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가 필요해
나이 먹은 사람도 때로 지지가 필요하다
by 자유로운 글쓰기 여행자 Nov 7. 2022
나이 먹은 사람도 때로 지지가 필요하다.
고향 친구의 큰 딸 결혼식에 다녀왔다. 몇 달 먼저 딸 혼인의 경험이 있는 내게 친구는 여러 번 이런저런 조언을 구했었다. 처음은 누구나 낯설고 어색한 것, 처지와 상황이 다른 데다 나는 성격처럼 비교적 담담하게 일을 치렀기에 조언이라 해봐야 실제로 크게 도움 될 일이 없었을 것이다. 친구의 염려가 기우란 걸 증명하듯 예식은 아름답고 차분하게 성사되었다.
외국인 사위에, 코로나로 인해 입국하지 못한 사돈댁 없이 우리끼리 치른 식에 비해 양가 부모와 가족 전부가 참석한 일반적인 결혼식에 조언은커녕 오히려 내가 더 감동을 받았다. 아주 어린 아기 때부터 보아온 신부가 어느새 성인이 되고 가정을 꾸리는 것까지 지켜볼 수 있다는 것도 분명 감동을 배가시키는 일일 것이다. 예식 내내 새롭게 탄생한 가정을 축복하고 친구 딸의 행복을 내 딸의 행복 빌 듯 빌어주었다.
식이 끝나고 식사까지 마친 후 그냥 헤어지기 아쉬운 고향 친구 몇 이서 카페로 자리를 옮겨 정담을 나누었다. 함께 자리한 여덟 명중 네 명의 배우자를 빼고 친구 넷은 중학교 동창이고 그중 셋은 고등학교 동창으로 근래 몇 번의 소통이 있어 근황을 잘 알고 있다. 넷 중의 한 명인 중학교 동창은 실로 30년도 훨씬 지나 만나는 것이라 더 반가웠다.
오래간만에 만난 친구들은 그동안의 안부와 근황을 묻고 이런저런 온갖 소재의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장성한 자녀들이 있으니 자녀들 이야기, 일찍 할머니가 된 이야기, 친구들 이야기 등 대화는 내내 즐겁고 유쾌했다.
시간 가는 줄 모르다 아쉽게 헤어져야 할 순간이 왔다. 카페를 나와 다음을 기약하며 주차장으로 향하며 중학교 졸업 후 처음인 친구와 자연스럽게 손을 잡고 걸었다. 그런데 어느새 친구가 제 지갑에서 오만 원권 지폐를 꺼내 내 손에 쥐어줬다. 그 낯선 상황이 당황스러워 손사래 치며 거절하는 내게 친구는 나보다 더 완강하게 그걸 꼭 주고 싶어 했다. 며칠 후 제주도에 가게 됐고 거기 가서 며칠 글 쓰고 책 읽으며 쉬다 올 거라는 말을 귀담아들은 친구가 여행 가서 커피 값 하라는 것이었다.
“네가 그렇게 작가가 돼서 너무 기쁘고 자랑스러워.”
친구는 내가 부담스러워하지 않도록 덕담도 잊지 않았다.
책을 두 권이나 내고 큰 상도 받았지만 나는 여전히 무명의 작가고 여전히 자신감은커녕 열등감 덩어리인데 고향 친구라는 이유로 그런 무조건 적인 칭찬과 지지를 받는 게 너무도 부끄러우면서 한편으로 말할 수 없이 고맙고 뿌듯했다.
기어코 내 주머니에 지폐를 넣고 그걸 다시 꺼내지 못하도록 내 손을 꼭 쥔 친구는 자기가 가진 게 그것뿐이라 더 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돈의 액수가 무엇이 중요할까. 친구는 그 순간 자기가 가진 전부를 내게 준 것인데. 눈물겹도록 감동스럽고 다정한 선물을 받은 기분을 어찌 다 표현할 수가 있을까.
결국 친구의 그 귀한 마음을 넙죽 받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주머니 속 접힌 지폐를 만지작거리며 왔다. 친구의 온기가 행여 사라질까 손을 뺄 수가 없었다.
오십이 훌쩍 지나 십 대의 친구의 지지를 받고 보니 그 시절의 호기로움이 새삼 새로 생긴 것처럼 기분이 묘했다. 내가 잊고 지냈어도 누군가 나의 근황을 살피고 나를 위해 보이지 않는 기도를 하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새삼 용기가 생기고 자신감이 생기는 듯도 했다.
반면 나는 오로지 내 가족의 안위와 내 글의 발전과 성숙만을 위해 애쓰며 살아온 것이 부끄러워 얼굴이 뜨거워졌다. 나는 왜 그렇게 내가 외롭다고 생각하고 스스로 당당하지 못하고 늘 열등감을 느끼며 사는 걸까. 이렇게 다정하게 나를 지지해주는 사람들이 있는데.
계절이 무르익어가는 한 해의 끝자락 나는 오랜 지기로부터 아주 인상 깊고 뜻깊은 선물을 받았다. 두고두고 기억하고 가슴에 새겨야 할 아주 귀한 선물이다. 나에게 용기를 주고 힘을 주는 진짜 선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