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자 가라사대(7)

무위(無爲)의 춤

by 김혁

신축년(2021) 소띠 해가 밝았다.

새벽부터 여기저기서 새해를 축하하는 문자가 핸드폰을 통해 마구 쏟아져 들어왔다. 소의 해라서, 주로 소 자 돌림으로 끝나는 축하 인사였다. 행복하소, 건강하소, 사랑하소, 소원 성취하소, 대박 나소--- 등등. 별별 기발하고 깜찍하고 웃기는 인사말들이 다 있었다. 그에 걸맞게 도안이 된 각양각색의 이모티콘들도 가히 예술의 경지였다.

“아니, 근데 이게 웬 소몰이 합창 대공연이람, 히히!”

놀자는 축하 문자를 하나하나 뜯어보며 연신 감탄을 하였다. 그리고 잠시 옛 생각에 잠겼다.

‘아, 모두의 소망을 담은 그토록 곱고 아름답고 화려하던 카드와 연하장들!’

연말연시가 되면 마음을 가다듬고 카드와 연하장을 정성껏 써서 우편으로 부치고, 배달부를 통해 애틋하고 살뜰하게 정을 주고받던 그때 비하면 요즘은 정성과 품격이 많이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송구영신을 함께하며 희망과 소원을 서로 다정하게 나누려는 따뜻한 마음만은 예전 못지않았다. 아니, 마음을 표현하기가 훨씬 더 쉽고 편리해서 어떤 면에서는 더 좋았다.


신년맞이 축하 인사는 한동안 계속되었다. 오늘 하루만이라도 다들 그렇게 신나고 기뻐했으면 좋으련만, 때가 때이니만치 속으로는 무척이나 걱정하고 또 긴장하고 있음이 여실히 느껴졌다.

“보나 마나 코로나 19 바이러스 때문에 새해에도 여러 가지로 무척 어려울 텐데, 다들 금년 한 해 건강하고 씩씩하게 소몰이들 잘 하소! 그리고 무엇보다도 마음속의 소를 놓치지 말고 꽉 잡으소!”

놀자는 좁은 옥상에 서서, 빌딩 사이로 떠오르는 해를 향해 정성껏 기도하며 중얼거렸다. 그리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새해가 되면 잠시나마 꿈과 희망으로 부풀어 오르곤 했었는데, 그마저도 사치스럽게 느껴질 만큼 상황이 녹록지 않았다. 코로나19 대유행은 과연 잡힐 것인가, 아니면 더욱 심해질 것인가, 다행히 잡힌다 해도 이미 크게 망가진 세상과 일상을 어찌 회복할 것인가---.

새해를 맞이하며 마음이 이렇게 무겁기는 또 처음이었다.

문득 간밤에 꾸었던 꿈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하얀 소를 타고, 황톳빛 탁류가 무섭도록 도도하게 범람하는 강을 건너는데, 아무리 애타게 찾아봐도 소의 고삐가 없다!’

이게 무슨 뜻일까. 힘든 한 해가 될 터이니 각별하게 몸조심하라는 계시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은데, 하필이면 왜 고삐가 없는 소를 타고 있을까. 고삐가 없으니 소를 내 마음대로 조종하려고 들지 말고, 그저 소가 하는 대로 맡기라는 얘기일까.

그럴지도 모른다. 우생마사(牛生馬死)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평소에 소보다 몇 배나 헤엄을 잘 치는 말은 홍수를 만나면 거센 물살을 거스르려고 발버둥 치다가 빠져 죽는데, 우직한 소는 물살을 등지고 떠내려가면서 조금씩 조금씩 물가로 나와서 산다고 했으니, 금년 한 해도 늘 그랬듯이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살다 보면 좋은 일도 생기겠지.

“알고 보니 그래도 좋은 꿈이네. 아무리 홍수가 나서 물살이 거세더라도, 쇠뿔이든 소 꼬리든 꽉 붙잡고 있기만 하면 빠져 죽지는 않는다는 얘기니까, 그러면 됐지 뭐, 히히히!”

놀자는 흐뭇한 표정으로 태양을 향해 몇 번이고 머리를 조아렸다.


오후에 친하게 지내는 후배 시인 하나가 인사차 놀자를 방문하였다. 두 사람은 옛날 선비들 흉내를 내어 정중하게 맞절을 하고 난 뒤, 덕담 삼아 이런저런 농담을 나누었다.

“형님! 오늘 와서 보니 정말 대단해요.”

“또 뭐가?”

“혼자 이리도 편하고 자유롭게 사니, 옥황상제도 안 부럽겠소.”

“옥황상제가 아니라 옥상 황제겠지, 히히히!”

“아, 참, 그런가요? 하하하!”

“쉿! 어디 가서 천기누설하지 마.”

“아니, 형님 혼자만 이렇게 행복하면 되는 거요?”

“허허, 그리 좋으면 나하고 너하고 바꾸자.”

“그러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딸린 처자식이 있어서리---.”

“맨 날 처자식 떨쳐버리고 입산한다고 할 때는 언제고?”

“그러려고 했는데, 나중에 다시 하산해서 중생제도를 하느니, 지금 이대로 하는 게 나을 거 같아서리---.”

“예끼, 이런 한심하고 미련한 중생 같으니라고!”

“하하하!”

“히히히!”

두 사람은 서로 격의 없이 대하면서 그간의 소식을 주고받았다.

“근데 형님, 간밤에 뭐 좋은 꿈이라도 좀 꾸셨소?”

“응. 하얀 소를 타고 강을 건너가는 그런 꿈을 꿨지.”

“와, 그거 대박이다! 금년엔 뭔가 크게 될 거 같아요.”

“내 꼬라지를 봐. 되기는 뭐가 돼. 그저 큰 사고나 없이 무탈하게 하루하루 지내면 그걸로 족하지.”

“님아, 그 강을 건너가오! 건너가서 제발 다시는 돌아오지 마오!”

“아, 나도 그러려고 했는데, 중간쯤 건너가다가 그만 깼어.”

”아이고 아쉽다. 형님을 신세계로 보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는데, 하하하! “

”내가 그렇지 뭐, 히히히!”

“근데 불교에서는 왜 우리 마음속의 주인을 소로 표현했을까요?”

소띠인 후배가 감회가 깊은 표정으로 물었다.

“선가의 심우도를 말하는 거로구먼?”

“네. 그렇지 않아도 세상이 뒤숭숭하고 어지러운데, 육십갑자 해를 맞으니까 기분이 참 묘하네요.”

“옛날 농경사회에서 소처럼 듬직하고 귀한 존재가 없었기 때문에, 참 나를 상징적으로 그렇게 표현한 거겠지. 진리를 찾아가는 과정이 마치 잃어버린 소를 잡아서 길들이는 과정과 같다고 본 거지. 하지만 뼈를 깎는 수행으로 마음속의 소를 찾아서 하나가 된 뒤에는, 거기 머물지 말고, 소도 잊고 나도 잊고 바람처럼 구름처럼 아무 걸림 없이 무심하게 살라고 했지.”

“노자의 무위자연과도 같은 경지네요.”

“그렇다고 할 수 있지.”


한동안 바둑을 두며 이런저런 얘기를 시시콜콜 주고받던 두 사람은 코로나 사태로 인해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생계 걱정을 하다가, 돌이킬 수 없는 지구온난화와 심각한 환경파괴에 대해 열을 올렸다. 그러면서 자연히 노자의 무위 사상으로 화제를 옮겨갔다.

“무위(無爲)만큼 오해를 많이 받은 말도 없어. 아직도 무위를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혹은 ‘인위적인 행위를 하지 않는 것’ 등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그야말로 넌 센스 중의 넌 센스지.”

“그런가요?”

“응. 그들 말대로라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도 하지 않는 것이 없다.'라고 해석을 해야 하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도 모든 걸 다 한다는 게 도대체 무슨 말이야? 그게 말이나 돼?”

“그렇지요. 아까 얘기한 것처럼, 무심의 경지만 해도 얼마나 뼈를 깎는 수행을 해야 도달할 수 있는 경지인데요. 단지 천진무구하거나 인위적으로 꾸민 행위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런 경지에 도달하기는 어렵겠지요.”

“무슨 일을 하든, 엄청난 노력 끝에 궁극의 경지에 도달해서, 아무런 꾸밈없이 그야말로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능숙하게 무심한 상태로 일을 해낼 수 있을 때, 이를 무위자연이라고 하는 거야.”

“TV에 나오는 생활의 달인들도 일종의 무위자연의 경지라 할 수 있을까요?”

“아주 흡사하지. 그들이 그토록 쉽고 자연스러우면서 멋지게 일을 처리하기 위해서 얼마나 오랜 세월 동안 피나는 노력을 했는지 생각해 봐.”

“장자에 나오는 그 유명한 포정해우(庖丁解牛) 얘기가 생각나네요. 평범한 백정은 달마다 칼을 바꾸고, 솜씨 좋은 백정은 1년 만에 바꾸는데, 포정의 칼은 19년 동안 수천 마리의 소를 잡았음에도 불구하고 칼날은 방금 숫돌에 간 것과 같았다고 하지요.”

“그렇지. 어느 분야에서나 달인의 경지에 이르러 신기에 가까운 솜씨를 자랑할 때, 이를 일러 포정해우라고 하는데, 장자가 무위자연을 설명하기 위해서 예로 든 거지.”

“근데 왜 무위 뒤에다 자연(自然)이란 말을 붙여가 지고, 무위자연이 마치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놀고먹는 것처럼 오해를 불러일으켰을까요?”

“히히! 그게 바로 노자가 파놓은 함정이야.”

“함정요?”

“응. 사람들은 흔히 자연(自然) 하면 크게 하는 일도 없이 가만히 있으면서도 만물을 길러낸다고 생각하기가 쉬운데,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야. 이 지구를 한번 생각해 봐. 자전 속도가 얼마나 빠른 줄 알아? 자그마치 시속 1600 킬로미터야. 제트기가 나는 속도의 두 배지.”

”와, 정말 대단하네요. 근데 그걸 전혀 못 느끼고 사는 우리도 대단하고요.“

”그렇지. 근데 공전 속도는 더 대단해. 시속 10만 킬로미터가 넘어. 정말 어마무시하지? 이렇게 어마무시한 활동을 잠시도 쉬지 않고 끊임없이 하면서 생기는 에너지로 수많은 생명체를 먹여 살리는 거야.“

”자전과 공전을 통해 생기는 에너지가 그렇게 대단한 줄 몰랐네요.“

”그렇다고 태양계는 가만히 있느냐 하면 그게 아니야. 태양계는 또 은하계를 중심으로 더 빨리 돌아요. 그리고 최근 연구에 의하면, 우리 은하계도 은하계의 중심을 따라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빠르게 돌고 있다는 거야.”

“와, 이거 진짜 돌아버리겠네요! 하하하!”

“그러게 말이야. 그렇다고 진짜로 돌지는 마, 히히히!”

“이 거대한 우주에 돌지 않는 게 하나도 없으니, 끝없이 빙글빙글 돌면서 춤을 추는 게 우주의 참모습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렇지. 그게 바로 무위의 춤이지. 그러니까 이 우주 안에 고정불변의 존재란 있을 수가 없어.”

“지구도 우주도 죽을힘을 다해 빙글빙글 돌면서 모든 걸 이루어낸다고 생각하니, 왠지 어지럽고 혼란스러우면서도 한없이 숙연해지네요. 그리고 이 우주 안에 공짜는 절대로 없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럼, 그럼! 그래서 사람도 무얼 하든지 성실해야 하는 거야. 그래서 중용에서도 성자천지도(誠者天之道)라는 말을 하고 있지. 뭐, 그렇다고 해서 심각해질 필요는 없고, 모든 걸 유희하듯 즐겁게, 히히!”

“갑자기 지금 이 순간에도 죽을힘을 다해서 일하고 있을 지구 어머니에게 고개 숙여 감사를 드리고 싶네요. 그리고 지구 어머니와 우리네 어머니가 알고 보면 똑같은 존재라는 생각도 드네요.”

“이게 바로 노자가 말한 무위자연의 본질이야. 쥐뿔도 모르면서 어디서 '아무것도 함이 없이 모든 걸 다 이루느니 어쩌느니---' 하고 함부로 까불고들 있어, 흠 흠!”

“아, 평생 고생만 하시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너무나 보고 싶어요, 흑-흑!”

후배가 갑자기 고개를 푹 숙이고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꼈다. 그러자 굵은 눈물방울이 낙숫물처럼 방바닥에 뚝뚝 떨어졌다.

“야, 넌 또 왜, 그런 말을 해서, 나까지---.”

불효자 선두 대열에서 결코 빠질 수 없는 놀자도 엉겁결에 따라 흐느꼈다. 그 바람에 초로의 두 남자가 새해 벽두부터 참회의 눈물을 흘리며, 이 세상을 살다 간 모든 어머니들에게 감사를 표하였다.

“형님, 기쁜 소식이 있어요! 그러고 보니 내가 요즘 드디어 지구 돌아가는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된 거 같아요.”

이윽고 울음을 그친 후배가 눈물을 닦으며 밝게 말했다.

“아니, 그건 또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놀자도 감정을 추스른 뒤 평소처럼 무뚝뚝하게 대꾸했다.

“밤마다 자려고 누우면, 양쪽 귀에서 삐- 하는 소리가 마치 외계인하고 교신하는 것처럼 들려요.”

“임마! 그건 이명 시초야. 빨리 병원에 가봐.”

“아, 그런가요? 난 또--- 하하하!”

“이런 미련퉁이 같으니, 히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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