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금을 은밀하고 치밀하게 잘 모으는 법.
자고로 비자금이라는 것은 이 험난하고 복잡한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 개인이나 기업을 막론하고 꼭 필요한 법. 물론 그런 것과 무관하게 사는 사람들도 많이 있겠지만, 대부분 이런저런 말 못할 사정으로 은밀하게 혹은 다급하게 돈을 써야 할 일이 생겼을 경우, 그처럼 유용하고 고마운 것도 달리 없을 터. 그래서 누구나 비자금의 유혹으로부터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특히 상류층이나 대기업으로 올라갈수록 더욱 많은 비자금이 필요하리라는 건 불 보듯 뻔한 사실이다. 하지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불법으로 조성해서 정 관계에 로비를 하거나, 오너 일가의 재산 증식에 사용하다가 나중에 탈이 나서 커다란 문제가 되는 걸 종종 목격하곤 한다.
대기업에 비하면 액수나 방법에 있어서 너무나 유치하고 초라하겠지만, 우리 같은 소시민들에게도 비자금을 모으고 관리하는 방법은 중요하다. 모든 비밀이 다 그렇듯이, 비자금처럼 은밀하고 사적인 것일수록 드러나지 않게 조심 또 조심하는 게 상책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치밀한 계산과 고도의 수법이 필요하다. 이를 대충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단기간에 무리하게 많이 끌어 모으려고 하지 말고, 평소에 여기저기서 조금씩 꾸준히 저축을 하는 마음으로 모을 것.
둘째, 주머니를 가능한 한 여러 개로 나누고 분산을 해서, 설령 한 두 개가 발각되더라도 즉각 꼬리를 자를 수 있도록 할 것.
셋째, 꼭 필요한 경우에만 사용하되, 주변의 시샘이나 의심을 받을 정도로 과하게 표시를 내지 말고 적절하게 사용을 할 것.
넷째, 비록 무덤까지 비밀을 가지고 가는 한이 있더라도 혼자서만 알고, 절대로 그 누구에게도 발설하거나 얘기하지 말 것.
다섯째, 발각이 되었을 때를 대비해서 완벽하게 핑계 거리나 서류를 꾸며 놓았다가, 발각 즉시 당당하게 오리발을 내밀 것.
각설하고, 비자금과 관련해서 오래전에 있었던 일화 하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대기업이자 세계적으로 유명한 삼성이 비자금 문제로 온통 나라를 시끄럽게 한지도 벌써 여러 달 째, 특검까지 벌어져 서로 간에 치열한 공방을 계속 주고받고 있었다. 자세한 내용이야 하도 복잡하고 알쏭달쏭해서 알 수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거니와, 당시 삼성을 이끌던 이건희 회장이 재판에 나와서 보인 행보가 유난히 흥미로웠다.
특검 1차 공판을 마치고 법정을 나서는 이건희 회장에게 수 십 명의 기자들이 우르르 몰려갔다. 그리고는 기다렸다는 듯이 질문 공세를 마구 퍼부었다.
“지금 심정이 어떠십니까?”
“앞으로 항소를 하실 생각이십니까?”
“정말로 삼성이 억울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국민들에게 한 말씀 해주시지요.”
하지만 그는 특유의 무표정한 듯 하면서도 모든 감정을 함축하고 있는 얼굴을 약간 숙인 채, 두꺼비처럼 눈만 껌벅껌벅하며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그렇게 비서관의 부축을 받으며 조금 걷다가 막 차에 오르기 직전에, 어느 기자가 바짝 다가가서 마지막으로 물었다.
“오늘 재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러자 비로소 뒤를 돌아보며 어눌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뭐, 법을 알아야지---.”
허허, 우리나라 최고 엘리트 변호사를 수십 명이나 거느리고 있으면서도 법을 모른다니, 참으로 절묘한 답변일세, 그려! 대현여우(大賢如愚)요, 대교약졸(大巧若拙)이라더니, 노장(老莊)의 경지를 통달했구료. 정말로 법을 모른다는 것인지, 아니면 법 따위야 알 바 아니라는 것인지, 생각할수록 알쏭달쏭하기만 하구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