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자유로운 글쓰기 여행자 May 22. 2023
추억 팔이
어쩌다 보니 꿈꾸던 작업실을 얻게 됐다.
말을 꺼내놓고 보니 빛의 속도로 성사됐고 며칠 동안 소풍 앞둔 어린애처럼 설레면서 보냈다. 비록 반지하지만 방이 둘이고 거실 겸 부엌이 있는 살림집이다. 임대료도 기존의 반값에 하기로 했다. 평소에 나를 동기간처럼 아끼는 작가의 배려다. 그렇더라도 사람이 염치라는 게 있는데 노후자금인 임대료 일부를 내가 갉아먹는다고 생각하니 마냥 기뻐할 일만은 아니었다. 고민할 필요 없이 방 하나를 온전히 본인 취향에 맞게 쓰시라 했다. 그렇게 두 작가의 동거가 시작될 예정이다.
입주를 앞두고 책장을 정리했다.
세로 일곱 칸, 가로 두 칸짜리 책장 일곱 개를 빈틈없이 채우고도 모자라 여기저기 꽂아두거나 쌓아 둔 책의 양이 만만치 않다. 다 옮기자면 어림잡아도 같은 규모의 책장 세 개는 더 있어야 하겠다. 최대한 줄여보자 마음먹었다. 책을 정리하는 건 정말 힘든 일이다. 다 읽었고 두 번 다시 읽을 일이 없을 책까지도 버리는 건 늘 망설여지는 일이다. 활자 화 되기까지 작가의 노고를 알아서도 그렇지만 버리는 그 자체로도 여간 고민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게 고민을 하면서도 어쩔 수 없는 지경이 될 때가 있다. 지금까지 수도 없이 많은 죄책감을 느끼며 책을 버려왔다. 이번에 정리할 책은 월간지 중심이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매달 받아보는 월간지와 계간지를 꼼꼼히 읽지 못한다. 장르를 편식하기도 하고 아는 필자의 글이나 뛰어난 글, 쟁점이 되는 글 위주로 읽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머지는 나중에 읽어야지 하지만 그게 쉽지 않다. 그렇게 미련이 남아 보관하던 책의 일부가 처분 대상이 됐다. 단행본의 경우 거의 내 필요에 의해 구입한 것들이니 대부분 읽었으면서도 기를 쓰고 아끼게 된다. 선택에 대한 책임감처럼 느껴진다면 이유가 될까?
책을 정리하다 보니 예기치 않은 물건들과 마주하게 됐다. 아이들의 지난 사진이나 상장이 책 사이에서 나오면 반가워 아이들 방에 갖다 둔다. 정작 저희들은 나만큼 반가워하지도 않고 별로 대수롭지도 않은 걸 호들갑 떠느냐는 식의 미지근한 반응이 오기 십상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보물이라도 찾아낸 모양으로 반갑기만 하다.
이번에 책 정리를 하면서 특별히 더 반가운 몇 가지가 있었다.
첫 번째가 피에르 쇼데르로 드 라클라 의 책 <위험한 관계>다. 책장을 넘기니 이렇게 적혀있다. ‘2005. 국문학과 입학하여 첫 과제물 [이 책에서 나타난 18세기 프랑스적인 요소를 추출하여 자신의 생각에 다라 정리하고 그 성격에 대하여 규명해 보라]’
나는 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 2005 학번이다. 그전에 글쓰기를 시작했지만 내놓는 글마다 형편없었고 부끄러웠다. 지적 열등감에 빠져 대학에 가고 싶었고 문학을 제대로 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미 커가는 딸 셋 교육비만으로도 충분히 벅찬 상황에 정규 대학은 언감생심이었다. 방송대가 최선의 방법이라 생각했고 입학해 원 없이 공부했던 시절이었다. 그러니까 이 책은 입학해 첫 과제물이었다. 그때의 일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지금이라면 과제를 이해하고 무리 없이 해냈을 텐데 그때 나는 과제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줄거리 독후감을 써내서 B학점을 받았다. 충격인 건 나보다 나이도 한참 많고 글 솜씨도 별스럽지 않게 보이는 분은 당당히 A학점을 받았다는 거였다. 도대체 뭐가 문젠지 도저히 몰랐다. 제출하고 은근히 뿌듯하기까지 했는데 그야말로 자존심이 와르르 무너지는 일이었다. 교수가 원하는 게 무언지도 파악하지 못하고 독후감을 써냈으니 지금 생각하면 B학점도 감사한 일이었다. 그 교수는 채점하며 오히려 의아하지 않았을까?
두 번째는 책 속에서 찾아낸 한 통의 편지였다.
새로 이사 온 앞집 아이 엄마의 단정한 글씨체가 돋보이는 편지. 그때 나는 어쩌다 내 작품이 실린 계간지를 줬었나 보다. 내 아이들과 또래의 딸 둘을 데리고 이사 온 그녀는 고생을 많이 한 자신들에게 좋은 이웃이 생긴 것 같아 반갑고 낯선 곳에서 울타리가 생긴 것 같다고 썼다. 몇 년 뒤 이사 갈 때까지 그녀와 무탈하게 지냈던 기억이 있다. 그녀와 그 가족들은 지금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길에서 만나면 알아볼 수는 있을까. 잠시 생각에 잠겨봤다.
한때 나의 꿈은 시골에 살면서 개인도서관을 하고 싶었다. 마을 사람 누구나 와서 사랑방처럼 이용할 수 있는 마을 사랑방을 만들어 사랑방 지기가 되고 싶었다. 오래전 생태안내자 활동할 때 닉네임이 모과였다. 향으로, 맛으로, 모양으로 세 번 놀라지만 약효 뛰어난 모과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도서관 이름도 모과 도서관으로 미리 지었고 스탬프까지 만들었다. 구입하는 책마다 <모과 도서관>이라 스탬프도 찍었다. 얼마 못 가 그걸 잃어버리며 더 이상 하지 못했지만 꽤 여러 권에 찍혀있어 그 또한 반갑게 추억놀이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모과 도서관이 아닌, 자주 이용하던 동네 새마을 문고 스탬프가 찍힌 책 한 권이 나왔다. 어찌 된 일일까. 반납을 안 했다면 분명 독촉을 받거나 변상을 했을 텐데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책 도둑이 된 건가?
참으로 난감하고 민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내 나이쯤 되면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는 명품백은 욕심내 본 적도 없지만 책만큼은 욕심내며 산다. 내 책이 소중한 만큼 남의 책도 소중한 줄 알고 그 대상이 공공이라도 마찬가지다. 그때나 지금이나 이 마음이 똑같을진대 어찌 이런 일이 생긴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날 하루 마음이 영 무거웠다. 오랜 고민 끝에 떠오른 생각 하나, 분실했다고 생각해 새로 구입해 제출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럼 그렇지 도둑 누명 벗은 것처럼 마음이 홀가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