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자 가라사대(1)

노자 도덕경에 대한 참신한 헛소리

by 김혁

코로나 19 사태가 노자를 또다시 우리 곁으로 불러내고 있다.

노자가 쓴 도덕경은 영원한 진리를 설파한 책으로, 동양의 정신문명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리고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많은 이들로부터 꾸준한 관심과 사랑을 받아왔다.

비록 내용이 너무 심오하고 난해해서 정확한 뜻을 다 알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대충 인위적인 문명에 너무 치우치지 말고 자연 본래의 꾸밈없는 자세로 살라는 가르침으로 알고 있다. 도덕경을 반전 평화 사상이나 아나키즘의 원조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요즘 급부상하고 있는 환경주의 생태 철학의 뿌리로 보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코로나 19 사태 이후, 노자 사상이 더욱 실감 나게 다가오고 있다.

인류는 처음 겪는 사태에 우왕좌왕하며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 이에 따른 공포와 증오와 폭력도 점점 증가하고 있다. 누군가는 코로나 19를 중세 유럽을 무너뜨리고 르네상스를 불러온 흑사병에 비유하기도 한다.

조만간 백신이 개발되면 이런 사태가 일시적으로 진정은 되겠지만, 근본적으로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 이제 인류는 '지금껏 살아온 대로 살면 안 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주장이다. 이른바 ‘뉴 노멀 시대’를 맞이하여, 앞날이 너무나 예측 불가능하고 애매하고 불안해졌다.


그렇다면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할 수만 있다면 옛날처럼 자연 친화적으로 소박하고 단순하게 사는 것이 최선의 길일 것이다. 그야말로 먼 길을 돌고 돌아서 제자리를 찾아가는 셈이라 하겠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그럴 수 없다는 데 우리의 고민이 있다.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 철저한 자기반성과 성찰의 기반 위에 새 패러다임을 구축해야만 한다. 그런 방편의 하나로 여기저기서 노자를 바쁘게 소환하고 있다. 마치 노자가 대단한 해결사라도 된다는 듯이. 과연 노자의 가르침은 현대 물질문명과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 많은 이들의 바람대로 인류의 병든 세계관을 치유할 만능키가 될 수 있을까?


여기 술 잘 먹고, 놀기 좋아하고, 그러면서 평소에 도(道)를 무척이나 흠모하는 친구가 하나 있다. 평생 무명 시인이자 프리랜서인 그는 일정한 직장도 없이 출판사 주변을 기웃거리며, 일감이 생길 때마다 알바를 해서 겨우 먹고 산다. 얼핏 보면 하루살이 같은 삶이다.

하지만 워낙 연식이 오래되고 내공도 쌓여서, 혼자 먹고사는 데는 큰 문제가 없다. 영세한 출판사들이 급히 필요로 하는 교정 편집 번역 사진 대필 등의 작업을 그때그때 전방위적으로 싼 가격에 솜씨 있게 처리해 주는 해결사로는 그를 따라올 자가 없다. 그래서 늘 궁핍하면서도 풍족하다.

“극심한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나처럼 경쟁 자체를 원천 봉쇄하는 거야. 참 쉽고 간단하지, 히히!”

그는 남는 시간 대부분을 작은 옥탑방에서 빈둥거리며 지낸다. 그곳이 그의 유일한 안식처다. 빈둥거린다고는 하지만 무작정 그냥 빈둥거리는 것은 아니다. 동서고금의 온갖 철학 종교 사상 문학은 물론이고, 이런저런 잡다한 분야의 책들마저 소중한 연인처럼 끼고 뒹굴며 지낸다. 어찌 보면 빈둥거리는 게 그의 본업이라고 할 수 있다.

“언제나 나를 반겨주는 사랑스러운 애인이 이렇게나 많은데, 세상에 무슨 근심 걱정이 있을쏘냐, 히히히!

독신으로 지독하게 가난하고 외로운 홀아비 신세이면서도, 마음만은 언제나 이렇게 천하태평이다.

그가 여름에 덥고 겨울에 춥게 지내는 것은 노자의 무위자연을 실천하기 위함이 아니라, 난방비 냉방비를 아끼기 위함이요, 하루 한 끼만 먹는 것도 고결한 수도자를 흉내 내기 위함이 아니라, 한 푼이라도 식비를 아끼기 위함이었다.

그래도 입담만은 대단해서 술자리에서 한번 입을 열었다 하면 기발한 이야기와 재치 있는 우스갯소리로 좌중을 뒤집어 놓곤 했다. 그런 그를 친구들은 기회만 되면 술자리에 다투어 데려갔다. 그리고 노자에 빗대어 놀자라고 불렀다.


오늘도 옥탑방에서 뒹굴며 이런저런 사색에 잠겨있던 놀자는 벌떡 일어나서 허공에 대고 외쳤다.

“오오, 코로나 19 바이러스여! 그대야말로 인류의 큰 스승이로다!”

“그동안 그 어떤 위대한 사상가나 종교가나 혁명가나 예술가도 해내지 못한 엄청난 변화와 변혁과 반성을 코로나 19 바이러스가 자연스럽게 끌어내고 있는 것을 보라! 그리고 인류가 알량한 문명에 취해서 잊고 있었던 많은 소중한 것들을 말없이 가르치고 있는 것을 보라!”

“오, 위대한 스승이여! 이렇게 큰 가르침을 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는 보이지도 않는 코로나 바이러스에게 넙죽 엎드려 절을 하였다.

“이제 인류는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코로나 19의 가르침을 겸허하게 따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곧 멸망하고 말 것이다. 앞으로 인류 역사는 많은 이들이 지적하는 것처럼 코로나 19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질 것이다!”

이렇게 혼자서 열변을 토하던 놀자는 다시 벌렁 드러누워서, 보면 볼수록 불가사의한 존재인 바이러스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왠지 노자 사상과 바이러스 사이에 아주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만 같았다.

사실 바이러스는 알고 보면 대단한 존재다. 생물과 무생물의 중간 위치인 바이러스야말로 '유와 무의 세계를 아우르면서 또 이를 초월한 도의 차원'과도 흡사한 그런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 생명체가 태초부터 지금까지 진화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공로도 솔직하게 인정해야 한다. 장구한 세월 동안 그들이 끊임없이 만들어낸 창조적인 변화와 돌연변이가 없었더라면, 생명체는 진화의 다양한 갈래마다 획기적인 도약과 발전을 이룩할 수 없었을 것이다. 좀 과장해서 말하자면, 우리는 모두 다 바이러스의 후손이라고 할 수 있다!


“도가도 비상도(道可道 非常道)라!”

“도를 도라고 말하면 그건 진정한 도가 아니다---.”

놀자는 평소 다른 이들의 해석에 대해 가졌던 의문을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도덕경 첫머리에 나오는 이 말은 너무나 유명해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지만, 그 누구도 정확한 뜻을 모를 만큼 난해하기로 정평이 나 있기도 하다.

그동안 여기에 대해 수많은 문인 학자 도사 방사들이 나름대로 열심히 해석하고, 그럴듯하게 설명해 왔다. 하지만 대부분 어슷비슷해서 ‘그 밥에 그 나물’ 수준이다. 옛날에 왕필이라는 천재가 10대 후반에 해 놓았다는 주석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왕필은 왜 하필이면 옳을 가(可)를 말할 가로 해석함으로써, 지금까지 이토록 커다란 혼란을 초래하였는가. 물론 말할 가로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옳을 가로 해석하는 것이 훨씬 더 타당하고 올바르지 않은가. 왕필은 과연 불세출의 천재인가, 아니면 천하의 사기꾼인가. 거기에 놀아나는 후대의 해석자들은 다 바보 멍청이인가. 그렇다면 좀 더 참신한 해석은 없을까. 노자의 진짜 뜻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하루는 놀자가 친구들과 술을 마시다가 흠뻑 취해서 말했다.

“야, 요즘 여기저기서 또 노자 강의를 한다고 난리들인 거 같던데?”

“그러게 말이야. 이것도 따지고 보면 신통방통한 코로나 19가 불러낸 ‘오래된 미래’ 중의 하나지.”

친구 하나가 맞장구를 쳤다.

“그래서 나도 심심풀이로 노자도덕경을 좀 해석해 봤는데, 히히히! 늬들 한번 들어 볼래?”

“그래? 거 참 궁금하다 야! 어서 읊어봐.”

친구들이 흥미를 보이자, 그는 짐짓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운을 뗐다.

“흠, 흠! 도덕경은 말이야. 어렵게 생각하면 무척 어렵고, 쉽게 생각하면 무척 쉬운 그런 책이야. 당연히 처음에는 무척 쉬운 책이었을 거야. 당시 사람들이 다 알아들을 수 있도록 썼을 테니까. 그런데 후대로 내려오면서, 노자가 본래 말한 뜻을 몰라서 이리저리 궁리하며 해석을 어렵게 하다 보니 무척 어려워진 거지. 그리고 첫 장에 전체 내용이 다 함축되어 있으니까, 그 첫 장만 잘 해석하면 끝난 거나 다름이 없다, 이런 말이야.”

“그렇지. 그러니까 빨리 얘기해 봐.”

“도가도 비상도라---!”

우리의 놀자는 허공을 응시하며 한동안 침묵하더니 말했다.

“길은 길이로되, 늘 같은 길은 아니노라!”

“어쭈, 제법인데?”

“그럴 듯 하다, 야. 계속해 봐!”

친구들이 장단을 맞춰주자, 그는 더욱 신이 나서 떠들어댔다.

“길은 길이로되, 처음부터 정해진 길이란 따로 없느니라!”

“길은 길이로되, 두 번 다시 같은 길을 걸을 수는 없느니라!”

“길은 길이로되, 각자 자신만의 길을 찾아야 하느니라!”

“길은 길이로되, 익숙한 길만 계속 걷다가는 망하는 법이니라!”

“길은 길이로되, 죽지 않고 살아있는 길을 찾아야 하느니라!”

“길은 길이로되, 갈림길을 잘 살펴서 올바로 걸어야 하느니라!”

“길은 길이로되, 진리로 가는 데는 특별한 길이 따로 없느니라!”

“길은 길이로되, 가지 않은 길도 결국은 내 길이라고 할 수 있느니라!”

“길은 길이로되, 저 우주도 새로운 길을 찾아서 늘 방황하고 있느니라!”

등등.

이렇게 놀자가 한참 떠벌리자, 친구들은 박장대소를 하며 즐거워했다.

“야, 우리 놀자 참 잘 논다!”

“그러게 말이야. 근데 뭔가 그럴 듯 하면서도 애매모호하고, 알쏭달쏭하고, 몽롱하기만 하네.”

“놀자가 그렇지, 뭐! 그리고 그게 우리 놀자의 매력 아니겠어?”

“얘들아, 너무 유치하다고 흉보지 말고 그냥 이쁘게 좀 봐 줘라, 히히히!”

“솔직히 말해서, 이 나이 먹도록 열심히 산다고 살았는데도, 아직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앞이 안 보여. 아니, 갈수록 더 안갯속인 것만 같아.”

“아니, 이날 이때껏 그만큼 잘 먹고, 잘 살았으면 됐지. 뭘 더 바라?”

“뭘 더 바라는 게 아니라, 이제부터라도 좀 제대로 한번 살아보고 싶어.”

“우리가 제대로 사는 길을 딱 하나야. 손에 꽉 움켜쥔 기득권 다 내려놓고 깨끗하게 물러나는 거. 안 그래?”

“맞아, 맞아! 근데 나는 뭐 쥐뿔이라도 가진 게 있어야 내려놓지, 히히히!”

“너 말고 다른 놈들 말이야, 임마!”

“다들 알다시피 한국 사회에서는 줄이 곧 길이야. 그래서 줄을 잘 잡아야 길이 열리는 법이라고.”

“줄이든 길이든 다 좋으니까, 제발 진영을 나눠서 서로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지냈으면 좋겠어.”

“맞아, 맞아! 하지만 그게 어디 말처럼 쉬워야 말이지, 히히히!”

“저마다 제 길만 옳다고 저리 똥고집들을 부리고 있으니, 정말로 큰일이야!”

“우리 놀자가 좀 전에 말하길, 길은 수시로 바뀌니까 잘 살펴서 걸어야 한다잖아. 그리고 미리 정해 놓은 길은 진정한 길이 아니라잖아.”

“그래서 늘 대화와 타협을 통해 새로운 길과 돌파구를 찾는 것이 정치인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거늘,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다 길치들이야. 그것도 아주 지독한 길치들이야.”

“그게 아니라 알면서도 늘상 갈지자로 걷는 순 악질 패거리들이지, 히히히!”

“그래, 그러니까 우리만이라도 죽을 때까지 열심히 새길을 찾아보자고.”

“자, 자, 그런 의미에서 우리 오늘은 2차로 새로운 길을 뚫어보는 게 어때?”

“그거 좋지!”

술꾼 친구들은 놀자를 앞세우고 모처럼 만에 새로운 술집을 찾아 나섰다. 그때, 술에 취한 놀자가 앞으로 엎어지면서 소리쳤다.

“어이쿠, 오늘도 이놈의 길이 어김없이 일어나서 내 얼굴을 치네, 히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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