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플라스틱 컵과 나무젓가락을 들고 나의 텃밭으로 나간다.
관리가 안 돼 보기 싫게 방치되던 건물 옆 화단을 텃밭으로 만든 지 벌써 8년 차다. 첫 해엔 상추 등의 쌈채소 몇 가지를 심었고 다음 해부턴 고추도 몇 주 토마토도 심어봤다. 그렇게 봄부터 가을까지 상추, 고추, 토마트를 주변 사람들과 나눠 먹으며 텃밭 가꾸는 재미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작년에 처음으로 배추를 심었다. 달팽이가 얼마나 극성이었는지 어린 배추에 포기 생길 때까지 매일 수십 마리의 달팽이를 잡고 또 잡았다. 퇴비도 제대로 못하고 비료도 주지 않고 농약도 살포하지 않고 태평하게 달팽이나 겨우 잡아주면서 키웠더니 당연히 사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부실하기 짝이 없었다. 포기 수로 열한 포기였지만 워낙 작아서 김치통으로 한 통이나 나왔을까? 그런데 맛은 절임배추 주문해서 함께 담근 것과 비교불가였다. 식구들도 맛을 알아 통을 다 비우고 나서야 다른 김치에 손이 갈 정도였다.
작년의 경험이 있으니 올해는 호기롭게 작년보다 훨씬 많이 심었다. 실패한 한 두 포기 빼고 살아서 크고 있는 것만 해도 70포기 정도 되는 것 같다. 물론 나 혼자 먹으려는 것보다 이번에도 주변에 인심을 좀 쓸 생각이다. 김장을 하든 시래기를 하든 그건 각자 알아서 할 일이다.
그런데 배추 농사가 생각만큼 쉽지 않다.
미끈하게 잘 자란 밭의 배추들에 비해 내 배추들은 생육속도가 완전 인큐베이터 미숙아처럼 기약 없이 늦다.
물론 남들보다 늦게 심기도 했고 영양분도 부족하지만 더 큰 문제는 햇빛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해를 받는 건물 남쪽 벽 아래 화분의 배추들은 벌써 속이 차오르려고 준비 중이다. 그런데 오후에만 빛을 받는 서쪽의 텃밭 배추들은 같은 날 심었다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성장 속도가 느리다.
어린 모종을 심고 어느 정도 자라면 그때부터 배추벌레와 달팽이로부터 배추 지키기를 해야 하는데 지금이 한창 그 시기가 됐다. 매일 잡아도 매일 여 보란 듯이 출몰한다. 팥알보다 작은 달팽이들은 땅속에 있다 밤에 활동하는 야행성이란다. 그러니 밤새 배춧잎을 갉아먹고 땅속으로 들어가기 전 잡아줘야 해서 아침 일찍 서둘러야 한다. 배추벌레는 배춧잎 색깔과 비슷해 찾기 힘들다. 할 수 없이 나무젓가락으로 배춧잎 한 장 한 장 헤아리면서 찾아야 한다.
지인들이 나에게 쓸데없는 짓 한다거나 배추벌레가 징그럽지 않으냐 물을 때가 더러 있다.
그들에겐 배추 값 몇만 원 아끼자고 허구한 날 쭈그려 앉아 있는 내가 한심해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건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하는 말이다. 나는 텃밭을 가꾸면서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힐링을 하고 있다. 상추, 고추, 쑥갓, 부추, 토마토 등등 심은 대로 정성으로 가꾸고 그 아이들 크는 거 보는 재미가 얼마나 큰 보람인지 그들은 모른다.
징그럽지 않냐고 묻는다. 물론 나도 벌레가 징그럽고 무섭다. 장갑을 껴도 만질 수 없어 나무젓가락을 이용한다. 그렇게 작업을 할 때마다 나의 머릿속은 온통 이 벌레들로부터 내 배추들을 구해야 한다는 생각뿐이다.
솔직히 벌레를 잡을 때마다 내가 이 짓을 왜 시작했나 후회막급일 때도 더러 있다. 그럴 때마다 손쉽게 살충제를 뿌려볼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쪼그려 앉아 눈에 힘 팍 주고 배춧잎 한 장 한 장 들춰본다.
나의 사랑하는 배추들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여기가 지금 내게 가장 큰 힐링 포인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