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 삼대

삼대에 걸친 어느 택배 노동자의 죽음을 애도하며.

by 김혁

팔팔하던 30대 청년 노동자가 또 죽었다. 평소 건강 하나 만큼은 자신이 있었지만, 사인은 과로로 인한 심근경색이었다.


그의 할아버지는 마부였다.

할아버지는 남의 마차를 빌려서 짐을 실어 나르고 품삯을 받아서 겨우 생계를 꾸려갔다. 그는 번듯한 자신의 마차를 가져보는 것이 평생의 소원이었다. 하지만 끝내 그 소원을 이루지 못했다. 일과가 끝나고 가끔 순댓국에 탁주 한 사발 마시는 게 삶의 유일한 낙이었다.

할아버지는 환갑이 넘어서까지 마부 일을 했다. 그는 젊은 시절에 일본인들로부터 ‘빠가야로!’ ‘조센징!’ 같은 소리를, 해방 후에는 주위로부터 '빨갱이!' '부역자!' '간첩!' 같은 소리를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으며 살았다. 그리고 어느 추운 겨울날 아침에, 평소처럼 마차를 끌다가 길거리에 쓰러져 죽었다.


그의 아버지는 장돌뱅이였다.

아버지는 조그만 트럭에 물건을 싣고 전국의 장터를 돌아다니며 장사를 해서 겨우 생계를 꾸려갔다. 그는 번듯한 자신의 가게를 가져보는 것이 평생의 소원이었다. 하지만 끝내 그 소원을 이루지 못했다. 일과가 끝나고 가끔 삼겹살에 소주 한 잔 마시는 게 삶의 유일한 낙이었다.

아버지는 칠순이 넘어서까지 장돌뱅이 일을 했다. 그는 총칼로 권력을 잡은 독재자들로부터 '급변하는 국제정세!' ‘총체적 난국!’ ‘하면 된다!’ '총화단결!' 같은 소리를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으며 살았다. 그리고 어느 추운 겨울날 아침에, 평소처럼 시골 장터에서 짐을 부리다가 쓰러져 죽었다.


그는 택배 노동자였다.

아침 일찍 출근해서 산더미처럼 쌓인 물건을 까대기한 뒤, 집집마다 배달하고 새벽녘에야 겨우 집에 들어갔다. 그는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을 가져보는 것이 평생의 소원이었다. 하지만 끝내 그 소원을 이루지 못했다. 일과가 끝나고 가끔 컵라면에 맥주 한 캔 마시는 게 삶의 유일한 낙이었다.

그는 30대 후반이 될 때까지 여자 친구도 하나 없이 일만 했다. 그는 유명인사들로부터 ‘아프니까 청춘이다!’ ‘좋아하는 일을 하라!’ '끊임없이 자기혁신을 하라!' 같은 소리를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으며 살았다. 그리고 어느 화창한 봄날 새벽에, 평소처럼 늦게까지 일하고 돌아와서 비좁은 원룸 안에서 쓰러져 죽었다.


그도 한때는 ‘미래의 꿈나무’ 소리를 듣던 청소년 시절이 있었다.하지만 하층민 출신인 그가 명문대를 나와서 번듯한 직장을 갖는 건 애시 당초 무리였다. 미래에 대한 희망이 도처에서 홍수처럼 넘쳐났지만, 그의 몫은 하나도 없었다.

힘든 택배 일을 하면서, 그는 자신이 무거운 짐을 지고 해발 4천 미터가 넘는 차마고도를 끝없이 오르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때로는 무거운 짐을 지고 불타는 고비사막을 끝없이걸어가는 낙타라고도 생각했다. 너무 힘들어서 죽을 것 같을 때면, 루돌프가 끄는 썰매를 타고 온 세상을 휙휙 날아다니며 선물을 배달하는 산타클로스로 변신하는 몽상에 빠지곤 했다.


새파랗게 젊은 그가 그토록 열심히 배달한 것은 결국 자신의 죽음이었다. 그리고 그가 태어나고 자란 서울은 차마고도보다 더 험준하고, 고비사막보다 더 황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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