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비 사막의 목로주점을 꿈꾸며
“얘들아, 내 말 좀 들어봐!”
양꼬치구이 안주에다 소주 몇 잔을 걸쳐서 기분이 무척 좋아진 놀자가 불콰해진 얼굴로 친구들에게 호들갑을 떨었다.
“나한테 아주 기가 막힌 부동산 정보가 있어!”
“부동산? 맨날 옥탑방에서 뒹구는 주제에 늬가 뭔 놈의 부동산을 안다고 그래? 너 또 사기당하는 거 아니야?”
백수 친구가 눈을 가늘게 뜨며 놀자를 노려보았다.
“그런 거 아니니까 걱정하지 말고 잘 들어봐. 음, 그러니까, 저 몽골 초원에서는 말이야, 땅값이 평당 1원밖에 안 한대.”
“뭐, 평당 1원? 그게 정말이야?”
“응. 워낙 땅이 넓으니까---.”
“에이, 몽골 초원이 아무리 넓다기로서니, 그렇게까지 싸기야 하려고. 잘못 들었거나, 뭔가 까다로운 투자조건이 있겠지.”
고위직에서 은퇴한 친구가 못 믿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는 호주머니 사정이 넉넉해서 술값과 밥값을 주로 대는 착한 친구였는데, 놀자는 그를 가끔 '우리나라에서 가장 청렴결백한 탐관오리' 출신이라고 놀리며 나름대로 고마움을 표시하곤 했다.
“정말이라니까. 내가 얼마 전에 우리나라 최고의 몽골 여행 전문가한테서 직접 들은 얘기야. 확실해.”
“그래? 그렇다면 잘됐다. 우리 모두 이 좁은 땅덩이에서 아옹다옹 싸울 게 아니라 다 함께 거기로 가서,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 남은 인생을 멋지고 폼나게 살아보자! 다들 어때?”
“그거 좋지. 당장 내일이라도 출발하자고!”
“근데 딱 한 가지 문제가 있어.”
“뭔데?”
“다른 건 다 좋은데, 물이 한 방울도 안 나온대, 히히히!”
“뭐? 이런, 하하하!”
놀자와 두 친구는 한바탕 웃은 뒤, 쓴 소주를 입에 털어 넣었다.
일행은 텔레비전 화면에서 요란하게 보도하고 있는 부동산 관련 뉴스를 한동안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자고 나면 아파트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른다니 정말 큰일이었다. 자연스럽게 화제가 그쪽으로 옮아갔다.
“이놈의 정부는 부동산을 못 잡는 건지, 안 잡는 건지, 그걸 통 모르겠어.”
“여론 때문에 겉으로는 집값을 잡는 시늉만 하면서, 실제로는 그냥 내버려 두고 있는 게 확실해. 아니, 더 오르도록 조장하는 것 같아.”
“맞아! 그래야 자기네들 재산도 오르고, 세금도 많이 거둬들일 수 있으니까.”
“맨날 집값을 잡겠다고 큰소리 뻥뻥 치면서도, 정작 내놓는 정책마다 뒷북을 치거나 거꾸로 가고 있는 걸 보면, 늬 말이 맞는 것도 같다, 야!”
“공공연한 비밀이지만, 오래전부터 부동산 투기꾼들과 건설회사들과 은행들과 정치인들이 다 한통속이야. 그러니 집값이 잡힐 턱이 있나.”
“지금 집값이 사상 최고로 올라서, 서울은 물론이고 전국이 부동산 바람으로 난리도 아니야!”
“오죽하면 새파란 젊은이들조차 영끌이니 패닉바잉이니 하며 뛰어들겠어?”
“이거 정말 큰일이야. 미쳐도 단단히 미쳤어!”
“집을 가지고 있는 우리도 불안해. 집값 많이 올랐다고 당장 팔고 어디로 이사 갈 수도 없는데, 세금은 왕창 오를 거고, 집 없는 사람들이나 젊은이들 때문에 사회 분위기는 점점 더 힘들고 뒤숭숭해질 거고---.”
“이러다 다 같이 폭 망하는 거 아니야?”
“조만간 그럴 때가 온다고 전문가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는데, 아무리 경고해도 씨알도 안 먹혀.”
“이쯤 되면 이건 거의 돌림병 내지는 풍토병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야.”
“부동산 풍토병? 거참 그럴듯하다, 허허허!”
다들 혀를 차며, 또다시 쓴 소주를 입에 털어 넣었다.
“얘들아, 내가 아주 기가 막힌 비밀을 하나 얘기해줄까?”
한동안 말없이 술잔을 기울이던 은퇴 친구가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무슨 비밀?”
“강남 부동산 불패신화에 대한 비밀인데---.”
“뭐? 몇십 년째 부동산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강남 불패신화의 비결?”
“응. 사실 비밀보다는 기밀이라고 하는 게 더 맞을 거야.”
“와, 그런 특수 기밀을 알고 있다니, 대단하다 야! 역시 넌 내 베프야. 빨리 얘기해 봐!”
세상만사에 관심이 무척 많은 놀자가 흥분해서 소리쳤다.
“그래, 넌 공직에 오래 몸담고 있어서 발도 넓은 데다, 강남에 오래 살았으니까 비밀과 기밀을 많이 알고 있을 거야. 정말 흥미진진하다, 야! 진즉에 얘기 좀 해주지 그랬어. 그랬더라면 나도 늬 덕 좀 봤을 텐데 말이야!”
백수 친구도 입맛을 다시며 관심을 보였다.
“임마, 무슨 개발정보 같은 얘기가 아니니까 꿈 깨라.”
“그럼 뭔데?”
“난 그냥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강남 부동산이, 반세기 가까이 되도록 아무리 비판과 비난을 받아도 끄떡도 하지 않고, 계속 막강한 위력을 발휘하며 위세를 떨치고 있는 이유를 얘기하고 싶을 뿐이야.”
“도대체 그 이유가 뭐야? 궁금하다 야.”
“흠 흠, 지금 강남에 말이야. 내가 듣고 또 확인해 본 바에 의하면, 지난 수십 년 동안 정부 각 부처와 산하기관을 거쳐 간 고위급 인사 중, 전 현직 장, 차관급 이상의 인물들만 해도 대략 2천 명쯤 살고 있어.”
“우 와, 그렇게나 많이?”
“그, 그게 사실이야? 엉?”
“응. 한번 생각해 봐. 우리 사회에서 콧방귀깨나 뀐다는 그들이 현직에 있을 때는 말할 것도 없고, 물러난 뒤에도 그동안 알게 모르게 우리나라 정책 전반에 걸쳐서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을지를 말이야.”
“그야 불을 보듯 뻔하지, 뭐.”
“그래, 그렇다고 봐야지. 특히 부동산 정책에 대해 막강한 힘을 발휘해 왔을 거야. 부동산에 관한 한 진보와 보수, 여당과 야당이 따로 없으니까. 그들은 다 같이 한마음 한뜻으로 똘똘 뭉쳐서 알짜 정보를 주고받으며 상부상조하고, 필요하다면 전문 투기꾼들과도 기꺼이 손을 잡고 부동산 시장을 주도하고, 자기들이 사는 강남을 성역으로 만들어 지키기에 바쁠 거야.”
“------.”
“더군다나 대부분 한 사람이 아파트를 여러 채씩 가지고 있을 텐데, 그들이 솔선수범해서 집 없는 서민들과 사회 정의를 위해서 강남 집값을 오르지 못하게 할 것 같아?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소리지. 자기 땅값과 집값이 떨어지는 걸 좋아할 인간들이 세상에 어디 있겠어? 오히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올리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게 현실이지.”
“허허, 이제야 강남 불패의 미스터리가 풀리는구먼.”
“알고 보니 게임은 벌써 오래전에 끝난 거네.”
“맞아. 맞아! 아무리 부동산 정책을 제대로 만들어서 실천하라고 외쳐본들, 힘없고 빽도 없는 서민들이 그들을 어떻게 이기겠냐?”
“그러게 말이야, 씨벌!”
고소하고 향긋한 양꼬치구이 맛이 갑자기 뚝 떨어진 세 친구는, 자신들의 앞에 놓여 있는 도저히 넘을 수 없는 높고 견고한 벽을 실감하고는, 말없이 쓴 소주만 입안에 털어 넣었다.
“놀자야! 속상한데 도덕경 얘기나 좀 해 줘라!”
백수 친구가 거푸 잔을 뒤집어 게슴츠레해진 눈으로 말했다.
“시방 그런 한가한 소리를 할 때냐? 엉? 저런 영혼도 없고, 머리에 똥만 잔뜩 들고, 양심이 썩을 대로 썩어 문드러진 무리들에게 도덕경이 가당키나 해? 차라리 쇠귀에 경을 읽는 게 낫지!”
여간해선 화를 내지 않는 놀자가 소리를 버럭 질렀다.
“그렇게 흥분하지 말고, 내 말 좀 들어봐.”
“------.”
“넌 그동안 부동산 투기 같은 것에는 눈길 한번 던지지 않고, 좁은 옥탑방에서 자신만의 소신과 철학을 굳게 지키며 무위도식 아니 무위자연을 실천하면서, 동서고금의 성인들과 함께 뒹굴며 살아왔잖아. 이 시대에 참 보기 드문 희귀종이야. 그러니 희귀종으로서 지켜본 소감을 좀 얘기해 달란 말이야.”
백수 친구가 살살 달래자, 놀자는 화를 풀고 숨을 고른 뒤 말문을 열었다.
“히히히, 그럴까나---. 우리나라 부동산 정책은 처음부터 완전히 사기였다! 그야말로 짜고 치는 고스톱이었다! 어느 나라나 거대한 도시개발 프로젝트를 시행할 때는 투기꾼들이 달려들지 않도록 철저하게 비밀을 유지하고, 진행 과정에 비리와 특혜가 생기지 않도록 엄격하게 감독하며, 개발이익을 철저히 관리하고 환수해서 공공 부문에 투자하는 것이 상식인데, 우리는 그러기는커녕 그걸 이용해서 정권의 비자금과 통치자금으로 썼으니 더 말해 무얼 하랴!”
”그래서 개발독재라고 지금까지 욕을 엄청 먹고 있지. “
”개발독재뿐만 아니라 닭 발 독재, 소 발 독재, 돼지족발 독재라고 욕을 처먹어도 싸지, 히히히! 강남 개발을 주도한 박정희 이래로, 대대로 정권 잡은 놈들과 대기업과 은행과 돈 있는 놈들이 끼리끼리 다 해 처먹고, 국민들에게는 남는 부스러기를 조금 던져주었다! 돈맛을 본 국민들은 당연히 개떼처럼 달려들었고, 그 후 영악한 국민들은 스스로 알아서 무한 진화하면서 판을 키워 부동산 시장을 불가사리 같은 괴물로 만들었다. 그 결과 전 국민을 부동산 투기꾼으로 만들어 버렸다!”
“옳소! 우리 놀자 잘한다!”
“도덕경 3장에 나오는 ‘불상현 사민부쟁(不尙賢 使民不爭)’은 바로 이런 말이다! 위정자가 잔꾀를 부리지 않으면, 백성들은 다투지 않는다! 여기서 어질 현자는 어질다는 뜻이 아니고, 잔재주를 부린다는 뜻으로, 노자 특유의 반어법인데, 우린 과연 어땠나? 그 반대로만 나가지 않았나? 그동안 온갖 잔꾀와 기만과 꼼수와 사탕발림으로 국민들을 투기장으로 내몰았다! 이런 아사리 판에서, 약삭빠른 놈들은 눈치껏 부지런히 뛰어다니며 한몫 잡아 벼락부자가 되었고, 어리숙한 놈들은 정보도 어둡고 타이밍을 맞추지 못해서 미적대다가 그리고 정부 말만 믿고 알량한 양심을 지키다가 결국 벼락 거지가 되었다! 이게 우리나라 부동산의 민낯이다---!”
일장 연설을 마친 놀자가 감정에 복받쳐 눈물을 줄줄 흘리다가, 곧 히죽히죽 웃으며 말을 이었다.
“내가 비록 사냥꾼에게 쫓기는 사슴처럼, 본의 아니게 투기꾼들의 농간에 쫓겨서 옥탑방에 살고 있지만, 지금껏 부동산 투기라고는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그럼 시대의 희생양인 나한테 보상이라도 좀 해줘야 할 것 아니냐? 근데 그 누가 나한테 10원짜리 하나 보태준 적이 있더냐?”
“바랠 걸 바라야지.”
“아, 이제 나도 이런 아사리 판에 지쳤다. 우리 모두 몽골로 가자! 가서 드넓은 초원에다 그림 같은 집은 아니어도 좋으니, 외로운 섬을 닮은 게르나 한 채 지어놓고 원 없이 살아보자. 물이 없으면 어떠냐. 우리가 우물을 파서 물장사를 하면 되지, 안 그래? 히히히!”
“그래, 그래!”
“그리고 고비 사막에다 멋들어지게 목로주점 하나 차려놓고, 전 세계에서 찾아오는 나그네들과 농담 따먹기나 하면서 한세월 삼삼하게 그리고 무심하게 보내자, 히히히!”
“야, 이거 신 용문객잔이 따로 없네. 무척 기대된다, 야!”
“거기 가서 또 껄떡대다가 국제적으로 사랑싸움이 터지는 거 아니야?”
“그러게 말이야, 하하하!”
“예끼 이 못된 친구들 같으니, 히히히!”
“아, 눈만 뜨면 부동산 모래폭풍이 휘몰아치는 이 비정한 강호에, 언제나 평화가 찾아오려나!”
늙수그레한 세 친구의 쓸쓸한 눈동자 속으로 문득 광활한 고비의 핏빛 노을이 슬쩍 비끼어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