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 예찬
놀자와 후배, 두 무명 시인은 옥탑방에서 오후 내내 빈둥거리며 정담을 이어갔다. 정신세계가 어슷비슷한 두 사람은 수십 년을 만나 오면서도, 단 한 번도 다투거나 틀어진 적이 없었다. 그래서 어떨 때는 <덤 엔 더머> 같았고, 어떨 때는 그동안 만나고 헤어진 적이 전혀 없는 그런 사이 같기도 했다.
“형님, 그래도 우리가 문단에서 꽤 유명하지요?”
“암만! 이름이 없는 것으로 유명하지.”
“이름이 없는데도 어떻게 유명해질 수가 있지요?”
“그러게 말이야. 나도 그렇게 유명해지고 싶지는 않은데 말이야, 히히!”
사실 두 사람은 문단 주변에서 시로 유명한 게 아니라, 오래 활동하고 있는 무명 시인으로 유명했다. ‘사람은 무골호인으로 더없이 좋으나, 시는 거기에 한참 못 미친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두 사람은 열심히 시를 썼다.
“형님, 형님 시 중에서 제일 절창으로 알려진 <원추리꽃> 좀 읊어주세요.”
“허허, 남부끄럽게 절창은 무슨 절창. 그 얘기는 왜 또 꺼내고 지랄이냐?”
“새해가 되니 그 시를 듣고 마음 좀 다잡으려고요.”
“그래? 거 참 기특하다 야. 그럼 한번 읊어볼게.”
놀자는 잠시 목소리를 가다듬은 뒤, 짧은 자작시를 큰소리로 읊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 산다는 건 참으로 고귀한 일
꿈은 멀리 원-추-리! 하게 / 삶은 가까이 컨-츄-리! 하게
“와, 들을수록 감동적이어서 막 소름이 돋네요.”
“예끼! 웃자고 하는 소리인 줄 나도 다 알아. 그만 좀 놀려라.”
“진심이에요. 근데 형님, 세상 사람들은 왜 우리 시를 몰라주는 걸까요?”
후배가 가슴을 가볍게 치며 답답하다는 듯이 물었다.
“그걸 진짜로 몰라서 묻는 거야? 아니면 알면서 그냥 하소연하는 거야?”
놀자가 시큰둥하게 대꾸했다.
“바보 같이 들리겠지만, 진짜로 몰라서 묻는 거요.”
“이런 등신 같으니라고. 내가 그 이유를 알려줄까?”
“제발 좀 알려 주시우.”
“세상이 우리 시를 알아주지 않는 건 말이야. 절대로 우리 시가 시시한 탓도, 세상 사람들 눈이 이상한 탓도 아니야.”
“그럼 뭐 때문이우?”
“우리가 세상보다 훨씬 더 높은 곳에 있기 때문이야.”
“얼-쑤!”
“그래서 먼 훗날 아주 크게 각광을 받거나, 아니면 이대로 영영 어둠 속으로 사라지거나, 둘 중의 하나야, 히히!”
“정말 그렇지요?”
“그럼, 그럼!”
“오, 이 광활한 우주에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시를, 그것도 조만간 어둠 속으로 사라질 시를 쓴다는 것은 참으로 거룩한 일이로다!”
“거룩하긴, 개뿔!”
“하하하!”
“히히히!”
놀자는 새해맞이 기념으로 특별히 토마토를 듬뿍 갈아 넣고, 떡국 떡도 넣고, 굴과 야채도 적당히 넣고 해서, 떡라면을 맛있게 끓여냈다.
“와, 진짜 맛있네요! 이게 그 유명한 놀자 표 스파게티 라면이군요.”
후배가 진심으로 감탄하며 엄지 척을 하였다.
“응. 뭐 별것도 아니야. 근데 이게 벌써 그렇게 유명해졌냐?”
놀자가 말과는 달리 어깨에 힘을 주며 으스댔다.
“그럼요. 몇몇 분들이 극찬하더라고요.”
“흠 흠, 영광인 줄 알아. 아주 특별한 날에만 끓이는 특식이야.”
“캄솨합니다!”
“근데 라면이 우리 한국인들의 소울 푸드라고 하는데, 왜 그런 줄 알아?”
“그야 남녀노소 누구나 출출할 때 간단히 끓여 먹을 수 있는 데다, 값도 싸고, 또 구수하고 얼큰해서 우리 입맛에 딱 맞기 때문이겠지요. 아기공룡 둘리에 나오는 <라면 송>처럼 말이지요.”
“그렇긴 하다만, 더 큰 이유가 있지.”
“그게 뭔데요?”
“라면을 보글보글 끓여서 막 뜨거운 김을 쐬며 먹으려고 할 때 보면 말이야, 그 소담하고 꼬불꼬불한 면발들이 정겹고 반가우면서도 왠지 헛헛하고 안쓰러운 게, 마치 우리네 사연 많고 굴곡 많은 삶처럼 느껴지지 않냐?”
“아, 그게 또 그런가요?”
“응. 그리고 국물 맛은 또 어떻고? 그 부박하면서도 나름 내공이 깊어서 무시하기 어려운 유혹의 힘을 지닌 국물을 한 모금 마시노라면, 어디서도 위로받지 못한 채 고생만 하며 살아온 싸구려 인생의 슬픔이 잠시나마 따뜻하게 위로를 받는 것 같지 않냐?”
“------!”
“그래서 그 뜨겁고 매끄러운 면발을 후후 불면서 입에 넣고 목구멍으로 넘길라치면, 문득 가슴 깊은 곳에서 뭔가 서러움 같기도 하고 그리움 같기도 한 것이 울컥-! 하고 올라오면서, 눈시울이 조금쯤은 뜨거워지지 않냐?”
“와, 듣고 보니 정말 그런 것 같네요. 공감, 공감!”
“그래서 라면이 우리나라 사람들의 소울 푸드가 된 거야.”
“이거야말로 대단한 라면 예찬이네요. 대단해요! 어쨌거나 소울은 괜히 쓸쓸하고 고단하고 애달픈 것 같아요.”
“그러니까 중생이지, 등신!”
“하하하!”
“히히히!”
두 사람은 한동안 묵언 수행자들처럼 말없이 겸허하게 라면을 먹었다. 한바탕 라면 예찬을 늘어놓고 난 뒤라서 그런지 맛이 유난히 좋았다.
“우리도 이제 똥차 다 됐다, 야!”
라면을 다 먹고 나서 차를 마시던 놀자가 문득 말했다.
“왜요? 어디 몸이 안 좋으세요?”
얼마 전에 대장암 수술을 했다는 후배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여기저기 조금씩 망가져 가는 몸도 몸이지만, 과거 운동권에서 민주화운동을 주도했던 인간들이 요새 하는 짓거리들을 보면, 영락없이 군사독재 시절의 꼰대들하고 아주 판박이로 똑같아.”
“세월이 가면 다 그렇게 부패하고 타락하고 변하는 거지요, 뭐.”
“허허! 아무리 그렇다 해도, 뒤에서 묵묵히 희생한 사람들을 생각해서라도 최소한의 염치는 있어야지. 이제 보아하니 다 일신의 영달을 위해서 헬스를 한 거 같아. 참신한 후배들에게 물려주고 빨리 물러나야 할 텐데, 쉽게 물러나지 않을 거야.”
“맞아요. 하지만 민주화운동을 싸잡아서 헬스라고 매도하다니, 너무 심한 거 아니우?”
“그런 인간들은 욕을 먹어도 싸지, 히히! 도덕경 4장의 얘기가 바로 그런 얘기야. 도충이용지 혹불영(道沖而用之 或不盈)이라. 길은 비어있어야 마차도 다니고 사람도 다닐 수 있으니, 꽉 막히게 하지 마라. 혹시 막히더라도 빨리 치워라. 즉 우리 같은 똥차는 방해하지 말고 빨리빨리 비켜서 후배들에게 길을 터주라는 얘기야.”
“형님, 그 구절은 ‘도는 텅 비어서 아무리 써도 채워지지 않는다.’라는 뜻 아닌가요?”
“대개 그렇게들 해석하지. 하지만 아무리 써도 채워지지 않는다니, 그게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야? 그나마 이치에 맞게 하려면 ‘아무리 써도 고갈되지 않는다.’라고 해야 맞는 거 아니야? 그렇지 않아?”
“도는 ‘텅 빈 충만’ 같은 것이다, 뭐 그런 말이겠지요.”
“텅 빈 충만 좋아하시네, 히히! 도덕경은 불온한 현실을 고발하기 위해서 고도의 계산과 상징과 함축으로 쓴 암호와도 같은 시야. 그런 고차원의 시를 자꾸 평범한 산문으로 해석하려 드는 게 병폐야.”
”물론 시와 산문은 엄연히 다르겠지요.“
”암만! 시는 시로 읽어야 해. 근데 왜 자꾸 한 글자, 한 글자, 분석하려고 들어? 그리고 모르는 부분이나 단어는 그냥 놔두는 게 좋아. 당시에 무슨 뜻으로 쓰였는지도 정확히 모르면서, 억지로 머리를 굴려 해석하려다가 다들 이상한 데로 빠져서 계속 헤매는 거야.”
“그건 그렇지요.”
“그래서 그다음에 이어지는 구절에, 길은 만물을 관리하는 데 으뜸가는 것이니(萬物之宗) 뾰족하게 튀어나와서 위험하거나 망가진 부분이 있으면 말끔하고 평평하게 잘 다듬고 닦아서(挫其銳 解其紛) 관리를 잘하고, 삐까번쩍하게 광나는 마차나 먼지투성이 초라한 수레나 똑같이 평등하게 어울리면서 그 길을 오가도록 하라(和其光 同其塵)고 한 거야. 물론 이 말은 마음의 길을 닦는 데도 해당이 되는 말이지. 노자의 말은 귀에 걸면 귀걸이고, 코에 걸면 코걸이니까, 히히히!”
“아하, 그 당시에 힘없는 백성들은 큰길을 함부로 사용하지 못했나요?”
“당연히 그랬을 거야. 크고 좋은 길은 군사용이나 귀족들의 전용물이어서, 일반 백성들은 함부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엄격하게 관리했을 거야. 그래서 불공평하기도 하고 문제도 많이 생겼을 거야.”.
”저 종로에 있는 피맛길처럼 말이지요?“
”맞아. 그래서 이런 억울함과 불편함과 불공평을 타파하라는 말을 한 거겠지. 모든 길을 공평하게 하라!”
“만일 그게 사실이라면, 위대한 길의 혁명을 설파한 것이라고 할 수 있네요. 와, 역시 노자는 평등사상의 원조라니까요.”
“그런 셈이지. 그리고 그 뒤에 나오는 ‘상제보다 먼저 있었느니 어쩌느니’ 하는 말은 나도 잘 몰라. 아마도 후대의 도사들이 노자를 팔아서 장사하려고 멋대로 가져다 붙인 것 같아.”
두 사람은 한동안 우리 사회의 심각한 불평등과 양극화와 계층 간의 갈등과 자본의 야만적인 횡포에 대해 핏대를 올리며 성토를 하였다. 그러다가 제풀에 나가떨어졌다. 아무리 떠들어봐야 입만 아플 뿐이었다. 그리고 자본주의가 발전하면 할수록 사회가 점점 더 과거의 노예제와 신분제 사회로 가고 있는 작금의 현상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형님, 우리가 어느덧 똥차 신세가 되긴 했지만, 아직은 한참 더 달릴 수 있어요. 아니, 달려야 해요!”
후배가 울분을 가라앉히고 희망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철마는 달리고 싶지만, 길이 막혀서 갈 수가 없네.”
놀자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아니, 우리가 언제는 번듯한 길이 있어서 달렸던가요? 늘 길이 없는 데도 달렸잖아요. 그러니 그런 나약한 말씀 마시고 힘내세요.”
“그려, 고마워! 늦었다고 포기하지 말고, 남들 눈치 보지 말고 우리만의 길을 찾아서, 달릴 수 있을 때까지 열심히 달려보자고!”
놀자도 새롭게 결기를 다졌다.
“형님!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건강이 중요해요. 안 그래요?”
“암만! 그러니까 우리도 지금부터 열심히 헬스를 해보자고. 아, 갑자기 헬스를 하고 싶어서 몸이 근질근질하네.”
“아니, 뜬금없이 무슨 헬스 타령을 하고 그래요?”
“거 뭐시냐, 운동권 인사들이 잘하는 그런 거 있잖아.”
“아, 일신의 영달에 그렇게 좋다는 그 헬스 말이요?”
“응. 어디 그런 물 좋은 헬스장 좀 있는지 알아봐.”
“아이고 형님, 그런 게 우리한테까지 올까요? 하하하!”
“그렇겠지? 히히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