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자 가라사대(2)

빅뱅을 위하여!

by 김혁

그날, 모처럼 만에 2차를 위해 밤거리를 헤매던 놀자와 친구들은 이윽고 지하에 있는 조그만 술집으로 들어갔다. 그동안 새로 생겼는지, 처음 와보는 조용하고 아담한 곳이었다.

“어서 오세요, 멋진 오빠들!”

시국이 시국인지라, 손님도 하나 없이 혼자 심심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던 마담이 반색하며 일어나서 일행을 맞이하였다.

“아니, 고비 사막보다 훨씬 더 황량하고 삭막한 서울 시내 한복판에 이렇게 멋진 오아시스가 숨어 있는 걸 우리가 여태 왜 몰랐지? 히히히!”

놀자가 자신보다 훨씬 젊고 곱상한 마담을 연신 바라보며 너스레를 떨었다. 마치 돈키호테가 누추한 시골 주막 여주인을 성주의 부인으로 착각하고 깍듯하게 예를 갖추는 것과도 흡사했다.

“그러게 말이에요. 그동안 어딜 갔다가 이제야 오셨나요? 제가 오빠들을 얼마나 애타게 기다렸다고요.”

마담도 지지 않고 눈웃음을 치며 호들갑을 떨었다.

“허허, 처음 보는 우리를 그토록 기다렸다니, 이런 천생연분이 다 있나?”

“정말이에요. 기다리다 이렇게 목 디스크까지 생겼다고요, 호호!”

“아이고, 정말 미안해요. 앞으로는 절대 그러지 않을게요.”

“정말이죠?”

“정말이고 말고.”

“그 약속 꼭 지키셔야 해요?”

“그럼. 그럼! 지키고말고, 히히히!”

마담이 놀자에게 짐짓 다짐받는 시늉을 하고는, 주문받은 술상을 보러 주방으로 들어갔다.


“근데 놀자야!”

“왜?”

“너 아까 도덕경 첫 구절을 반 만 해석했으니까, 나머지도 마저 해봐라.”

친구 하나가 문득 생각이 났는지 놀자를 보며 다그쳤다.

“이 친구가 술맛 떨어지게, 또 왜 이래?”

놀자는 시큰둥하게 반응했다.

“아니야. 술맛 돋우는 데는 뭐니 뭐니 해도 늬 입담이 최고야.”

“그거 참말이야?”

“응. 그러니까 빨리 좀 해 봐.”

“알았어. 명가명 비상명(名可名 非常名) 그 부분 말이지?”

“응.”

“명가명 비상명이라---!”

놀자는 허공을 응시하며 한동안 침묵하더니 말했다.

“명분은 명분이로되, 늘 같은 명분은 아니노라!”

“노자를 전공한 학자들은 대부분 이름 명 자를 우리가 사물에 붙이는 개념으로 해석하는데, 넌 명분이라고 해석했네?”

“응. 전후 맥락으로 보건대 명분이라고 하는 게 자연스러운 것 같아. 그리고 바로 앞에 길 얘기가 나왔으니까, 길의 명분을 말하는 거겠지.”

“길의 명분이라---. 그래 맞아. 세상에는 수없이 많은 길이 있고, 또 각각 합당한 명분을 가지고 있지. 명분이 없는 길은 더 이상 길이 아니지.”

“그리고 이름이라는 것도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달리, 암호의 의미가 들어있다고 보는 게 맞아.”

“암호라니?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흠, 흠! 노자가 살던 춘추전국시대는 말이야, 사회가 극도로 혼란하고 전쟁이 다반사로 벌어지는 그런 시대였지. 그런데 전쟁의 규모가 아직은 통합국가 단위로 벌어질 만큼 그리 크지 않고, 제후국 간에 벌어지는 소규모의 백병전 수준이었지. 그래서 얼굴이 식별되지 않는 야간에 자신이 누구인지 밝히기 위한 수단으로 이름이 처음 만들어졌고, 마치 군대의 암구호처럼 사용되었지. 적군과 아군을 구분하기 위해서 그랬겠지. 이름 명(名) 자를 딱 봐도, 저녁(夕)에 입으로 부르는(口) 걸로 돼 있잖아. 그래서 이름을 암호라고 봐야지.”

“와, 우리 놀자가 그동안 공부 많이 했네?”

“야, 임마! 내가 출판사 짬밥 먹고 산 지가 벌써 수십 년째야.”

“암호라면 혹시 요즘 얘기하는 비트코인이나 암호화폐 같은 거냐?”

“이런 한심한 친구 같으니! 여기서 생뚱맞게 왜 그게 나오냐, 히히히!”

“아무튼지 간에 기발하다, 야. 계속해 봐!”

이렇게 친구들이 부추기자, 놀자는 또 신이 나서 떠들어댔다.

“명분을 지키되, 늘 같은 명분만 고집해서는 안 되느니라!”

“사정과 형편이 바뀌면, 그에 따라 명분도 바뀌어야 하느니라!”

“세상이 제아무리 복잡하고 어려워도 명분과 암호만 알면 끝나느니라!”

“명분과 암호를 잘 알아야 소중한 생명과 재산을 지킬 수 있느니라!”

“세상의 명분과 암호는 수시로 바뀌니 잘 알아서 대처해야 하느니라!”

“명분과 암호를 모르면 제아무리 잘나고 똑똑해도 소용이 없느니라!”

“자기가 태어난 명분과 암호를 잘 알고 풀어가는 것이 성공의 비결이니라!”

“성인들께서는 우주의 명분과 암호를 풀기 위해 그토록 애를 쓰셨느니라!”

“이번에 우리가 코로나 19의 명분과 암호를 풀지 못하면 인류는 망하느니라!”

등등.

이렇게 놀자가 한참 떠벌리자, 친구들은 박장대소를 하며 즐거워했다.

“그러니까 첫 구절을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처럼 어지러운 난세에 길은 늘 같은 길이 아니고 수시로 바뀌니 조심하고 살펴서 걸어야 하고, 대의명분과 감춰져 있는 의미도 정해져 있지 않고 시대적 요청에 따라 달라지고 비밀 암호처럼 수시로 바뀌니 잘 살펴서 대처하라, 뭐 그런 얘기냐?”

“그래, 그래! 너 정리 한번 쌈빡하게 잘한다 야, 히히히!”


“그다음에 나오는 ‘무명(혹은 무)은 천지의 시초요, 유명(혹은 유)은 만물의 어머니’라는 구절과, ‘이 둘은 같은 곳에서 나왔으나 이름만 다르다’라는 건 또 무슨 말이야?”

평소 도덕경에 관심이 많은 친구가 재미가 들렸는지 계속 캐물었다.

“솔직히 그건 나도 잘 몰라. 하지만 ‘명분이 있고 없음’으로 보고 해석을 해 보자면, 천지는 애초에 아무 명분도 없이 시작되었지만, 인간이 명분을 만들면서 만물이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뭐 그런 말이 되겠지.”

“아하, 그러니까 여기서도 김춘수의 <꽃>이라는 시가 빛을 발하는구먼?”

”그렇지, 히히! 그리고 이걸 단순히 ‘무와 유’로 보고 해석을 해 보자면, 그 뭐시냐, 150억 년 전에 블랙홀에서 빅뱅이 일어나서,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우주가 생겨났다고들 하는데, 그 비슷한 얘기가 아닐까나? 작년에(2020년) 세계적인 과학자들이 모여서 블랙홀 사진을 처음으로 찍어서 공개해서 전 세계에 충격을 준 일도 있었고---.”

“아니, 블랙홀이 유(有)와 무(無) 이전의 상태라면서, 그걸 어떻게 사진으로 찍을 수 있어?”

“정확한지는 모르겠지만, 직접 찍은 게 아니라 주변 정황을 찍어서 추정한 거라더라. 어쨌거나 아인슈타인의 예언은 맞았어! 블랙홀은 살아있어, 살아있다고! 그리고 우주는 지금 이 순간에도 살아서 미친 듯이 춤을 추고 있다고!”

“허허, 저렇게 고요하고 장엄하고 신비로운 우주가 무슨 춤을 춘다고 그래?”

“우주는 절대로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고요하거나 평온하지 않아. 상상을 초월하는 광기와 동성애로 몸부림을 치고 있다고. 내 얘기가 아니고, 천문학자들이 오랫동안 연구한 결과야. 그건 마치 창조주가 그러는 것과도 같은 거야.”

“허허, 창조주가 광기와 동성애로 춤을 춘다니, 표현이 너무 야한 거 아니야? 기독교 목사들이 들으면 입에 게거품을 물고 달려들겠네.”

“야하긴 뭐가 야해. 오히려 창조주와 성경에 대해 이해가 훨씬 더 잘 될걸? 히히히! 그리고 빅뱅을 떠나서 무와 유는 설명할 수가 없어!”

“결국은 빅뱅 이후로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무와 유가 생겨났지만, 빅뱅 이전에는 무와 유를 초월한 차원이라는 거야?”

“바로 그거야! 사실 말은 이렇게 하고 있지만, 우리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하거나 깨달을 수 없는 심오한 세계지. 어쨌거나 그런 걸 노자가 고도의 직관으로 깨달아서 그렇게 표현해 놓은 거겠지.”

“아니, 앞에서는 난세를 살아가는 지혜라 할 수 있는 길과 명분에 대한 얘기를 하다가, 뜬금없이 빅뱅이 등장하는 이유는 또 뭐야?”

“그게 바로 노자의 위대한 점이야. 인간 세상의 시시콜콜한 문제들을 다 우주와 연관 지어 설명함으로써, 우리를 깊이 깨우쳐주고, 또 의식을 무한대로 확장시켜 주고 있으니까.”

“결국은 거시와 미시가 하나다, 이거야? 마치 수학에서 미분과 적분이 하나의 문제를 풀기 위해 접근하는 두 가지 상반된 방법이듯이?”

“와, 역시 공부 잘한 친구라 다르네. 노자뿐만 아니라, 동양사상은 다 거시적인 차원과 미시적인 차원을 하나로 통합하고 뭉뚱그려서 이야기하고 있어. 말하자면 왕거미지 왕거미. 근데 그게 잘못되면 독거미가 되기도 하지, 히히!”

“우주와 인간의 길은 하나다! 그리고 저 우주에서 보면 지구는 먼지 하나에 불과하다. 그러니 세상을 살면서 무슨 일이 닥치더라도 늘 그 점을 생각하며 판단하고 행동하라, 뭐 그런 얘기야?”

“그렇지! 뭘 좀 아는구먼, 히히히!”

“1990년에 보이저 1호가 태양계를 막 벗어나려는 순간, 칼 세이건이 뛰어난 지혜와 용기로 몸체를 지구 방향으로 돌리게 해서 사진을 찍게 했다지. 그때 약 60억 Km 거리에서 가까스로 찍힌 지구의 모습은 아주 작고 창백한 푸른 점이었다지. <코스모스>라는 책에서 읽은 기억이 나네.”

“그래, 그래! 도덕경은 천문학 서적과 함께 읽어야 제맛이지.”

“마지막에 '현묘하고 또 현묘하다'라고 한 구절은 또 무슨 뜻이야?”

“그건 노자도 잘 몰라서 그저 ‘아득하고도 아득하다’라고 표현한 것 같은데, 내가 노자가 아닌 이상 사실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 히히히!”

말을 마친 놀자가 바보처럼 웃었다.


이윽고 주문한 맥주와 마른안주가 나왔다.

“어, 시원하다! 마담, 우리가 빅뱅 이후로 처음 이렇게 만났는데, 이게 어디 보통 일이냔 말이요? 그러니 기념으로 같이 한잔 합시다! “

단숨에 맥주를 시원하게 들이켠 놀자가 마담에게 술을 한잔 따라주면서 수작을 부렸다.

“어머, 저도 전에 빅뱅 팬이었는데, 오빠도 빅뱅을 좋아하세요?”

마담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반가워했다.

“좋아하긴 개뿔! 지난번에 그렇게 난리를 친 <버닝 썬> 사건을 보니까 정말로 개판이더군.”

“그러게 말이야.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여자 손님에게 몰래 마약을 먹여서 성폭행을 하고, 아무리 신고해도 경찰은 오히려 피해자를 가해자로 몰고, 그렇게 온갖 불법과 탈법을 다 동원해서 상상을 초월하는 복마전을 몇 년 동안이나 버젓이 벌이다니, 정말 간들도 크지. 이게 도대체 있을 수 있는 얘기야?”

“다 믿는 데가 있어서 그렇게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까불고 날뛴 거겠지.”

“그렇겠지. 그리고 그렇게 어마어마한 사건을 제대로 파헤치지도 않고 얼렁뚱땅 덮어버리다니, 구린 데가 엄청 많은 모양이야.”

“우리나라 권력형 비리 사건이 다 그렇지 뭐. 자세한 내막과 사연은 먼 훗날에 가서야 제대로 밝혀지겠지.”

친구 둘이서 민망해하는 마담을 앞에 놓고 한참 열을 올렸다.

“근데, 마담! 내가 말한 빅뱅은 그 빅뱅이 아니고, 저 우주에서 일어난 진짜 빅뱅을 말하는 거요.”

놀자가 변명하듯 말했다.

“네?”

“알고 보면 우리 모두 빅뱅의 자식들이라고 할 수 있지요. 우리가 이렇게 존재하는 것도 다 빅뱅 덕분이니까. 그리고 오늘 우리의 이 만남도, 빅뱅이 일어나는 바로 그 찰나에 이미 다 예정돼 있었던 거라고요.”

“네-에, 그러세요?”

”그럼! 이건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나 다름이 없지. 그러니 얼마나 귀하고도 반가운 만남인가 말이요---.”

“우리 놀자가 또 작업 들어간다, 하하하!”

“자, 자, 빅뱅을 위하여!”

“빅뱅 마담을 위하여, 히히히!”

다들 유쾌하게 웃고 떠들며 잔을 부딪치는 순간, 150억 년의 세월이 눈 깜빡할 사이에 흘러갔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놀자 가라사대(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