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도생의 시대
놀자와 친구들은 일찍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정부의 방역지침 때문에 식당에 오래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 이제 막 대화가 무르익으려 하는데 술자리를 중단하고 일어서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예전처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늦게까지 웃고 떠들며 담소를 즐기던 때가 문득 그리웠다.
“내 참, 별것이 다 그리워지네---.”
백수 친구가 문을 나서며 푸념을 하였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전 세계 모든 이들의 일상을 단번에 앗아가 버렸다. 마치 지금껏 당연히 누려온 인간들의 문명 생활을 더 이상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이. 그리고 백신 접종이 시작되긴 했지만, 돌아가는 상황으로 봐서는 예전과 같은 일상이 언제나 찾아올지 막막하기만 했다. 많은 이들에게 2020년은 그냥 지워버리고 싶은 한 해였다. 특히 일자리를 잃은 이들에게는 더없이 가혹한 시절이었다.
“그러게 말이야. 무심하게 대하던 소소한 일상이 이토록 소중할 줄이야.”
계산을 마치고 나온 은퇴 친구도 입맛을 다셨다.
“이게 다 우리가 평소에 ‘평상심이 도’라는 가르침의 깊은 뜻을 모르고 허겁지겁 살아온 데 따른 업보지 뭐, 히히!”
놀자가 남의 말을 하듯 무심하게 대꾸했다.
“야, 넌 입만 열면 도, 도 하는데, 언제 도통해서 진짜 도사가 될래, 응?”
백수 친구가 작정하고 놀자의 말에 쐐기를 박았다.
“허허, 하루하루 제 앞길을 잘 살펴서 무탈하고 올곧게 살아가면 그게 도통이지, 도통이 따로 있냐? 꼭 하늘을 훨훨 날고, 축지법을 써야만 도통이냐?”
놀자도 지지 않고 또박또박 반박을 하였다.
“그렇긴 하다만, 넌 유별나니까 신통력이라도 좀 멋지게 발휘해 봐라.”
“아서라! 그런 거 좋아하다가 패가망신하는 수가 있다. 어쩌면 사이비 교주가 돼서 남도 크게 망치고, 자기도 영혼까지 완전히 망가질 수도 있고, 히히히!”
“아이고, 그거참 아쉽다. 우리 놀자가 사이비 교주로는 제격인데 말이야.”
“예끼, 이 못된 친구 같으니! 어쨌거나 저 코로나 바이러스 교주님께서 우리에게 이르시기를, 몸은 멀리 떨어지고, 마음으로만 가까이 지내라네.”
헤어질 때가 다가오자 놀자가 친구들을 보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렇지 않아도 우린 이미 오래전부터 그렇게 해 오고 있잖아. 안 그래?”
“맞아, 맞아! 나이가 드니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연히 그렇게 되더라고.”
“이런 코로나 바이러스보다 더 영악한 친구들 같으니라고, 히히히!”
“근데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기 마련인데, 그게 걱정이야.”
“몸은 가까우면서 마음이 한없이 먼 것보다는 훨씬 낫지, 뭘 그래!”
“그건 그래, 히히히!”
“올해도 이제 며칠 안 남았네. 한 해 마무리들 잘하게!”
“그려, 다가오는 신축년 새해에 다들 복 많이 받고 건강하게나!”
“암만! 그래야지. 다들 추위에 몸조심하고, 집에 잘들 들어가게!”
친구들과 헤어진 뒤 옥탑방으로 돌아온 놀자는 곧장 들어가지 않고, 찬바람이 몰아닥치는 좁은 옥상에 서서 발아래 펼쳐진 화려한 불빛을 멀거니 내려다보았다. 오늘따라 불빛들이 몹시도 애처롭고 을씨년스러워 보였다. 다들 집값 걱정, 이자 걱정, 임대료 걱정, 취직 걱정, 생활비 걱정, 사교육비 걱정, 빚 걱정 등으로 고통받으며 눈물을 글썽이고 있는 것만 같았다.
“다들 얼마나 살기가 힘들까---. 하기야 우리 같이 힘없고 가진 것 없는 서민들한테 언제 호경기가 한 번이라도 있었다더냐? 팬데믹 사태가 발생하기 전부터도 심각한 불경기로 다들 힘들고 어려웠는데, 이놈의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그야말로 엎친 데 덮친 격이요, 설상가상이로구나---. 다들 어찌 지내고 있는지, 에휴---!”
놀자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생각할수록 한숨이 절로 나왔다.
사실 수입이 거의 끊긴 놀자도 요즘 주머니 사정이 몹시 곤궁하였다.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는 적은 액수라고 해도, 다달이 나가는 월세와 관리비와 생활비를 맞추기도 힘들었다. 그래도 오지랖 넓은 우리 놀자는 같은 일을 하는 동료들 걱정이 앞섰다.
“나야 혼자 사니까 그럭저럭 버틴다고 하지만, 교육비다 뭐다 한창 돈 많이 들어가는 아이들이 딸린 친구들은 어찌 살아갈까? 다들 무사히 이 고비를 잘 견뎌야 할 텐데---.”
놀자는 눈물을 글썽이며 계속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옆에 친구들이 있기라도 한 듯, 아까 떠들던 도덕경 3장의 다음 부분을 혼자서 주고받기 시작하였다.
“불귀난득지화 사민불위도(不貴難得之貨 使民不爲盜)라. 이 말이 무슨 뜻인가 하면, 먹고사는 데 꼭 필요한 물건을 구하는 것을 어렵거나 힘들지 않게 함으로써, 즉 먹고사는 걸 어렵지 않게 해서 백성들로 하여금 도둑질하지 않도록 해라, 뭐 이런 뜻이지.”
“쉽게 말해서 양질의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서 백성들의 민생고를 잘 해결하라 그런 말이네? 사흘 굶어서 담 넘지 않는 자가 없으니 말이야.”
“맞아, 맞아! 자고로 그것이 가장 큰 문제니까. 지금도 정치를 한다는 작자들이 입만 열면 민생을 살리자느니, 민생 법안을 통과시키자느니 하고 떠드는 것도 다 그런 이유 때문이지.”
“민생 좋아하시네. 그들이 말로만 그렇게 요란하게 떠들지, 어디 진심으로 걱정하는 거 봤어? 마음은 늘 콩밭에 가 있어서, 날이면 날마다 도토리 키재기 식 정쟁으로 이전투구를 벌이는 바람에, 각종 민생 법안은 뒷전으로 밀려나서 잠자고 있기 일쑤지.”
“옳소! 맞는 말이야. 선거 때만 잠시 굽신거리는 척하며 표를 구걸하다가, 당선되고 나면 목에 힘주고 온갖 이권과 권력을 다 누리며 안하무인으로 떵떵거리고 사는데, 뭐가 아쉬워서 그런 데 신경을 쓰겠어?”
“그래서 정치인들이 쓰레기 같은 존재라고 욕을 먹는 거야.”
“위의 구절 중에서 재화 화(貨)를 아주 귀중한 보물이라고 해석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던데, 거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
“물론 글자 그대로만 보면 그렇게 해석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런 작자들은 한마디로 말해서 세상 물정을 모르는 백면서생이거나, 도덕경 전반에 흐르는 시 정신을 모르는 책상물림들이 틀림없어.”
“어째서?”
“그들이 해 놓은 해석을 한번 보자고. ‘얻기 어려운 보물을 귀하게 여기지 못하게 하라. 그러면 백성들이 도둑질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되어 있는데, 이게 상식적으로 말이 돼? 아니, 어떻게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할 수 있어?”
“맞아, 온 천하 백성들이 다 최영 장군처럼 고결한 품성을 지닐 수는 없는 노릇이지. 그리고 하루하루 먹고살기도 힘든 백성들이 구경하기도 힘든 금은보화가 뭐가 그토록 탐이 나서 도둑질을 하겠어?”
“당연하지. 당장 때 거리가 없어서 굶어 죽을 판인데 그딴 금은보화가 뭔 소용이야. 물론 그걸 팔아서 양식을 구할 수는 있겠지, 히히!”
“그리고 나라마다 각각 전쟁을 밥 먹듯 하는 바람에 먹거리가 없어서 백성들이 굶어 죽거나 겨우 목숨을 연명하던 춘추전국시대에, 대부분 사람에게 가장 귀한 보물이 뭐겠어? 바로 식량 아니겠어?”
“그렇다고 할 수 있지. 예나 지금이나 알고 보면 식량이 가장 귀한 보배지.”
“그런 사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그저 금은보화라고 해석하는 자들은 그야말로 꽉 막힌 깡통들이야.”
“난 또, 보물을 보물이라고 다 같이 생각하지 말기로 약속하자, 그러면 아무도 훔치려고 들지 않을 것이다, 뭐 이런 뜻인 줄 알았지.”
”등신. 그래도 다른 해석들보다는 좀 낫네, 히히히!“
”그다음 구절인 불견가욕 사심불란(不見可欲 使心不亂)도 논란이 많던데?“
”그건 말이야, 일확천금이나 투기의 기회 같은 것이 보이지 않게 해서 사람들 마음을 어지럽게 하지 마라, 그런 말이야.“
”아하, 그렇구나. 지금처럼 부동산 투기로 온 나라가 들썩거리도록 장난치지 못하게 하라는 얘기지?“
”응. 근데 그러기는커녕 위정자들과 투기꾼들이 한통속이 돼서 국민들의 등골을 빼먹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으니, 더 말해 무얼 해.”
“그런가?”
“아니, 공중에 새장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는 저 성냥갑 같은 아파트가 자고 나면 몇 천만 원, 몇 억 씩 오른다니, 도대체 이게 말이 되는 소리야?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평생 열심히 살아도, 저리 많고도 많은 아파트 가운데 살 곳이 단 한 군데도 없다니, 얼마나 기가 막히는 일이야?”
“그러니 지금 우리 사회가 돈맛에 환장한 파충류들이 우글대는 아파트 정글 사회라는 말이 나오지. 아파트를 꿀꺽꿀꺽 삼키는 티라노사우루스가 설쳐대는 공룡시대가 따로 없어.”
“와, 이거 완전 공포의 쥐라기 공원이네. 여기서 다들 어떻게 탈출하지?”
“남 걱정하지 말고, 너나 잘하세요.”
“나야 이 옥탑방도 넓다면 넓지만, 집 없는 서민들이 개고생이지 뭐. 자고로 도가 높은 고승일 수록 좁은 골방 안에서 수행을 하는 법. 그래야 우주의 틈새를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나니---”
“꼴값하고 있네, 히히히!”
추위 때문에 더 이상 밖에 못 있고 방으로 들어온 놀자는 문득 라면이 먹고 싶어졌다. 그래서 가스레인지에 물을 올리고, 대파를 썰고 달걀을 깨서 푸는 등 익숙하게 손을 놀리면서, 3장의 나머지 부분을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옛 성인들이 다스린 게 뭐 별건가. 백성들이 쓸데없는 욕심부리지 않게 하고(虛其心 弱其志) 배부르고 등골 따시게 하고(實其腹 强其骨) 세세한 것까지 알아내서 각자도생 하지 않아도 살 수 있도록 하되(使民無知無欲), 그렇다고 그걸 이용해서 관리들이 백성들 등치지 않도록(使夫智者不敢爲) 한 거지. 성인들이 출중한 능력을 가지고 사심 없이 그렇게 다스리니, 다스려지지 않는 게 없었다는(爲無爲 則無不治) 얘기지.”
“그야 까마득한 옛날 꿈같던 시절의 얘기지.”
“맞아. 지금 우리나라처럼 먹고살기가 어렵고, 집이 있으나 없으나 늘 집 걱정을 해야 하고, 쓸데없는 것들까지 일일이 다 알아서 챙기지 않으면 생존 자체가 안 되는 사회는 정말 피곤하고 힘든 사회야. 조그마한 일만 생겨도 각자가 각개전투를 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가 없잖아.”
“그래서 사람들이 '각자도생'이란 말을 입에 달고 사는 게 참 슬퍼. 내 귀에는 그 말이 꼭 각자 도살장이라고 들려.”
“그래, 각자 도살장으로 끌려가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며 산다는 말이구먼. 아, 생각할수록 가슴이 아프고 안타깝네.”
“시장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굴러가지만, 그에 못지않게 '보이지 않는 가슴'도 중요하다는데, 우리 사회에는 난폭하고 사나운 손들 만 난무하고, 따뜻한 가슴이 너무 부족해.”
“빈약한 복지제도와 사회안전망이 문제란 얘기 구만. 그럼 어찌해야 좋을까?”
“그걸 알면 내가 지금 이러고 있겠냐고, 히히히!”
“자, 자, 라면이 다 됐어. 일단 먹고 나서 얘기하자고.”
“그래. 우 와, 이거 진짜 맛있네! 대기업 오너나 부자들은 이런 맛을 절대 모를걸? 히히!”
“암만! 오랜 세월 동안 궁상을 떨며 쌓아 온 내공이 없으면 절대 이런 맛이 안 나오니까.”
“어 흑! 갑자기 그네들이 엄청 불쌍해진다 야. 그치?”
“응. 불쌍하다마다. 근데 파김치 좀 없어?”
“없어. 갑자기 그건 또 왜 찾아?”
“라면엔 파김치가 제격이잖아.”
”맞아, 라면엔 뭐니 뭐니해도 파김치가 딱 어울리지---.”
“미안하지만 오늘은 없으니까 그냥 김치하고 먹어.”
“알았어. 까라면 까야지 뭐, 근데 좀 아쉽다.”
“임마, 늬 꼬라지 자체가 파김치인데, 뭘 따로 찾아.”
“아 참, 그런가? 히히히!”
높고 외롭고 쓸쓸한 곳에 사는 놀자는 오늘도 라면 한 그릇으로 무한한 행복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