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모르 파티! 우주가 선사한 너의 운명을 깊이 사랑하라!
“둥! 둥! 두둥- 둥!”
깊은 가을밤의 적막을 깨고, 문득 북소리가 힘차게 들려왔다.
오래전 어느 해 가을, 속리산 깊은 자락에서 펼쳐진 국중대회의 마지막 날 밤이었다. 속리산 개천절 국중대회는 우리 민족의 옛 제천행사였던 영고, 동맹 등의 근원을 찾아서 하늘에 감사하고, 우리 속에 들어있는 흥과 멋을 마음껏 풀어내는 커다란 놀이마당이었다.
축제 분위기에 한껏 취해 춤도 추고 노래도 하며 흥청대던 사람들은 일제히 동작을 멈추고 북소리가 나는 곳을 바라보았다.
“둥! 둥! 두둥- 둥!”
웬 인디안 추장같이 생긴 덩치가 커다란 사내가 희미한 불빛 가운데 우뚝 서서, 먼 허공을 응시하며 북을 힘차게 치고 있었다. 북소리가 워낙 우렁찬데다 신령한 기운마저 감돌고 있어서 다들 긴장하며 침묵을 지켰다.
“하늘과 땅이 거시기하기 딱 좋은 밤이로다! 하하하!”
한동안 북을 치던 사내가 걸걸한 목소리로 호탕하게 웃어 제쳤다.
“하늘과 땅이 거시기하는 게 뭔가요?”
관객 중 젊은 여성 하나가 당돌하게 질문을 던졌다.
“거시기가 거시기지, 뭐긴 뭐유. 하하하!”
“선생님은 누구세요?”
“나는 나유. 당신은 누구유?”
“저도 접니다.”
“하하하! 좋소. 근데 지금 왜 여기 와 있수?”
“국중대회 구경하러 왔지요.”
“국중대회라---, 그거 좋지. 근데 참 신기하단 말이우.”
“뭐가요?”
“그대와 내가 지금 이렇게 만나서 얘길 하고 있다는 사실 말이우.”
“이게 특별한 인연이란 말씀인가요?”
“이 세상에 소중하지 않은 인연이 없지만, 더 특별하단 얘기유.”
“그럼 이제 뭘, 더 어떻게 해야 하죠?”
“그럴 필요는 없수. 그냥 지금 이 순간을 마음껏 즐기기만 하면 되우.”
“근데 하늘과 땅이 정말로 거시기를 하나요?”
“세상사 알고 보면, 다 거시기를 잘 하려고 거시기를 하는 거유, 하하하!”
사내와 여성 관객 사이에 한동안 수수께끼 같은 대화가 오갔다. 둘 다 주고받는 수작이 보통이 아니었다. 어디선가, 저 사내가 이 국중대회를 주관하는 에밀레 박물관 관장인 것 같다는 수군거림도 들려왔다.
“그럼 재미있게들 노시우.”
이윽고 인디안 추장처럼 생긴 사내는 등에다 북을 둘러메고 어둠속으로 홀연히 사라졌다. 그 후 왠지 축제장 분위기가 썰렁해졌고, 둘러앉았던 사람들도 하나, 둘, 자리를 털고 일어나 떠날 채비를 했다.
“거참,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더니, 별 이상한 인간을 다 보겠네.”
생뚱맞은 광경을 지켜보던 K가 옆에 있는 여인에게 말했다
“왠지 축제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신비로운 인물 같지 않아요?”
여인이 무언가에 홀린 듯이 외쳤다.
“신비는 개뿔! 이런 잔치판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미친 놈 중 하나겠지.”
“아니에요. 뭔가 사람의 마음을 홀리는 묘한 힘이 있어요.”
“자, 이러다 모임에 늦겠소. 우리도 빨리 갑시다!”
K는 여인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기도회 장소로 향했다.
예로부터 우리처럼 북두칠성을 지극 정성으로 받들어 모신 민족은 달리 없었다. 당연히 민간신앙의 중심도 칠성님이었다. 새벽마다 뒤란 장독대에 정화수 한 그릇 떠 놓고, 두 손을 수없이 비벼가면서 칠성님께 가족들의 무사 안녕을 비는 허리 굽은 할머니야말로 그 전형적인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우리 동이족은 아주 오래 전부터 그 시원이 북두칠성에 있다고 굳게 믿어 왔다. 그래서 태어나서 자라고 죽을 때까지, 칠성님이 삶의 모든 것을 관장한다고 생각했고, 죽은 뒤에는 당연히 북두칠성으로 돌아간다고 믿었다. 죽음을 돌아가셨다는 말로 표현하는 것도 그런 때문이었다.
그런데 속리산에서 오랫동안 수도를 하던 중 북두칠성으로부터 직접 계시를 받고 큰 깨달음을 얻었으며, 수백 권의 경전을 하룻밤에 받아 적었다는 전설적인 인물이 나타났다. 그는 숱한 예언을 적중시켰고, 크고 작은 이적을 행하였다. 자연히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마침내 뜻있는 사람들이 교주로 모시고 신흥종교를 결성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다들 교주님 앞으로 모이시오!”
약속 시간이 되자 총무를 보는 사형이 신도들을 불러 모았다.
서른 남짓한 사람들은 잔디 위에 원을 그리며 빙 둘러앉았다. 오늘 따라 교주님의 민 대머리가 더욱 빛나고, 눈은 어둠속에서도 횃불처럼 활활 타올랐다. 꼭 영화 <지옥의 묵시록>에 나오는 커츠 대령 같은 모습이었다.
“드디어 여러분이 고대하던 기도 시간이 되었다! 오늘은 특별히 백 년 만에 한 번 돌아오는 아주 신묘한 날이니라! 그러니 다들 그에 걸맞게 마음을 단단히 먹고, 정성을 다해서 치성을 드리도록 하라!”
말을 마친 교주님은 한동안 신비로운 주문을 외웠다. 그리고는 마시면 서서히 환각상태에 빠지는 술을 손수 한 잔씩 따라주었다. 속리산 깊은 곳에서만 난다는 무슨 이상한 버섯으로 담근 술이라고 했다.
“일곱 형제들은 칠성판을 가지고 오너라!”
명령이 떨어지자 건장한 일곱 명의 사내들이, 커다란 별 일곱 개가 선명하게 그려진 칠성판을 신도들 가운데다 갖다 놓고, 주위를 돌며 느릿느릿 춤을 추기 시작하였다.
“여인은 앞으로 나오거라!"
교주님이 K 옆에 앉은 여인을 가리켰다.
“네, 영광으로 명을 받들겠사옵니다!”
여인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성큼성큼 앞으로 나갔다. 그리고 옷을 흔쾌히 다 벗어 던지고는 알몸으로 칠성판 위에 반듯하게 누웠다.
“칠성님이시여! 오늘 저희는 이처럼 곱고 아리따운 여인을 바치려 하옵니다! 부디 저희들의 정성을 미흡하다 탓하지 마시고, 기쁘게 받아주시옵소서!”
교주님은 별이 총총 빛나는 밤하늘을 우러러보며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저희들의 영혼이 북두칠성으로부터 이주한지도 어느덧 삼만 년이나 흘렀습니다. 참으로 기나긴 시련과 모험과 영광의 세월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아무도 그 위대했던 일을 기억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물질문명의 추구와 무한경쟁에만 몰두하여, 소중한 자연환경을 끝없이 파괴하고, 신성한 대지를 돌이킬 수 없이 오염시키며, 다 함께 멸망해가고 있습니다.
전 지구적인 이러한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이하여, 이제 저희들은 지난 삼만 년 동안 면면이 이어져 온 본연의 임무를 되돌아보면서, 앞으로 나아갈 길을 찾고자 합니다.
아무리 오랜 세월이 흘러도 영혼의 고향인 북두칠성은 언제나 저희들의 가슴속에서 찬란하게 빛나고 있습니다. 이제 그 고향의 위대한 영광과 은총을 이 땅위에 다시 한 번 이룩하려는 저희들의 간절한 염원을 어여삐 여기사, 죄도 많고 부족한 것도 많은 저희들의 기도를 흔쾌히 받아 주시옵고, 부디 영원한 기쁨과 평안과 구원을 내려주시옵소서!”
하늘의 별들이 떨릴 정도로 간절하고 정성스런 목소리로 기도를 마친 교주님은 옷을 다 벗어 던지고, 여인이 누워있는 칠성판 주위를 돌면서 천천히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러자 환각 상태에 빠진 신도들도 모두 옷을 벗고 함께 춤을 추었다. 그리고 점차 하나가 되어갔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교주님이 문득 하늘을 가리켰다.
“다들 저기를 보아라!”
하늘을 올려다보니, 일곱 개의 주먹만 한 별들이 마구 뒤엉켜 춤을 추고 있었다. 그리고 뒤집어진 국자에서 별빛이 폭포처럼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신비롭고 영롱한 빛이었다. 환각에 취한 신도들의 눈에는 빅뱅이 막 일어난 것처럼 보였다.
“다들 잘 보았느냐! 저 빅뱅의 순간에 너희들의 운명도 함께 시작된 것이니라! 아니, 너희들을 위해서 저 빅뱅이 생겨난 것이니라! 북두칠성도 너희들을 위해 빛나고 있는 것이니라! 삼천 대천세계가 아무리 크고 광대무변하다 해도, 너희들이 없으면 다 무슨 소용이리요!”
“------.”
“사실 너희들은 결코 태어난 적이 없느니라! 영혼은 본디 태어남도 없고 죽음도 없느니라. 별들의 찬란한 유희만 끝없이 되풀이되고 있을 뿐! 그러니 너희는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 해도 절대 흔들리지 말고, 너희들의 운명을 깊이깊이 사랑하라!”
교주님이 산상수훈처럼 엄숙하게 선언하였다.
“둥! 둥! 두둥- 둥!”
저 멀리서 축제의 끝을 알리는 북소리가 또 다시 울려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