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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질머리

밥값 좀 하시죠

권여선의 소설 <분홍 리본의 시절>에는

화자의 주인공 선배가 하는 이런 말이 있다.

"나이가 먹어서 그런가 맛없는 음식을 먹으면 화가 나"

나도 나이가 먹느라 그런가 지난 토요일 얻어먹는 주제에 불쑥 화를 내고 말았다

조작가의 밸리 공연이 있었고 내가 꽃다발을 사자 김작가는 이른 저녁을 샀다.

우리 셋은 거의 친자매처럼 친하게 지낸 지 20년이다. 서로를 속속들이 알고 아끼는 사이라는 말이다.

초면인 조의 친구가 함께한 자리였고 우리는 공연장 바로 앞의 쌈밥집으로 갔다.

나름 유쾌하려 애쓰는 주인아저씨의 추천으로 주꾸미 제육을 주문했다.

철판에 나온 음식은 딱 보기에도 양이 4인분이라기엔 좀 모자라 보였다.

그래도 맛있으면 뭐 ㅡ양보다 질이고 맛이지 암만 m

밥이 먼저 나왔다.

뚜껑을 열었는데 딱 보기에도 수분이 전혀 없이 말라버린 듯 보였고 주부경력 31년이면 누구라도 오래된 밥이란 건 먹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젓가락으로 몇 알 떠서 맛 보니 역시 그랬다.

밥집은 무엇보다 좋은 쌀을 써야 하고 밥이 맛있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주 메뉴를 떠나 밥이 맛있으면 반찬이 좀 맛없어도 넘어간다.

김치를 보아하니 딱 봐도 중국산 막김치다.

이건 뭐 어린이집 아이들 식판에 놔줄 정도로 잘게 썰어놓은 게 전혀 손길이 가지 않았다.

무엇보다 짜증이 확 올라온 건

명색이 쌍밥집이라고 상호를 걸어놓고 라면기 정도의 대접에 상추 몇 장 배주 두 장 치커리 서너 장 적근대 두 장 매운 고추 1개ㅡ2인 기준ㅡ이었다. 벽에는 열 가지도 넘는 싱싱한 쌈채소 사진이 현수막처럼 걸려 있었다.

그래 거기까지도 참았다.

한 테이블 건너에 중년 남자 둘이 들어왔고 삼겹살을 주문했다.

밑반찬이 달랐다

그래 뭐 메뉴에 따라 다를 수 있지 뭐

근데 그 상에는 가지런한 배추김치가 놓였다.

한 장씩 버무려 만드는 그 배추김치 그건 국산이었겠지

한 식당에서 메뉴에 따라 김치를 차별하다니

확인해보지 않았지만 메뉴의 가격차가 있는 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대개 주인은 추천 메뉴를 저가로 추천하지 않는다.

나의 인내심은 바닥이 났고 그럼에도 그때부터 계속 구시렁구시렁 밖에 할 수 없었던 건

일행들이 깜짝 놀라 제지하고 눈치 보는 게 걸려서 주인을 부르지 못했다.

유쾌한 척 말장난이나 하고 있는 주인은 그때부터 더 꼴 보기 싫었다.

만약 나 혼자였다면 나는 그냥 나왔을 거다. 그런 경우 돈이 아까운 게 아니라 그런 걸 먹어야 하는 내 속이 아깝다.

도대체 음식장사하는 사람의 마인드가 그렇게 생겨 먹어서야.

착하게 살고 싶지 않다.

그렇게 참는 건 착한 게 아니라 호구되는 기분이 들었다.

일행들 때문에 그렇게 참았던 게 자꾸 생각나는 게 나는 정말 나쁜 사람이기 때문일까.


이게 다 권여선의 소설을 다시 읽은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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