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몸이 원하는 방향 -제주

내가 바로 방랑 식객


   

  슬슬 발동인 걸렸다. 한 번쯤 떠나야 할 때가 왔다고 몸이 말하고 있었다.

  곧 새해가 오기 전에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의식 같은 것이 필요했다. 한 해 동안 썼던 글을 마무리하는 작업과 새해부터 하려고 마음먹은 작업에 대한 준비도 해야 했다. 아니 그것은 어쩌면 표면적인 핑계일지 모른다. 고독이 병이 아니라 힘이 되는 기질, 가족과 일상으로부터 멀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에너지가 생기는 이상한 병이 있음이다. 제때를 놓치면 우울이 깊어져 빠져나오기 더 힘들어진다.   

  그동안 열심히 살았다. 태생이 게으르고 느긋한 사람인데 주어진 여건이 그렇지 못하니 겁 없이 달려들 일이 많다. 주변에 살펴야 할 일이 많았고 그냥 눈 한 번 꾹 감고 넘기지 못할 일이 유난히 많은 해였다. 그럴수록 내 깜냥과 그릇이 작아 넘칠 때마다 자책하곤 했다. 그런 성향임에도 한 눈 팔지 못하고 다른 길이나 요령을 피울 줄 모르니 내 일과 주변 일에서 갈등이 생기는 걸 견디지 못했고 번번이 나를 죽이는 결과로 타협에 이르곤 했다.

  그러니까 결과적으로 나는 혼자 고민하고 혼자 앓는 것에 최적화된 사람이다.

  위로받는 것이 어색해 차라리 혼자 삼키는 게 단련돼 있고 방전됐다 싶으면 차라리 어디 숨어버린다. 그렇게 고요하게 며칠 지내다 보면 충전되어 다시 살아갈 힘을 얻곤 한다. 겉으로 멀쩡해 보이지만 열등감 절고 사회성 떨어지는 지지리 궁상 찐따가 나다.      

  제주도는 내게 가장 많은 에너지를 주는 곳이다. 자연이 주는 힘이 가장 강한 곳이다. 굳이 제주도로 가는 건 그런 자연환경도 있지만 가장 확실하게 떠남을 보장받는 곳이기 때문이다.

비행기를 예매해야만 하고 숙소를 예약해야만 하는 점도 그렇지만 일련의 과정이 쉽게 되돌릴 수 없게 하는 힘이 있다.

  이번엔 좀 오래 있기로 했다. 충전이 목적이니 다른 계획을 일절 하지 않았다. 일단 떠나서 상황 따라 움직여 보리라. 마침 교류가 오래된 작가님이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를 2주 예약했다. 큰 부상을 입어 깁스를 했다는 소식에 잠시 망설였지만 스텝들을 믿고 떠났다.      

  날씨가 허락하는 날이면 레트리버 강아지 구월이를 데리고 산책을 나갔다. 바닷가에서 잠시 쉬면서 고래를 기다리는 시간. 무엇보다 충만한 시간이었다. 바다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고 내 이야기를 고백했다.  

  불편한 몸으로도 내게 이것저것 많은 걸 보여주고자 외출을 감행한 작가님의 깊은 뜻은 두고두고 잊을 수 없다. 글을 쓰는 내게 영감을 주기 위한 배려였으리라.

  무엇보다 삼시세끼 맛있는 음식의 공격에 도저히 방어불능의 상황까지. 날 먹이고 재우고 살 찌우기 위한 작전이라도 미리 세운 게 틀림없었다. 특히 새벽마다 인도 음악을 들으며 조식을 준비하던 롭샹의 뒷모습은 마치 성자와도 같았다. 수저와 반찬 놓는 거 외엔 손 하나 까딱하는 것도 허락하지 않던 그 배려는 살림에 지친 주부를 한 순간 귀부인으로 만들어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매일 아침 잔칫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조식도 모자라 단 한 끼도 지나침 없이 매 끼니를 함께 한 것은 나를 보통의 게스트가 아닌 가족으로, 식구로 대하려는 마음 씀이었으리라.

  낮에는 그렇게 어울려 지내다 저녁을 먹고 혼자가 되면 비로소 찾아오는 여유와 고독의 시간. 와인 한 잔을 마시며 늦은 시간까지 책을 읽고 글을 쓰며 다음날 아무것도 계획하지 않고 무방비로 있어도 된다는 여유가 주는 충만함. 불면증까지 내게 협조한 듯 잘 자는 날이 집에서보다 훨씬 많았으니 묘한 일이었다.

  너무 멀어 긴가민가했지만 롭샹이 명확하게 정의 내려준 그것은 고래 떼. 나는 과연 고래 떼를 만날 수 있을까 내내 고대했던 일이 실제로 일어났을 때의 벅찬 감동.     

  열 번이 넘는 제주여행 중 비행기가 이륙하고 저 멀리 제주도의 불빛과 어선의 불빛을 내려다보면서 다시 내리고 싶다는 생각을 가장 크게 했던 여행.

  서울 상공에서 내려다본 야경에 마치 밀림에서 포획돼 도시로 끌려오는 한 마리 짐승 같은 마음이 들었다는 것을 육지의 내 가족이 안다면 섭섭했겠지만 나는 우리에 갇혀있기는 너무도 자유로운 영혼을 타고난 게 아닐까.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왜 부자가 아닌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