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쫓겨날지라도 나는 오늘 대추나무 한 그루를 심었네
감나무 옆에 대추나무를 심는데 자꾸 비실비실 웃음이 났다.
“그래, 뭐 내가 못 먹으면 누구라도 먹겠지.”
얼마 전 시장에서 대추 한 팩을 샀다. 대추를 생으로 먹어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대추 하면 떠오르는 바짝 말라 쭈글 거리는 다 익은 대추가 아니라 아직 푸른색이 약간 도는 갈색의 생대추가 얼마나 달고 맛있는지.
과일가게에서 집어 든 대추의 크기가 예사롭지 않았다. ‘사과 대추’ 들어보긴 했는데 직접 구입은 처음이라 기껏 대추 한 팩이 뭐라고 집에 오는 동안 살짝 궁금하고 설레었다.
“이건 정말 경이로워, 먹어봐.”
막내의 반응은 시큰둥하고 기껏 대추 한 알에 흥분하는 내가 의외라는 듯이 물끄러미 쳐다봤다. ‘니가 대추 맛을 알어?’ 속에 말을 하면서 인터넷으로 사과대추를 검색해봤다. 딱 거기까지만 했어야 하는데 그만 충동구매를 해버렸다. 그것도 대추가 아닌 대추나무 묘목을. 결재를 하고서야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했는지 현실 자각을 하게 됐다. 내가 구입해야 하는 것은 대추였다. 대추나무 묘목이 아니라. 내 집은 아파트 9층이고 나는 대추나무를 키울 한 평의 땅도 없는 도시 사람이다. 그런데 왜?
나는 시골에서 나고 자랐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되면서 도시로 나왔지만 나는 여전히 시골의 생활이 그립다. 언젠가 꼭 시골에 가서 흙을 밟으며 살고 싶은 희망이 있다. 실제로 몇 년 전에 그 꿈을 이룰 기회가 있었다. 오랫동안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저축을 했고 넉넉하지 않지만 수준에 맞는 적당한 땅과 농가를 열심히 찾아보기도 했었다. 그 시점에 예기치 않았던 일을 겪으며 그 돈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때 잠시 무기력에 빠져버렸다. 희망이 사라졌다는 것보다 이 나이에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것에 자신감이 끝없이 추락하는 기분이 들어 견딜 수 없었다.
내 것이 아닌 것에는 원래부터 욕심이 없다. 아니다 싶은 것에는 포기도 빠른 편이다. 내가 지금 할 수 없는 것에 미련을 갖기보다 지금 상황에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보자는 게 기본적인 생각이다. 그러니 시골 내 밭보다 회사 옆 텃밭에 더 애정을 갖고 할 수 있는 만큼 즐기고 있다. 대추나무도 분명 그런 마음이 무의식 중에 작용했을 것이다. 처음 든 생각은 남은 큰 화분에 대추나무를 한 그루 심어 분재처럼 키우자. 내 손으로 키워 열매 맺는 것을 보고 싶은 욕구가 마구 솟아났다. ‘이 없으면 잇몸이지 땅이 없으면 화분에 키우지 안 될 게 뭐야.’ 이 대책 없는 긍정 마인드는 또 뭐란 말인가.
검색해서 적당하다고 선택한 것은 묶음 배송에 자그마치 여섯 그루나 됐다. 그렇지만 내게 필요한 건 딱 한 그루다. 잠깐 고민했다. 그러나 며칠 후 고향에 내려갈 계획이 있으니 고향 집에 가져가 심고 이웃한 지역에 사는 친구의 정원에도 한 그루 심고 회사 옆에도 한 그루 심고. 그렇게 헤아려보자 여섯 그루가 결코 많지 않다고 부추겼다. 하여간 배짱과 오지랖만큼은 국대급이다.
배송된 여섯 그루 묘목을 보니 다시 웃음이 나왔다. 남들이 이걸 보면 뭐라고 할까. 큰 화분에 우선 한 그루를 심었다. 그런 다음 다 늦게 열매를 맺고 있는 감나무 옆 고추나무를 미련 없이 뽑았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자리는 거기밖에 없었고 서리 내리면 어차피 고추는 뽑아야 하니 조금 시기를 앞당길 뿐이라고 합리화하면서. 화분에 심은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혹자들은 궁금할 것이다. 굳이 남의 땅에 왜?
몇 해 전 주인이 화단에 감나무를 한 그루 심었다. 기특하게도 작년에 그 나무에 감 네 개가 열렸다. 내 것이 아니지만 감꽃이 피고 점점 커가는 동안 나는 내 것처럼 조바심을 내며 지켜봤다. 태풍이 오고 긴 장마가 오고 또 태풍이 오고 그때마다 떨어지지 않았을까 자주 쳐다봤다. 마침 감에 주황색이 돌 때쯤 주인이 와서 홀랑 따가 버렸다. 상실감이 그런 걸까. 내 것이 아니지만 나는 그 감을 잃었다는 낭패감과 우릴 믿지 못해 설익은 감을 따 갈 만큼 사나운 인정에 배신감마저 들 정도였다. 내가 아무리 감을 좋아해도 남의 것을 욕심낼 정도는 아닌데, 한 번도 그런 마음먹은 적 없는데 그저 보면서 즐거웠던 마음을 할퀴고 간 것처럼 생채기가 남았다. 그 감나무에 올해는 감이 세 개 열렸었다. 어쩐 일인지 두 개는 자취가 없고 한 개가 남아 익어가고 있다. 그걸 보는 내 마음이 예전 같지 않다. 확실히 감동이 덜하다. 그건 어쩌면 상처받기 싫은 방어본능 같은 것이리라.
그 감나무 옆에 대추나무를 심었다. 얼마 전에 주인이 공장을 매매로 내놨다는 소식을 들었으니 우린 언제 쫓겨날지 모를 일이다. 그러니 내가 대추나무를 심은 행위는 그야말로 남 좋은 일 하는 것이 맞다.
그럼에도 나는 기분 좋게 한 그루 대추나무를 심었다. 무럭무럭 잘 자라라고 주문 외는 것도 잊지 않았다. 스피노자의 마음은 모르겠고 내일 당장 쫓겨나도 나는 오늘 대추나무 한 그루를 심었노라고 말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