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주 후에 뵙겠습니까?
좀 특별하고 맛있는 김장 이야기
by 자유로운 글쓰기 여행자 Nov 21. 2022
4주 후에 뵙겠습니까?
올해도 역시 김장을 했다. 이번 김장은 여러모로 다른 해보다 더 특별했다.
배추를 심어 가으내 노심초사하며 가꿨다. 수시로 물을 주었고 배추벌레와 달팽이에게서 배추를 지키기 위해 눈을 부릅뜨고 배춧잎 한 장 한 장을 들춰보았다. 2주 정도 더디 심었고 건물에 가려져 내 배추들은 늘 해가 고팠을 것이다. 남의 밭에서 쑥쑥 커가는 배추들을 보면 부러운 마음이 잠깐 들었다가 억지로 자라고 있는 내 배추들에게 자꾸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김장 날을 정해놓고 하루하루 부실하기 짝이 없는 덜 자란 배추들이 걱정이었다. 결국 디데이 사흘을 남겨놓고 절임배추 두 박스를 주문했다.
70포기 내 배추 중 40포기를 뽑았다.
이제 막 노랗게 속이 차오르기 시작한 배추들을 보니 한 열흘 더 미룰 걸 그랬다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며칠 후 나는 보름 동안 집을 비워야 해서 어쩔 도리가 없었다.
사 먹을 땐 몰랐는데 직접 가꾼 거라 겉잎도 아까워 시래기를 만들었다. 뽑고, 다듬고, 절이고, 그 모든 수고는 남편이 나서서 했다. 그뿐 아니라 부재료를 손질하고 씻고 무를 채 썰고 버무리는 모든 과정 역시 남편이 했다. 하다못해 김장 날 빠질 수 없는 수육까지 남편이 삶았다.
나는 그야말로 입으로만 김장을 다한 셈이다. 지인들에게 김장 얘기를 했더니 다들 나에게 전생에 나라를 구했느니 어쩌니 했다. 정말 그럴까? 그건 내가 전생에 나라를 구해서도 아니고 특별히 집안일에 적극적인 남편을 두어서도 아니다. 그건 어디까지나 남편이 그런 이벤트를 즐기기 때문이고 본인이 직접 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하다못해 지난주에 언니네 김장까지 손수 다 했다. 뽑고 절이는 과정이 생략된 절임배추로 담그는 김장이었지만 채 썰고, 버무리고, 속 넣고, 역시나 수육도 삶았다.
해마다 처형네 김장을 해주고 수육까지 삶는 것 역시 자기 좋아서 하는 일이고 입맛 까다로운 제부가 자기 입맛에 맞게 스스로 한다니 늙은 처형은 못 이기는 척 부엌에서 물러나는 것이다. 다행히 그 맛 또한 반박 불가라 그거야 말로 처형 좋고 제부 좋은 일거양득의 이벤트다.
내가 거들려 하자 사사건건 못 미덥고 못마땅한 남편이 농담처럼 그랬다.
“이렇게 손발이 안 맞으니 둘이서 도둑질은 못하겠다.”
도와준다고 와서 지켜보던 조카가 그런 우릴 보고 제법 진지하게 한마디 거들었다.
“그러다 두 분 4주 후에 뵙는 거 아니에요?”
그 말에 웃음이 터질 수밖에.
절여놓은 배추를 건져보니 기껏해야 한 바구니였다. 주문한 절임배추 한 박스랑 같은 양이었다. -한 박스 일곱 포기-그걸 보니 40포기라는 숫자의 의미가 참으로 무색했다. 내가 배추를 키운 거냐? 상추를 키운 거냐? 현타가 올 수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맛은 확실히 비교불가였다. 그 맛에 내가 그 고생을 했구나, 그동안의 수고를 단번에 상쇄할 맛이었다.
김장하던 날 남편 친구에게 한 통, 지인 집에 한 통, 큰 수술 앞두고 건강한 음식에 신경 써야 하는 내 친구 모자에게 한 통. 그러다 보니 김치 세 통이 이틀 만에 사라졌지만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내가 수고하여 만들어진 결과물이 누군가의 입을 즐겁게 하고 건강하게 한다면 얼마나 기쁜 일인가.
몸 써서 일한 건 남편인데 다음날까지 몸이 주체 못 하게 힘들었다. 입으로 다 했으니 입이 아파야 하는 거 아니냐고 우스개 소리도 즐겁게 했다.
나는 여전히 뻔뻔하고 얄밉게 큰소리 칠 것이다.
“나는 어디까지나 남편이 좋아하는 일을 하게 해 주려고 나의 영역을 과감히 양보하는 것이야.”
* 제목인 ‘4주 후에 뵙겠습니까?’는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의 명대사 ‘4주 후에 뵙겠습니다’를 패러디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