층간소음 나도 할 말 있어요
나는 배려심 없는 사람인가?
나를 비롯해 우리 식구들은 대부분 저녁형 인간들이다. 남편의 귀가 시간이 늦은 이유도 있지만 다들 자연스럽게 습관이 그렇게 들었다. 남편은 늦은 저녁을 먹고 11시쯤 잠자리에 든다. 그나마 둘째만 유일하게 밤 10시쯤 잠들고 나는 자정을 넘긴 시간까지 잠들지 못하는 날이 많다. 난 늦게 자는 대신 대부분 거실에서 책을 읽고 막내 역시 제 방에서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본다. 그러니까 내 얘긴 우리가 비록 늦게까지 깨어 있는 집이지만 부산한 집은 아니라는 말이다.
며칠 전 밤이다. 남편이 막 잠자리에 들 시간이었으니 11시쯤으로 기억한다. 초인종이 울렸다. 나는 그때 소파에 앉아 빨래를 개고 있었다. 그 밤에 누가 올 거라 생각 못했지만 일단 문을 열었다.
“아래층인데요. 밤마다 시끄러워서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어요. 안방에서 지금 청소기 돌려요?”
문이 채 다 열리기도 전에 여자가 불만을 쏟아냈다. 남자는 계단을 다 올라오지 않고 멀찍이 서 있었다.
놀라기도 했지만 일단 잠시 기다려 보라고 했다. 급히 문을 닫고 안방으로 갔다. 남편 손에 테이프 클리너 일명 돌돌이가 들려 있었다. 말하자면 현장범인 셈이다. 그런데 나도 남편도 그 소리가 아래층에 전달될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하얀색 고양이를 키우면서 털 알레르기가 있는 남편은 잠자리에 들기 전 의식처럼 그 문제의 돌돌이를 사용해 털을 제거했다. 그러다 보니 더러 바닥까지 밀 때가 있었다.
다시 문을 열고 말했다.
“아, 몰랐어요. 정말 미안해요. 앞으로 안 할게요.”
“제가 임산부라 10시면 자야 하거든요. 밤에는 조심해 주세요.”
“정말 미안해요. 아래층까지 들리는 줄 정말 몰랐어요. 근데 언제 이사 오셨어요?”
“한 달 좀 넘었어요.”
집주인이 이사 가고 몇 달간 비어있던 집이다. 나는 낮에 작업실에 있으니 이사 온 줄 몰랐고 마침 한 달여 중앙아시아로 여행을 다녀온 지 이틀 밖에 되지 않은 날이었다. 내가 집을 비운 사이 이사를 왔고 남편은 여전히 그 의식을 치렀을 것이다. 다시 한번 사과하고 문을 닫으려다 혹시 싶어서 다시 물었다.
“혹시 다른 불편한 건 없으세요?”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여자가 불만을 쏟아냈다.
“발소리요. 너무 쿵쿵거려요.”
“발소리요? 우린 쿵쿵거릴 애가 없는데요”
“아니, 어른 발소리요. 혹시 몸 불편한 사람이 사나 했어요.”
이건 정말 예상하지 못한 대답이었다. 여자는 이때다 싶은지 다시 말을 이었다.
“이 아파트 층간소음 심하다는 건 알고 왔는데 너무 심해요.”
듣자 하니 나도 슬며시 약이 올랐다.
“우리가 늦게 자긴 하지만 일부러 쿵쿵거리는 거 아니고 걸어 다니는 거 까지 안 할 수는 없으니 그건 좀 저도 어쩔 수 없네요. 아무튼 돌돌이는 조심할게요.”
그렇게 여자를 돌려보냈다.
나는 이웃을 배려하지 못하는 사람인가? 층간소음을 일으킨 가해자 입장이 되어 항의를 받고 나니 기분이 영 산뜻하지 못했다. 돌돌이 소리가 그 집까지 들렀다면 늦은 밤 이웃에 민폐를 준 우리 잘못이 맞다. 그런데 발소리까지 문제 삼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과하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공동주택 살면서 산중 절간처럼 조용하길 바랐나? 자꾸 약이 올랐다. 임신해서 예민한 건 알지만 그 밤에 그렇게 쫓아오는 건 본인들도 예의 없는 거 아닌가? 나도 위층에서 쿵쿵거려도 여태 항의하지 못하고 참고 사는데. 온갖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 이사 간 아래층 집주인에게 전화했다. 살면서 우리 때문에 불편하셨는지 묻고 지난밤 얘기를 했다. 자신은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며 층간 소음이야 좀 그러니라 해야지 하면서 안타까워했다. 집 보러 왔을 때 좀 예민해 보였다며 나를 걱정해 줬다. 아래층 주인과는 사이가 좋았으니 세입자보다 내 편을 들어주려는 듯했다.
우리는 아래층과 비슷한 시기에 이사 왔다. 이사해 안방 변기를 교체했다. 물소리가 전보다 크게 들렸다. 내려가서 혹시 물소리가 거슬리면 수압을 낮추겠다고 했다. 웃으며 전혀 신경 쓰지 말라고 하셨다. 어느 해 추석 때 그 댁 화장실 천장에 누수가 생겼다. 명절이라 바로 공사할 수 없었다. 불편을 드리게 됐으니 며칠간 죄인이 된 기분이었다. 공사를 하고 아래층 집주인과는 그러면서 친해졌다.
위층과는 아예 절연하고 산다. 이 집에 이사 온 지 10년이 넘었다. 우리로선 제대로 된 첫 집이라 인테리어도 새로 하고 들어왔다. 이사하고 두 달쯤 됐을 때 부엌 천장에 얼룩이 지기 시작했다 누수였다. 윗집은 누수탐지를 차일피일 미뤘다. 결국 우리가 사람을 불렀다. 보일러 배관이 문제였다. 그런데 업자가 자기는 그렇게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과는 일을 하지 못하겠다고 했다. 위집은 내게도 그랬다. 도저히 상식이 통하지 않았다. 우리 집 천장을 뚫어 공사를 해야 한다느니 직접 도배해 줄 테니 벽지를 내놓으라느니(도배를 했으면 남은 벽지가 당연히 있어야 한다고 믿었다) 우리 때문에 자기네 보일러를 교체한다느니. 더 이상 상대하기 싫어 도배했던 곳의 명함을 주고 알아서 해달라고 했다. 위집은 그 후로 도배는커녕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이 지나가 버렸다. 지금도 나는 위집과는 인사도 안 하고 산다.
그러니 나는 이제 예의 없는 위층과 예민한 아래층 사이의 낀 세대가 됐다. 집에 오면 저녁식사보다 먼저 돌돌이로 고양이털을 제거하고 소음이 생길만한 일이 없는지 살펴 그 일부터 처리한다. 그러다 보니 저녁이 자꾸 늦어진다. 안 하던 시집살이를 아래층 임산부 덕에 하고 있는 기분이다.
그런데 나는 정말 배려가 없는 사람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