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드라망의 그물을 넓게 펼쳐
매달 첫 주 토요일이면 어김없이 지리산으로 간다.
‘저 사람 저렇게 쉬는 날도 없이 일만 하다 죽겠구나’ 어느 날 남편을 보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름 하여 <남편 살리기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지리산을 기반으로 한 달에 한 번 열리는 <지리산 문화예술 행복학교>라는 이상한 학교가 있다. 교실은 없지만 반이 있고 선생이 있고 학생이 있다. 이런저런 반이 생겨났다 없어지기도 하고 오랫동안 유지되기도 한다. 우린 그중에 <산야초반> 수강 신청을 했다. 3월 입학식에 다녀온 후 나보다 더 적극적으로 호응하는 남편을 보면서 마치 위기의 남편을 심폐소생술로 살린 기분이 든다. 토요일 새벽에 출발해 수업이 끝난 후 1박을 하며 지리산 주변을 여행한다. 지금까지 구례와 하동의 알려진 곳 대부분을 찬찬히 돌았다.
9월 수업은 늘 모이던 하동이 아닌 남원에서 모이기로 했다. 남원에 사는 개그맨 전유성 님이 같은 반 학우이고 직접 안내를 해주기로 했다. 한 달간 중앙아시아 여행을 다녀온 나는 학우들 몫으로 보드카 한 병을 챙겼지만 미처 숙소 예약을 못 한 상태로 수업에 참여했다.
점심을 먹기 전 전 선생님이 가위, 바위, 보 게임을 제안했다. 남편이 결승전까지 갔지만 아쉽게 우승하지 못했다. 우승자가 가려지자 상품이 공개됐다. 근처 귀정사라는 사찰에서 열리는 콘서트 표 두 장이었다. 그것도 무려 <정태춘 박은옥>이란다. 남편이 가장 좋아하는 가수고 운전하며 늘 듣는 노래들이다. 몹시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다고 포기하는 순간 우승자는 거기 갈 수 없는 상황이니 멀리서 온 우리 부부더러 가서 즐기란다. 더 놀라운 건 호텔 숙박권까지 덤으로 왔다. 이런 행운을 기대하고 숙소예약을 하지 않은 게 아닌데, 간밤에 꿈도 신통치 않았는데 이게 무슨 횡재인가 어안이 벙벙했다.
전 선생님의 지인 박 아무개님이 원래 주인이신데 코로나에 걸려 그 행운이 모두 우리에게 온 상황이었다. 나는 고마움에 그분이 사는 거라며 학우 13명의 점심값을 대신 지불했다.
콘서트 시간이 돼 전 선생님을 모시고 귀정사를 향했다. 도착해 현수막을 보고서야 무슨 행사인지 알게 됐다. <인드라망 사회연대쉼터 10주기 후원 콘서트>이었다. 그런 뜻깊은 콘서트인 줄 모르고 그저 산사음악회 정도로 알고 간 자리였다. 뜻밖에 거기서 내가 후원하고 있는 <세상과 함께> 유연스님을 만나니 이게 또 웬 인연인 가 싶었다. 그런데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그 시간 정말 엄청난 인연이 그때 내 주변에 있었다.
박은옥 가수가 콘서트 섭외 얘기를 하는 도중 김해에서 올라온 한 활동가 이름을 말했다. 처음엔 아무 생각 없이 들었는데 잠시 뒤 언뜻 떠오르는 이가 있었다.
“혹시 그 수O인가?” 물었더니 남편도 그런 거 같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확인해야지 싶었다. 콘서트가 끝나고 그 활동가를 찾아달라고 했고 잠시 뒤 정말 우리가 아는 그 수O이가 나타났다. 그때 고1 학생이었던 그 소녀가 멋진 청년 활동가가 된 모습으로.
지금 스물 세 살인 막내딸이 중 3 때 국정교과서 반대운동을 하면서 만나 선거권 하향 촉구 기자회견까지 했던 모임의 구성원이었다. 막내와 달리 그는 계속 활동가의 삶을 살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곳 쉼터에 왔다가 그곳 활동가가 됐고 근처로 귀촌까지 한 상태였다. 더 놀라운 건 전 선생님의 딸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도 한다고 했다.
인드라 망이 괜히 인드라망이 아니구나 우리도 이렇게 다 인드라망의 그물에 다 싸여있었구나 깨닫는 순간이었다.
남편이 정태춘과 박은옥을 좋아하지 않았다면, 내가 여독으로 수업에 참여하지 않았다면 우리 막내가 청소년 시기 그런 운동을 하지 않았다면 우리와 전 선생님이 산야초반 수강생이 되지 않았다면, 그 모든 ‘않았다면’의 결과는 그날 그 자리의 만남으로 이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 모든 것을 떠나 그 박 아무개님이 코로나에 걸리지 않았다면?
나는 새삼 인연의 깊고 넓음과 무거움을 느낀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도 허투루 하면 안 된다는 이치를 아주 선명하게 깨달았다.
그날 나는 후원을 망설이다 그냥 돌아왔다. 이미 후원하고 있는 곳들의 후원을 멈추지 않고 계속하는 게 현재 나의 목표고 상황이다.
다음 여행에 다시 그 앨 만나야겠다. 그날 차가 멀리 있어 주지 못한 용돈이라도 다시 찔러주고 와야 내 마음이 편하겠다. 청년 활동가가 된 고등학생 1학년 소녀를 다시 만난 기분으로 다시 한번 힘껏 안아주고 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