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자유로운 글쓰기 여행자 May 21. 2023
작가의 방
사람의 인연이 참으로 예측불가임을 느낀다.
그녀와 나는 늦깎이로 입학한 대학 신입생 환영회 자리에서 처음 마주했다. 그녀는 첫인상부터 나와는 전혀 상반되는 인물로 보였다. 그녀의 인상이 나빴다거나 비호감이어서가 아니다. 첫인상으로 말하자면 오히려 흠잡을 데 없다고 해야 옳은 표현이다. 40대 중반의 그녀는 아름다운 외모에 걸맞게 다정하고 차분한 음성으로 자기소개를 했다. 인상적이고 박수받을 만한 소개였다. 그런데도 내게는 왜 그녀가 비호감처럼 느껴졌을까.
나와는 너무도 다른 그녀.
당시 나는 30대 중반의 딸 셋 육아에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다. 남편은 지방에 있으면서 2주에 한 번 겨우 올라올 만큼 부지런히 살았지만 생활은 나아질 줄 몰랐다. 한창의 나이에 생활에 지쳐 있었고 정신은 점점 나락으로 빠져들어 갔다. 그런 나의 피해의식 때문이었을까. 척 보기에 고민이라곤 없어 보이는 그녀가 부럽기 전에 왜 가식처럼 보였을까.
다정다감하지 못하고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이라 사람 사귀는데 힘든 내게 그녀는 늘 웃어주고 먼저 다가와 줬다. 내게만 특별히 그런 게 아니라 주변 모두에게 한결같은 사람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가식이라 느꼈던 많은 이유들이 진심이었음을 알아차렸다. 그렇게 18년을 함께 같은 길을 가고 있다. 그녀는 수필가로, 나는 소설가로.
작업실을 갖는 게 소원이었다.
작업실이라니, 나 같은 무명의 작가 주제에 그런 꿈을 꾼다는 사실조차 차마 발설하면 안 되는 비밀처럼 간직하고 있었다. 방이 세 개뿐인데 가족이 다섯이니 세 딸에게도 하나씩 차례가 가지 않아 둘째와 셋째가 한방을 쓰는 형편에 독방이라니 언감생심이었다.
늘 카페를 전전했다. ‘카페유목민’, 그날그날 카페를 찾아다니고 주인의 눈치를 봐야 했다.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숍이 좋은 이유는 단 한 가지, 주인의 눈치를 보지 않고 몇 시간씩 눌러앉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혹자들은 커피숍에 몇 시간씩 죽치고 앉아있는 이른바 ‘카공 족’에 대해 쓴소리를 하지만 내 경우 그곳은 내게 유일한 작업공간이었고 쉴만한 물가였다.
가질 수 없는 것에 대리만족을 느껴보기도 했다. 우리나라 유명 작가들의 창작의 공간을 소개하는 <그 작가, 그 공간>이라는 책을 읽다가 한없이 작아지는 스스로에 소심해져 울컥 서러워지기도 했다. 외국 여성작가 35인의 창작의 무대를 소개한 책 <글 쓰는 여자의 공간>을 읽으면서 소망이 더 간절해졌다.
구체적인 꿈을 그려보기도 했다.
사방 벽면을 꽉 채운 서가에는 빈틈없이 책을 채우고, 튼튼하고 커다란 책상과, 오랜 시간 편안하게 책을 읽을 수도 있고 잠깐씩 낮잠을 잘 수도 있는 길고 폭신한 의자, 이따금 눈 마주치고 쓰다듬으며 마음의 안정을 찾게 해주는 내 하얀 고양이. 문득문득 살림을 돌보거나 식구들을 챙겨야 하는 집이 아닌 완전히 독립된 공간. 그 모든 걸 갖춘 곳이 번잡한 도시가 아니었으면 했다.
그렇게 시골 빈집을 꿈꾸기 시작했고 오랜 세월 매달 야금야금 돈을 모았다. 드디어 구체적으로 꿈을 실행하기 직전 남편의 사업이 힘들어지면서 돈도 꿈도 흔적 없이 사라졌다. 아직은 때가 아닌 거지 스스로를 위로하며 공간은 핑계다, 책상이 없으면 밥상에서 쓰면 되지 생각했다. 그렇게 꿈만 꾸다 영원히 정착하지 못하고 카페 유목민으로 작가의 삶이 끝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나는 내 독립된 공간, 내 작업실을 갖게 됐고 그 첫 작업으로 이 글을 쓰고 있다.
예측불가 인연의 그녀가 내게 이 공간을 임대해 줬다.
작년 그녀의 집은 바로 앞 안양천이 범람하며 지하의 두 가구가 잠기는 수해를 입었다. 설상가상 그녀는 폐암이라는 큰 병을 치료하던 시기여서 얼마나 망연자실했을지 옆에서 두고 보기 안타까울 지경이었다. 그 집이 비어있었고 어찌어찌 그 집에 들어오게 됐다. 오래된 인연의 두 여자는 그렇게 윗집 주인, 아랫집 세입자가 되었다.
저렴한 임대료에 방을 두 개나 차지하는 건 부담스러우니 작은방 하나를 다시 그녀에게 내줬다. 주부에게 자기만의 공간이 가지는 의미를 너무도 잘 알기 때문에 그러라 했다. 그녀에겐 서재가 있지만 자기 집이 아닌 곳에서 오롯이 자기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그 또한 특별하지 않겠는가.
그녀는 흔쾌히 받아들였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그림을 먼저 걸고 그 방을 응접실처럼 쓰고 싶다고 했다. 주부들 중에 자기 집을 남에게 공개하는 일이 반가운 사람이 얼마나 있겠나.
그렇게 이 공간은 거실을 중심으로 한 방에는 소설가가 한 방에는 수필가가 각자의 꿈을 키우는 공간으로 재탄생하게 됐다. 수해의 불운이 두 작가의 희망이란 시나리오를 무대에 올릴 수 있게 해 줄 거라 불과 2주 전에는 생각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