 가장자리 쪽 좌석을 잡아 최근에 스쳐 지나간 소재들 가운데 하나를 골라 글을 쓰는데 사실은 책 쓰기라고 해도 될 것 같다. 백색소음을 콧노래처럼 들으며 글을 써서 브런치 북을 발간하고 다시 새로운 매거진을 만들어 글을 써가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정색을 하고 마주 앉아야 대화가 되는 줄 알지만 실은 편안한 자세와 편안한 장소에서 우연히 소통하는 것이 더욱 가치 있을 때가 많다. 책 쓰기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정좌를 하고 명상을 하고 대나뭇잎 소리며 새소리를 들으며 쓸 수도 있겠지만 글이 꼭 그런 환경조건을 갖춰야 나오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책 쓰기를 위한 지하철은 다소 소음이 있고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하차해야 한다는 조바심이 깔려 있어서 그런지 번뜩이는 두뇌 회전이 느껴지는 공간이다. 서로 다닥다닥 붙어 앉아 있지만 아무도 서로의 일에 간섭도 관심도 없는 공간이며, 약간의 보이지 않는 긴장감 같은 것이 글쓰기에 집중도를 높여주기도 한다. 그렇게 전철을 타자마자 글쓰기에 집중해도 30분 만에 글 한 편을 쓴다는 것은 무리이니 내려서 어느 정도 걷다가 글쓰기를 멈추면, 다시 퇴근길 백색소음 공간이 글을 마무리하게 해 준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하철에서의 글쓰기는 손해보다는 큰 이익이나 배부름을 주는 느낌이다. 왜 그런 생각이 드는지, 그건 무엇때문일까? 근무 중에 짬을 내어 글쓰기를 하려고 해도 틈을 만들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일정한 시간 동안 글을 썼다고 해도 왠지 아까운 시간을 허비한 느낌이 든다. 하지만 출퇴근길에 지하철에서 글을 쓰면 아무리 짧게 글을 썼더라도 큰 이익을 본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하는데 실은 착각이 아니라 진짜 이득을 본 것인지도 모른다. 남들도 쉽게 버릴 수 있는 시간이고 나 또한 큰 의미를 두기 어려운 출퇴근 시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소한 시간이나 보잘것없는 모티브가 예상하지 못한 성과를 가져오듯이 지하철 백색소음 공간도 그곳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개개인에게 크게 다르게 다가올 수가 있다. 세상만사가 모두 그렇듯이 무엇이 빠르고 무엇이 느린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대하는 마음가짐이나 자세에 따라 느림이 빠름이 되고 빠름이 느림이 될 수 있다. 소음도 누구에게는 시끄러운 소리가 되어 괴롭힘을 주지만 또 누구에게는 백색소음이 되어 유익하고 보람된 시간이 될 수 있다니 놀랍다. 이런 세상의 이치와 인간의 정신세계를 이해한다면 아마도 사는 맛도 다르게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승용차를 이용하면 삼십 분이면 갈 수 있는 가까운 거리를 배 이상 시간을 들여 출퇴근을 하는 것이 꼭 느린 것만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하는 말이다. 그것이 느린 삶이 주는 묘미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