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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부자가 아닌가?

이렇게 알뜰한데 나는 왜 부자가 아닐까?

     

다시 귤칩을 만든다.

지난주에도 선물 들어온 유기농 귤 한 박스를 가정용 식품건조기로 만들었다. 바삭하게 만들었더니 간식으로도 마른안주로도 제격이었다. 예상보다 식구들 반응이 좋은 건 반가운데 고민이 생겼다. 맛있는 건 나눠먹어야 하는 오지랖 병이 여지없이 발동했다.

며칠 전 주문한 15kg짜리 유기농 귤 한 박스가 왔다.

창밖엔 함박눈이 내린다. 유기농이라지만 식초를 푼 물에 담가 두었던 귤을 하나씩 다시 꼼꼼하게 세척해 잘 드는 칼로 썬다. 선별과정을 거치지 않은 귤은 크기가 들쭉날쭉이다. 표면이 매끄럽지 않은 게 대부분이다. 유기농 특성이려니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한다.

양쪽 끝을 자르고 네 쪽씩 잘라 한쪽 그릇에 담는다. 여덟 칸짜리 식품건조기에 들어갈 만큼의 양을 다 썰고 보니 귤칩이 되지 못하는 끝부분들의 양이 꽤 많다. 지난번엔 그걸 생각 없이 버렸다.

일일이 알맹이를 발라 냄비에 담고 껍질을 채로 썬다. 발라낸 알맹이는 졸여서 잼을 만들고 채 썬 껍데기는 귤피차로 건조할 계획이다. 남은 건 한 줌의 꼭지 부분뿐이다.

다 해놓고 보니 혼자서 흡족하다. 가족들 단톡방에 네 장의 사진을 보낸다. 그리고 그 밑에 이렇게 멘트를 달았다.

"이렇게 알뜰한데 왜 부자가 아닐까? OTL"

도대체가 맛있는 건 나눠먹어야 하는 나눔 병에 걸린 게 틀림없다. 이번에도 직접 만든 귤잼과 귤칩 감말랭이까지 나눠야 할 사람들이 많다. ‘잘 먹겠다’. ‘맛있다’는 인사 한 마디면 만족하는 나는 부자도 아니면서 왜 이러는지 나도 정말 모르겠다.

그럼에도 그 병을 고치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는다. ‘나만 잘살믄 무슨 재민겨?’라고 말했던 분이 계셨다. ‘나만 잘 먹으면 나만 살찌겠지, 나 혼자 살찌는 건 참을 수 없다. 다 같이 잘 먹고 잘 살자’ 나는 이렇게 앙큼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꼭 부자가 되야해?

난 그냥 지금처럼 살아도 좋다

그뿐이다


맛있어져라  맛있어져라

알뜰하게 발라냈다

귤피차도  이제 사지 않아

남은 건 이제 요것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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