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자 가라사대(4)

전설 속의 사라진 양을 찾아서!

by 김혁

놀자가 사는 옥탑방은 가까운 친구들에게 늘 열려있다. 좁고 누추하기는 해도 특별히 누구 눈치 볼 일도 없고, 출입하기도 자유롭고 해서 잠시 쉬어가기에는 안성맞춤이다. 그래서 친구들이 오다가다 들려서 서로 안부도 묻고 세상 돌아가는 얘기도 나누는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외롭게 혼자 사는 놀자에게 친구들이 이렇게 자주 찾아와 주니 감사한 일이었다. 가끔은 지방에 있는 지인들이 볼일을 보러 올라왔다가 들려서 며칠씩 자고 가기도 했다.


오늘도 두 친구가 찾아와서 정담을 나누는 중이었다.

“야, 요즘 나훈아 형이 테스 형에게 자꾸 세상이 왜 이러냐고 묻는데, 그가 다시 살아서 돌아온다면, 뭐라고 대답할 것 같으냐?”

한 친구가 유행하고 있는 노래를 흥얼거리다가 말했다.

“소크라테스가 다시 살아서 돌아온다면, 말없이 고개만 절레절레 내저으며 침묵을 지킬 거야. 세상이 하도 복잡하고 골치가 아파서---.”

또 다른 친구가 고개를 크게 내저으며 말했다.

“아니야. 난 그가 무슨 말을 할지 알 것 같아.”

놀자가 즉시 반박을 했다.

“뭐라고 할 것 같은데?”

“틀림없이 ‘내가 2천 년 동안이나 그렇게 외쳤거늘, 너희들은 아직도 너희 꼬락서니를 모르느냐!’고 호통을 칠 거야!”

“그래, 맞아! 하하하!”

놀자와 친구들은 비쩍 마른 얼굴들을 서로 마주 보며 허탈하게 웃었다.

“근데 늬들 혹시 소크라테스야말로 문제 투성이 인물이었다는 거 알아?”

놀자가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문제 투성이? 철학의 아버지로 추앙받아온 우리 테스 형에게 무슨 문제가 있다는 거야?”

“알고 보니 그는 당시 아테네 민중들이 열렬히 지지하던 민주정을 반대하고, 스파르타 같은 독재를 찬양한 수구꼴통이었더구먼. 그리고 죽은 이유도 지금껏 알려진 것처럼 젊은이들을 선동했다는 죄가 아니라, 조국인 아테네를 배반하고 적국인 스파르타를 도우려고 했던 반역죄였대.”

“허허, 그게 사실이야?”

“응. 당시에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그런 인물을 인류 4대 성인 중 하나니 뭐니 하며 떠받들어 온 게 부끄러워. 물론 숱한 독재자들의 입맛에는 딱 맞는 인물이었겠지만 말이야. 그랬으니까 '악법도 법이다 ‘라는, 그가 하지도 않은 말을 날조해서 널리 홍보했겠지.”

“이거 뭔가 크게 속은 기분이네. 소크라테스의 음모라고 해도 되겠구먼.”

“그러게 말이야. 참, 노자가 부활하면 그는 과연 무슨 말을 할까?”

한 친구가 놀자를 보며 물었다.

“그 할배는 자신이 쓴 도덕경을 죄다 모아서 불태운 뒤, 말없이 사라질 거야.”

놀자가 빙글빙글 웃으면서 자신 있게 말했다.

“그건 또 왜?”

“2천5백 년 동안이나 인간들이 자신의 원래 뜻을 알아주지 않고, 숱하게 오해하고 왜곡만 했으니까.”

“알기는 알았지만, 인간들이 워낙 어리석고 탐욕스러워서 실천에 옮기지 못한 거겠지, 뭐.”

“그런가? 자, 자! 우리 심심한데 바둑이나 두자고!”

“그래, 그래!”

좁은 옥탑방 안에는 한동안 바둑 두는 소리 말고는, 오래 묵은 먼지와도 같은 정적과 평화가 흘렀다.


“아, 코로나로 이렇게 발이 묶이니까, 몽골 초원이 몹시도 그립네---.”

바둑을 연달아 몇 판 두고 난 놀자가 기지개를 크게 켜고 나서 입을 열었다.

“그래, 몽골 초원에 가보니, 사람들이 아직도 말과 양을 많이 기르고 있던가?”

모 공기업에서 공직생활을 하다 고위직으로 은퇴한 친구가 관심을 보였다.

“응. 점점 줄어들고는 있지만, 아직도 많이 기르더라고. 근데 염소가 문제여. 캐시미어 털이 비싸니까 다들 양에서 염소로 바꾸는데, 염소란 놈이 양과 달리 풀을 뿌리까지 캐 먹는 바람에 점점 사막이 늘어나고 황사의 원인이 된다네.”

“허허, 자본주의의 손길이 광대한 몽골 초원마저 황폐하게 하고 있구나.”

“아무렴! 우리 대마왕님의 인자하신 손길이 어련하시겠어? 히히! 근데 도덕경 2장에도 양 얘기가 많이 등장하지.”

“그래?”

”응. 2장은 미(美)와 선(善)으로 시작하는데, 1장에서 길에 대해 멋지게 설파한 뒤에 이어서 미와 선을 얘기하는 게 생각할수록 의미심장해.”

“미와 선이라---, 춘추전국시대 그 난리 통에 백성들은 하루하루 먹고살기도 힘들었을 텐데, 너무 사치스러운 얘기 아녀? 그게 무슨 의미가 있다고---.”

사업하다 재산을 몽땅 말아먹고 백수가 된 친구가 시큰둥하게 대꾸했다.

친구 말에 잠시 뜸을 들이며 호흡을 가다듬던 놀자가 입을 열었다.

“맞아! 도덕경은 도가 어떻고, 미와 추가 어떻고, 선과 악이 어떻고--- 하며 난해한 철학 이론을 늘어놓은 한가하고 사치스러운 책이 아니야. 난세를 극복할 수 있는 아주 구체적인 통치술과 처세술을 자연의 법칙에 빗대어 함축해서 적어놓은 것으로, 당시의 절박한 시대적 요구에 부응해서 당대 최고의 학자인 노자가 오랫동안 고민하고 성찰하고 연구해서 내놓은 그런 책이야.”

“------.”

“늬들 아름다울 미(美) 자를 한번 잘 생각해 봐.”

“그게 어째서?”

“양 양(羊) 자에다 큰 대(大)가 합쳐진 거잖아?”

놀자가 손가락으로 허공에다 크게 글씨를 썼다.

“이제 생각해 보니 정말 그러네.”

“큰 양은 보기도 좋고 먹음직스럽다. 그래서 아름답다. 뭐 그런 뜻이야?”

“맞아! 그러니 이 한자가 만들어질 당시에는, 양을 대대적으로 키우는 유목민족의 영향 아래 만들어진 게 틀림없어. 만일 정착 농경문화를 가진 한족이 만들었다면, 돼지 시(豕) 자에다 큰 대(大) 자를 합쳐서 만들었겠지. 안 그래?”

“그거 꽤나 그럴듯한 얘기네. 한 곳에 붙박아 사는 정주 민족은 양 대신 돼지를 키우는 게 자연스러웠을 테고, 자고로 중국 사람들이 돼지고기를 좋아하는 건 천하가 다 아는 사실이니까.”

“어쨌거나 첫 구절인 ‘천하개지미지위미 사악이(天下皆知美之爲美 斯惡已)’는 세상 사람들은 모두 겉으로 드러난 아름다움만을 아름다움으로 알고 칭송하는 데 그건 잘못이다. 겉만 번지르르한 것보다는 내면을 더 중시해라, 뭐 그런 얘기라고 할 수 있지.”

“아하, 그러니까 요즘 말로 하면 외모지상주의를 비판한 거네.”

“그렇지. 그뿐만 아니라 크고 번지르르한 양처럼 잘난 사람들만 좋아하고 떠받드는데, 그건 아주 나쁜 일이다. 작고 못생긴 양 같이 소외되고 약한 존재들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고 똑같은 가치를 지니고 있으니, 차별하지 말고 골고루 사랑하며 사이좋게 살아라, 뭐 그런 얘기지.”

“야, 역시 우리 놀자는 박애주의자야!”

“암만! 그래서 가는 곳마다 그렇게 열심히 껄떡대며 작업을 거나 봐, 하하하!”

“예끼 못된 친구들 같으니, 히히히!”


다들 놀자가 능숙한 솜씨로 달인 녹차를 한 잔씩 마시며 웃음꽃을 피웠다. 그리고 점점 심각해져 가는 우리 사회의 빈부격차와 양극화 문제에 대해 한참 열을 올리며 얘기를 나눴다.

“그럼 다음에 나오는 선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구절은 또 무슨 뜻이야?”

양극화 문제로 열을 올리던 백수 친구가 캐물었다.

“착할 선(善) 자 역시 유목민족들의 영향 아래서 만들어진 글자가 틀림이 없는 것 같은데, 양(羊)을 여럿이서(卄) 사이좋게 나누어 먹는(口) 것이야말로 착하고 좋은 행위이다, 그런 뜻 같아.”

“요즘 말로 분배 정의를 얘기하는 거로구먼?”

“그렇지! 착하다는 건 단순히 마음씨가 좋다는 게 아니라, 가진 것을 공평하게 나누어 가질 때 쓸 수 있는 말이야. 모두가 평등하게 나누어 가졌던 원시공동체 사회의 흔적이 남아있는 말이라고 할 수 있지.”

“아, 착할 선 자에 그런 따뜻하고 아름다운 뜻이 들어있었구나!”

“그래서 두 번째 구절인 ‘개지선지위선 사불선이(皆知善之爲善 斯不善已)’가 무슨 뜻인고 하니, 사람들은 겉으로는 가진 것을 공평하게 나누어야 한다고 핏대를 세우며 요란하게 떠들지만, 남보다 훨씬 더 많이 가진 자도 있고 배고픈 자도 있는 한, 그것은 착한 것이 아니다. 부디 배를 곯거나 굶어 죽는 사람이 하나라도 나오지 않도록, 골고루 사이좋게 나누어 먹어라, 뭐 그런 얘기지.”

“참 좋은 얘기야. 인류의 영원한 테마 이기도 하고 말이지.”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는 어때? 가진 자들이 사이좋게 나누기는커녕, 없는 자들이 조금 가진 것마저도 빼앗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잖아? 이런 약탈 자본주의는 세계 어디에도 없어.”

백수 친구가 핏대를 올리며 말했다.

“그러게 말이야. 사실 자본주의의 내막을 엄밀히 들여다보면 약탈과 차별과 수탈과 사기니까, 그들만 탓할 수도 없지. 그리고 지나친 경쟁과 개발이 이번 코로나 사태의 주범이라고들 하잖아. 다 자업자득이지, 뭐.”

“그래서 다음에 쭉 이어지는 구절들이 중요한 거야. 있는 자와 없는 자가 서로 상생하고(有無之相生), 세상살이가 어려운 자와 쉬운 자가 서로 위해주고(難易之相成), 지위가 높은 자와 낮은 자가 서로 몸을 맞대고(高下之相傾), 목소리가 큰 자와 작은 자가 서로 화합하고(音聲之相和), 앞선 자와 뒤 쳐진 자가 서로 끌어주고(前後之相隨) 어쩌고--- 이게 다 서로 화합해서 불평등을 해소하라는 얘기지.‘

”얼쑤! “

”물론 여기서 유무의 상생을 유와 무가 서로 맞물려 돌아간다고 해석할 수도 있지만, 바로 앞에서 미와 선을 얘기했으니까, 사회경제적 측면에서 해석하는 게 자연스럽지. “

”당장 먹고살기도 힘든 판에, 그런 공허한 얘기가 무슨 소용이 있겠어. “

”설령 유무가 맞물려서 돌아간다고 해석을 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관념적인 세계일 뿐이고, 그 구체적인 실현은 결국 있는 자와 없는 자의 상생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고 봐.”

“미시와 거시는 결국 하나니까?”

“암만! 그리고 이런 중차대한 문제를 조금의 사심도 없이 완벽하게 실천에 옮길 수 있는, 능력이 아주 출중하고 살신성인의 자세로 노력하는 사람을 성인이라고 불렀지. 성인이 무위로 일하며, 말없이 가르치고, 공을 이루고도 머물지 않고 물러나고, 어쩌고 하는 게 다 그런 말이야. 아, 아! 그런데 망가질 대로 망가진 이 시대를 구할 성인은 어디에 있는가---!”

말을 마친 놀자가 어두워져 가는 밖을 내다보며 한숨을 쉬었다.

“이제 그런 성인도 없으려니와, 혹시 온다고 해도 세상을 구하기 어려워. 그러니 우리끼리 일단 민생고나 해결하러 가자고.”

“그러자고. 오늘은 간만에 양꼬치구이나 양 갈비구이가 당기는구먼, 히히히!”

“우리에게 아름다움과 착함의 의미를 일깨워준 양들에게 감사를 드려야지?”

“암만! 우리끼리라도 미와 선을 완벽하게 실천해 보세!”

“근데 이왕이면 저 광활한 몽골 초원을 마음껏 노닐던 살찌고 맛있는 양고기를 파는 곳이 어디 없을까?”

“그건 또 왜?”

“요새 중국에서 들여온 것들은 영 맛도 없고, 부실해서 말이야.”

“임마, 이런 불경기에다 코로나 비상시국에 뭘 그리 따져? 아무거나 감지덕지하고 먹어. 조금 전에 우리 놀자의 멋진 강의를 듣고도 그런 소리를 해?”

“아 참, 그런가? 하하하!”

“너무 그러지 마. 저 친구가 비록 백수지만, 입맛만은 백조라고, 히히히!”

놀자와 친구들은 아주 오래전에 도덕경 속으로 사라진 양을 찾아서 어두워진 거리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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