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자 가라사대(3)

<데미안>의 추억

by 김혁

성형수술은 과연 어디까지 진화하고 발전할 것인가?

성형수술은 이제 너무 흔해져서, 대다수 국민이 한두 번쯤은 거쳐야 할 통과의례 비슷한 것으로 되어가고 있다. 그런 만큼 웬만해서는 뉴스거리도 되지 않는다. 그런데 이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성형수술을 우리는 과연 어디까지 용납해야 할까?”

사실 우리는 성형수술에 대해 '찬성하면서도 은근히 거부하고, 반대하면서도 은근히 소망하는' 묘한 이중 감정을 지니고 있다. 그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외모는 잘났든 못났든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할 숙명이다. 여기에 감히 칼을 들이댄다는 죄책감 내지는 부담감이 성형수술을 무의식적으로 꺼리게 만든다. 오랜 유교 문화의 영향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름다운 외모에 대한 인류의 오래된 갈망과 나날이 높아만 가는 사회적 시선은 그 무거운 마음의 벽을 가벼이 뛰어넘게 만든다. 그리고 나날이 발전하는 수술 기법의 유혹까지 더해져서, 위험을 무릎 쓰고라도 우리들로 하여금 부푼 꿈과 기대치를 가지고 기꺼이 수술대 위로 오르게 만든다.

다들 알다시피 지금 우리 사회는 심각한 외모지상주의에 빠져있다. 외모가 곧 능력이자 성공의 열쇠인 세상이 되었다. 특히 여성들의 외모에 대한 정신적 테러가 도를 넘은 지 오래다.

황금만능주의의 마지막 단계는 인간 신체에 대한 노골적인 상품화다. 어느 분야와 직군을 막론하고, 얼굴과 몸을 잘 가꾸고 관리해서 열심히 굴리고 팔아야만 먹고살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역시 이런 면에서 꽤나 극성스럽다. 조금만 얼굴이 마음에 안 들거나 부족하다 싶으면 과감하게 뜯어고친다. 먹고살기 위해서라도 어쩔 도리가 없다. 그래서 젊은 사람들의 얼굴이 비슷비슷해져 간다. 해외에서는 우리나라를 성형 공화국이라고 비아냥거리기까지 한다.


“허허, 이거 아주 사람을 잡네, 잡아! 쯧쯧쯧!”

한 젊은 여성이 강남의 유명한 성형외과에서 수술을 받다가 사망했다는 뉴스를 접하고 놀자는 연신 혀를 찼다. 자세한 내막이야 알 수 없지만, 건강 상태를 무시하고 무리하게 밀어붙이다 일어난 의료사고임에 틀림이 없었다.

“근데 억울하게 죽은 그 아가씨도 잘못이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지---.”

놀자는 마치 자기 딸이 사고라도 당한 듯 애통해하며 탄식을 했다.

외모를 아름답게 가꾸려는 욕구야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지나치게 집착하고 몰두하는 게 문제다. 이를 부추기는 각종 상업주의에 어릴 때부터 물들고 자라는 아이들을 보면 가슴이 아프다. 이처럼 무리하게 뜯어고치고, 위험한 수술을 감행해서라도 외모 경연 대열에 합류하도록 만드는 풍토가 계속되는 한, 우리는 모두 외모의 인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도 차이는 있겠지만, 외모를 중시하는 풍토는 인류의 출발과 함께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선사시대 이래로 수많은 유적지에서 출토된 각종 화장 재료와 도구와 장신구들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그리고 인류의 이러한 본능적인 욕구가 많은 면에서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도 사실이다.

특히 여성들이 조금이라도 더 예뻐지려고 하는 무한한 욕구가, 시공을 초월한 그 엄청난 욕망이 오랜 세월에 걸쳐서 작용한 결과, 크로마뇽인의 험상궂은 형태에서 현재 인류의 모습으로 진화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이 점에 있어서 인류는 모름지기 여성들에게 깊이 고개 숙여 감사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 놀자의 주장이다.


노자 시대에도 외모를 중시하는 풍조가 있었을까?

도덕경 제2장 첫 구절을 보면, ‘천하개지미지위미 사악이(天下皆知美之爲美 斯惡已)’라고 해서, 세상 사람들은 모두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아름다움만을 아름다움으로 아는데, 이는 참으로 개탄스러운 일이라고 얘기하고 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춘추 전국시대에도 겉으로 드러난 외모를 지나치게 칭송하는 분위기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구절을 '천하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미는 사실 미가 아니라 추함이다'라고 아주 독창적으로 탁월하게 해석하는 멍텅구리 박사님도 있다.)

그리고 이 구절에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내포되어 있다는 것이 우리 놀자의 독자적인 해석이다. 즉 '잘난 사람만 지나치게 행세하며 살도록 떠받들지 말고, 못난 사람도 함께 더불어 사이좋게 살자'는 뜻이라는 얘기다. 그리고 자신의 해석이 노자가 얘기한 본래의 뜻에 가장 가깝다고 자부하고 있다.


놀자에게도 외모와 관련해서 가슴 아픈 추억이 있다.

아주 오래전, 그러니까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의 일이었다. 이미 입시 위주의 주입식 공부에 흥미를 잃은 지는 오래고, 유신정권하에서 사회는 꽁꽁 얼어붙어 있었고, 국가도 학교도 점차 군대식으로 변해가는 암울한 상황에서, 유일한 재미라고는 홀로 자취방 방바닥을 뒹굴며 이런저런 문학 서적을 읽고 가끔 노트에 감상문을 끄적이는 것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놀자는 장문의 글을 써서 모 방송국 심야 음악프로에 보냈다. 당시 그 프로는 인기 절정의 한 가수가 진행을 하면서 젊은이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었다. 한창 <데미안>에 빠져있던 놀자는 한껏 글 솜씨를 발휘하여, 현실에 대한 불만과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푸념을 ‘데미안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을 통해 구구절절 늘어놓았다.

비록 내용도 유치하고 사춘기 시절의 나약한 감상에서 벗어나지 못한 부끄러운 글이기는 했지만, 지금보다 훨씬 더 순수하고 날카롭고 감성이 풍부했던 놀자의 글은 보내자마자 즉각 채택되어 방송을 탔다. 그리고 어떻게 주소를 알았는지 전국에서 편지가 날아오기 시작하였다. 대부분 또래 여학생들이 보낸 것이었다. 처음으로 팬레터를 받아 본 놀자는 흥분 하여 밤을 새워가며 일일이 답장을 썼다. 그중 한 여학생과는 여러 차례 편지를 주고받기도 했다.

마침내 그해 가을, 그 여학생으로부터 만나러 오겠다는 편지가 왔다. 모월 모일 일요일에 새벽 기차를 타고 무작정 상경하여 집으로 찾아갈 테니, 꼭 기다려 달라는 것이었다. 편지 안에는 자신의 예쁜 사진도 한 장 들어있었다.

아니, 이럴 수가! 놀자는 뛸 듯이 기뻐하며, 그녀가 집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약도를 자세하게 그려서 보냈다. 그리고는 밤마다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펴면서 하루하루 손꼽아 기다렸다. 이건 필시 데미안의 선물임에 틀림이 없었다.

마침내 약속한 날이 다가왔다. 놀자는 아침 일찍 일어나 세수를 깨끗이 하고 옷차림도 단정하게 한 뒤, 뭐 마려운 강아지처럼 안절부절못하고 대문간을 들락거렸다. 그리고 점심 무렵, 드디어 밖에서 여학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 000 학생 계시나요?”

“네, 접니다!”

놀자는 점잖게 대답하며 천천히 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저, 000 학생 찾아왔는데요?”

여학생이 의혹에 찬 눈으로 놀자를 이리저리 훑어보더니,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제가 000입니다.”

“네? 저, 정말이세요?”

“그렇습니다만---.”

순간 여학생은 경기를 하듯 눈을 뒤집으면서, 손사래를 치고 뒤로 주춤주춤 물러났다.

“이, 그럴 리가 없어요! ---이건 아니에요!”

“네?”

영문을 모르는 놀자는 의아해하며 여학생에게 다가갔다.

“이럴 수는 없어요! ---이건 아니에요!”

여학생은 더욱 강하게 손을 내저으며 흐느끼듯 외쳤다.

“제, 제가 뭐, 잘, 잘못했나요?”

놀자도 당황해서 말을 더듬으며 물었다.

“그래도 이건 아니에요!”

“------?”

“정말 이럴 수는 없어요! 흑흑!”

말을 마친 여학생은 서럽게 울면서, 왔던 길을 돌아서 뛰어가 버렸다.

그리고 일주일쯤 지난 어느 날, 형사대가 갑자기 놀자의 자취방에 들이닥쳤다. 그리고는 다짜고짜 수갑을 채운 뒤, 편지를 넣어둔 조그만 상자와 함께 경찰서로 연행을 하였다. 놀자는 아무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가서 중대한 범죄라도 저지른 범인처럼 심하게 취조를 당했다.

“바른대로 말해! 그 여학생을 어디다 숨겼어, 엉?”

형사는 책상을 세게 내리치며 눈을 무섭게 부라렸다.

“여, 여학생을 숨기 다뇨? 그,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심약한 놀자는 하도 놀라고 겁이 나서 그만 오줌을 지렸다.

“너, 이 여학생 알지?”

형사가 내민 사진 속의 인물은 일주일 전에 자신을 찾아왔던 바로 그 여학생이었다. 순간 가슴이 철렁하였다.

“네, 그런데---.”

“일주일 전에 너를 만나려고 상경한 뒤로 소식이 끊겨서, 부모님들이 실종신고를 하면서 너를 범인으로 지목했단 말이다!”

“------?”

“너 아니고는 그 여학생을 숨길 사람이 없으니까, 빨리 사실대로 불어! 어디다 숨겼어, 엉?”

형사는 놀자가 범인이라고 확신을 하고 다그쳤다.

놀자는 하도 어이가 없어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자기 얼굴을 보자마자 마치 무슨 괴물이라도 본 듯이 뒤돌아서 뛰어간 여학생이 도대체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또 그걸 왜 자신이 책임져야 한단 말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나저나 자칫 잘못했다가는 꼼짝없이 납치범으로 몰릴 판이었다.

“형, 형사님! 무슨 증거로 저를 범인으로 모세요? 아까 제 자취방 보셨잖아요. 그렇게 작은 방에다 어떻게 사람을 숨겨요?”

“어디 다른 은밀한 장소에다 숨길 수도 있는 거 아니야?”

“형사님! 그동안 제가 그 여학생과 주고받은 편지를 다 읽어보셔서 아시겠지만, 저 그런 사람 아닙니다. 죄가 있다면 방송국에 편지를 보낸 죄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 여학생이 일방적으로 저를 만나려고 찾아온 것이지, 제가 먼저 만나자고 한 것이 절대 아닙니다. 지금 그 여학생이 어디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하고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일입니다. 전 정말 억울합니다!”

놀자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필사적으로 해명을 하였다. 그리고 그간 있었던 일을 자세하게 다 털어놓았다.

“하긴 네 주제에 그런 엄청난 일을 저질렀을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마는---.”

형사는 한결 누그러진 표정으로 놀자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네, 그렇습니다! 전 결백합니다! 제발 제 말을 믿어주세요!”

“알았다. 일단 풀어줄 테니까, 대신 집에 가서 꼼짝 말고 지시를 기다려라.”

형사가 생각해도 너무 무리한 수사였던 모양이었다. 그렇게 해서 아무 죄도 없이 끌려갔다가 가까스로 풀려난 놀자는 몇 날 며칠을 자취방에 누워 뒹굴면서 울분을 참지 못해 몸부림쳤다. 그 여학생이 그렇게 원망스러울 수가 없었다. 화가 치밀어서 주체할 수 없을 때는 주먹으로 방바닥을 세게 내려치며 세상을 향해 욕을 마구 퍼붓기도 했다.

그런 얼마 후, 경찰서에서 편지 상자를 찾아가라는 연락이 왔다. 다시 만난 형사는 놀자에게 사건의 전말을 얘기해 주었다. 그 여학생이 아무한테도 연락하지 않고 고향 근처에 있는 절에 머무르는 바람에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지만, 마침내 무단가출을 끝내고 집으로 무사히 돌아갔다는 것이었다. 형사는 멋쩍게 웃으며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그러면서 문학을 할 것처럼 생기지도 않았으면서 쓸데없이 글을 쓰네, 어쩌네 하지를 말고, 학생의 본분인 공부나 열심히 하라고 주제넘은 충고를 덧붙이는 것이었다.


그 사건 이후, 놀자는 난생처음 자신의 작은 키와 험상궂게 생긴 외모에 대해 깊은 절망감을 느꼈다. 얼마나 심했는지 부모님과 조상님들을 원망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먼 훗날 유명한 작가가 되어서, 자신을 제대로 알아주지 않는 세상과 여학생에게 멋지게 복수를 하리라 굳게 다짐을 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런 통쾌한 복수는 끝내 이루어지지 못했다. 유명 작가의 꿈은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멀어지는 신기루와도 같았다. 그리고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에는 그런 다짐조차 기억에서 깨끗이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놀자 가라사대(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