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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금없는 묘생

   뜬금없는 묘생                            

  회사 마당 한쪽에 컨테이너 조립식 건물 한 채가 있었다. 앞 공장의 기숙사로 사용하던 건물인데 우리가 공장 한 동을 임대하기 전부터 있었으니 10년이 훌쩍 지났을 것이다. 건물과 바닥 사이에는 사람 손으로 한 뼘 정도의 틈이 있었는데 길고양이들이 터를 삼았는지 종종 눈에 띄곤 했었다. 공장지대에다 민가와는 멀리 떨어진 곳인데 어쩌다 고양이들이 그곳에 터를 잡게 되었는지 알 길이 없지만 영역 동물인 고양이들과 우리는 마당 하나를 공유하고 있는 셈이었다. 그러다가 지난여름 쓸모를 다한 건물은 폐기되었다. 하필 건물이 우리 쪽에 있어 그늘을 만드는 통에 겨울이면 빙판과 제설 작업의 곤란으로 앓던 이를 빼낸 것처럼 속이 다 시원했다. 그때까지 그 아래 살던 고양이에 대해선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그 후로도 회사 마당에 한 번씩 고양이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마당을 가로질러 경사면을 오르면 바로 야산인 까닭에 영역 동물인 고양이들이 컨테이너 건물이 사라진 뒤에도 계속해서 근처에서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반려동물을 키워본 경험도 없고 특히나 우리에겐 곁을 주지 않는 길고양이들이기에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그러다 지난해 늦가을부터 회사 차장님이 어린 고양이 두 마리에게 사료를 주기 시작했다. 컨테이너를 철거하기 전 태어난 고양이들인지 다른 고양이들에 비해 작은 녀석들이었다. 코로나 19로 회사는 경영난을 겪게 되고 차장님은 지난겨울부터 유급휴직 중이다. 

  직원들이 휴직 중인 회사에는 남편 홀로 있는 날이 대부분이다. 애초에 차장님이 고양이를 챙겨줄 때 남편은 영 못마땅한 눈치였다. 아무리 길고양이라지만 단순히 사료만 챙겨준다고 다가 아니라는 것이 남편의 주장이었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한 번 정을 주면 끊어내기 힘든 것이고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일러두었다고 한다. 걱정했던 것처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차장님은 긴 휴직에 들어갔고 곧 추운 겨울이 오고 있었다. 그 뒤부터 어쩔 수 없이 고양이 급식은 남편이 챙기는 듯했다. 고양이에 대한 지식은커녕 애정조차 없던 남편이 매일매일 고양이 밥을 챙긴다는 말에 나를 비롯하여 식구들 모두 믿어지지 않는다는 반응이었다. 

  그즈음 나도 일주일에 한두 번씩 출근을 하게 되었다. 경험 많은 고양이 집사들에게 물어 처음 밥을 챙기게 된 고양이 두 마리에게 ‘알로기’ ‘달록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그들이 추위를 피할 수 있도록 스티로폼 박스로 집도 지어주었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길고양이 여러 마리가 호시탐탐 밥그릇을 탐하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이 우린 또 새로 나타나는 아이들마다 재미 삼아 이름을 하나씩 지어주기 시작했다. 알록이, 달록이, 얼룩이, 하양이, 포동이, 빼꼼이. 그렇게 뜻하지 않게 계획에 없던 길냥이 급식을 하던 어느 날 문제의 그 녀석이 나타났다.

  ‘뜬금이’ 녀석의 이름은 ‘뜬금이’다. 

  고양이 급식을 하다 보니 제일 먼저 인연이 된 알록이, 달록이가 다른 큰 고양이들이 나타나면 자꾸 쫓겨 도망가는 게 안쓰러워 두 마리만 특별히 공장 안에서 급식을 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하얀 고양이 한 마리가 열린 문틈으로 몰래 들어와 알록이, 달록이와 함께 겸상을 하는 것이 눈에 띄었다. 그런데다 급식만 하고 줄행랑을 치는 알록이, 달록이와 다르게 자꾸 우리 곁을 맴돌고 친한 척을 하는 게 아닌가. 절대 접근 금지인 다른 고양이들과 달리 먼저 다가와 우리 다리에 제 몸을 밀착시키고 만져주면 배를 보이고 누워서 재롱까지 떨었다.     정말 뜬금없이 나타나 온갖 뜬금없는 짓을 해대는 통에 우린 그 아이 이름을 ‘뜬금이’라 지었다. 그런데 그 아이 하는 짓이 일반 길냥이라면 도저히 그럴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그 아인 유기묘가 틀림없다고 생각되었다. 사람 손을 많이 타서 그 습성이 남아있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흔히 보던 한국 토종 고양이와 생김새도 좀 달랐다. 친구에게 사진을 보냈더니 제가 키우는 반려묘와 같은  터키쉬 앙고라 믹스 품종 묘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누군가 키우다 유기했을 거라는 의심이 더 깊어졌다. 누가 무슨 이유로 그렇게 잘 따르는 자신의 고양이를 그런 공장지대에 유기했을까. 안타까운 마음과 애교에 점점 더 애착이 형성되는 것 같았다. 

  그러던 뜬금이에게 일이 생겼다.

  어느 날 아침 왼쪽 앞발을 절뚝이며 들어온 뜬금이는 상처를 입은 채였다. 전날 저녁까지 멀쩡하게 밥을 먹고 갔다는데 밤사이 다친 데다 누군가 다친 다리에 거즈를 붙여놓고 테이핑을 해놓은 상태였다. 우리는 어쩔 줄을 몰라하다가 수소문하여 동물구조협회에 도움을 요청했다. 그런데 그 사이 동물구조협회에 가게 되면 다친 동물의 경우 대부분이 안락사에 처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얼마 후 구조자가 방문하고 우리가 알게 된 내용이 사실이라는 것을 확인하게 된 이상 도저히 그의 케이지안에 뜬금이를 실려 보낼 수가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그렇게 잘 따르고 예쁜 아이를 단지 다쳤다는 이유로 안락사에 처하게 한다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만 같았다.

  다친 뜬금이를 박스에 넣어 생전 처음 동물병원이란 곳에 가게 되었다. 다행히 뼈는 상하지 않았는데 이미 괴사가 진행된 것으로 보아 다친 지 며칠 된 것 같고 무리들과 싸우다 다친 것 같다는 소견이었다. 상처가 꽤 심해서 우리가 모르고 지나쳤을 리가 없고 멀쩡해 보였던 것이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었지만 어쨌든 일은 벌어졌고 급히 수술을 하게 되었다. 이름처럼 점말 뜬금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수술 후 입원을 시켜놓고 회사로 돌아오면서 남편에게 그랬다.

  “이게 다 당신이 이름을 잘못 지어서 그래. 이 시국에 현금이나 로또 대박이 같이 돈 되는 이름으로 지었어야지 뜬금이라고 지어서 이름처럼 됐잖아.”

  실없는 소린 줄 알면서도 어이없는 농담이 절로 나왔다. 회사는 일이 없어 굶게 생겼는데 그 덕분에 한가해진 남편이 고양이들을 돌보게 됐으니 뜬금이에겐 천만다행한 일이 아니겠는가. 그러려고 뜬금이가 우리에게 온 것만 같기도 하다.

  퇴원하고 공장 안에서 임시보호하다가 입양 보내기 위해 중성화 수술을 시키고, 그 일련의 과정을 귀동냥으로 했다. 그리고 그 과정을 견디지 못하고 두 손을 든 건 뜬금이 가 아니라 우리였다. 쉽사리 입양은 되지 않았고 한 번 부상당한 아이는 무리 속에 갈 경우 다시 공격의 대상이 되어 무사하지 못하다는 얘기를 들었기에 내보낼 수도 없었다. 퇴근할 때마다 첩보영화를 찍듯 바람처럼 빠져나왔지만 몹쓸 짓을 한 것 같아 마음이 천근이었다.

  집으로 데려가 이참에 집사가 돼 볼까 하는 생각도 있지만 고양이를 좋아하는 큰 딸은 불행히도 알레르기 비염 환자에 둘째는 털 달린 짐승에 공포증이 있다. 당분간 입양인이 나타날 때까지 공장 안에서 보호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그렇게 한 달쯤 고양이 한 마리에 애달파하다 어느 한 날 퇴근하는 길에 냉큼 안고 타버렸다. 에라 모르겠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운명이니 한 번 운명대로 가보자.

  그 후로 다섯 달 

 뜬금이는 지금 천상천하 유아독존 세상 가장 사랑받는 집냥이가 되어 집사 다섯을 거느리고 있다.

  뜬금없이 나타난 수컷 고양이 한 마리에게 지금껏 경험해 보지 못한 마약 같은 사랑을 무한 공급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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