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던 히말라야의 추억
기온이 영하 20도 가까이 떨어지면서 오랜만에 강추위가 엄습하였다.
새벽에 놀자는 평소처럼 일찍 잠이 깼지만, 일어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이불속에서 계속 꼼지락거렸다. 구식 옥탑방은 어쩔 수 없는 구식 옥탑방이었다. 바닥은 전기담요를 깔아서 따뜻했지만, 윗풍이 어찌나 센지 머리가 써늘하고, 코가 다 매콤하였다.
문득 한겨울이면 머리맡에 놓아둔 대접의 물이 꽁꽁 얼고, 앉은뱅이책상 위의 잉크병이 얼어서 터지고, 방안에서도 말을 하면 입김이 허옇게 서리고, 세수한 뒤 문고리를 잡으면 손가락이 쩍쩍 달라붙던 어린 시절의 추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그땐 진짜 추웠었지.”
“그래, 시베리아가 따로 없었지.”
“그리고 다들 아궁이에 나무로 군불을 때서 난방을 했기 때문에, 초저녁에는 방바닥이 절절 끓어서 찜질을 하기도 했지만, 새벽녘이면 구들이 식어서 밑자리가 썰렁했었지.”
“그럴 땐 잠에서 깨어 몸과 마음이 온통 오싹해지는 게 정말 싫었지.”
“새벽이면 꼭 어머니가 일어나서 불을 때러 나가셨는데, 그때 한 번이라도 도와드리지 못한 게 두고두고 후회가 되었지---.”
놀자는 마치 옆자리의 친구와 얘기를 하듯 계속 중얼거렸다.
“그리고 군불 때문에 집집마다 안방 아랫목이 새카맣게 탔었지.”
“그랬었지. 우린 새카맣게 탄 방에서 놀고, 먹고, 공부하고 그랬지.”
“그러고 보면 우리가 원조 방탄소년들이라니까.”
“맞아, 맞아!”
“오늘날 방탄소년단이 저렇게 세계적으로 성공한 것도 다 우리가 있었기 때문이야. 그렇지 않아?”
“암만! 우리가 미리미리 길을 잘 닦아 놓은 덕분이지.”
“어쨌거나 그 친구들 정말 대단한 친구들이야.”
“그럼, 그럼! 불세출의 영웅들이지.”
“절대 우리 은공을 잊지 마, 하하하!”
“아니, 제발 잊고 더 열심히 해줘, 히히히!”
이불속에서 한참을 뭉그적거리며 옛 추억에 빠져있다 보니 문득 대변이 마려웠다. 놀자는 화장실을 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밖으로 나가 좁은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다. 변기 안의 물이 완전히 꽁꽁 얼어붙어 있었던 것이다.
“허허, 이런 큰 변이 있나!”
소변이라면 어떻게 해결해 보겠는데, 대변이라 처리가 불가능했다. 그렇다고 모처럼만에 예쁜 눈이 소복소복 쌓인 옥상에다 똥을 누는 건 정말이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도 시선이려니와, 그건 하늘과 땅에 대한 심한 모독이었다.
“아침마다 늘 태양을 향해 기도하는 자리에다 그럴 수는 없지.”
더군다나 대시인 김수영이 다시 살아서 돌아온다면, 병든 세상을 향해 눈 위에다 기침 정도가 아니라 새빨간 피라도 왈칵! 쏟았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더욱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이를 대체 어쩐다---.”
놀자는 재빨리 머리를 굴린 뒤, 웃을 두툼하게 챙겨 입고 길을 나섰다. 언젠가 변기가 고장이 났을 때처럼, 가까운 지하철 역사 안의 화장실을 이용하기 위함이었다. 그곳은 걸어서 채 10분도 걸리지 않는 곳에 있었다.
“그래도 역세권이라 천만다행이야.”
“암만! 옥탑방이라고 다 같은 옥탑방이 아니야, 히히!”
집 밖으로 나오자 매서운 추위가 사납게 달려들었다. 역시나 보통 강추위가 아니었다. 더군다나 간밤에 내린 눈이 수북이 쌓인 데다 꽝꽝 얼어서 길도 몹시 미끄러웠다. 자칫 한 발짝이라도 삐끗했다가는 낙상하기 십상이었다.
놀자는 똥 마려운 걸 간신히 참으며, 허리를 잔뜩 굽히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조심조심 비탈길을 내려가는데, 마음은 다급하고 몸은 전혀 안 따라주고, 참으로 난감하였다. 자신이 생각해도 한심하고 기가 막혀서 그만 헛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문득 언젠가 이와 똑같은 상황을 경험했던 것 같은 기시감이 강하게 엄습하였다.
“그게 그러니까, 언제 적 일이었던가---.”
놀자는 계속 그 생각만을 하면서 비탈길을 겨우 내려와 대로변을 조금 걸어서 지하철역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볼 일을 시원하게 보고 물을 내리는데, 갑자기 생각이 났다.
“그래, 안나푸르나!”
놀자는 대단한 발견이라도 한 것처럼 소리쳤다.
아주 오래 전의 일이었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글 쓰는 선배 하나가 모 방송사의 후원으로 팀을 꾸려서 히말라야로 본격 취재를 간다는 소문이 돌았다. 네팔의 수도인 카트만두에 도착해서 시내 곳곳을 둘러본 뒤, 제2의 도시이자 히말라야 등반의 거점인 포카라를 거쳐서, 안나푸르나까지 왕복 트레킹을 하는 환상의 코스였다.
“헉! 이럴 수가!”
그 얘기를 들은 놀자는 흥분 해서 마구 날뛰었다. ‘그래, 모든 거 다 팽개치고 히말라야로 가자! 지금 못 가면 영영 못 갈지도 모른다! 어떻게 해서라도 이번에 꼭 가고야 말리라---!’
당시는 전문 산악 팀이 아니고서는 히말라야에 가기가 불가능했기 때문에, 놀자가 그렇게 흥분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날부터 놀자는 선배 뒤를 그림자처럼 졸졸 따라다니면서 끈질기게 졸라댔다. 이미 멤버 선발이 끝났다고 해도 막무가내였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몇 날 며칠을 졸라대자, 마침내 두 손 두 발 다 든 선배는 그를 기록담당 겸 장비 관리자로 끼워주었다. 대신 경비 절감을 위해 포터 한 명의 역할까지 겸하는 조건이었다.
“걱정 마세요, 선배! 그 정도야 식은 죽 먹기지요, 히히히!”
히말라야만 갈 수 있다면 놀자는 그보다 훨씬 더한 일도 기꺼이 감내할 자신이 있었다. 육군 땅개로 철책선 인근 부대에 근무하면서, 3년간 무거운 짐을 지고 높은 산꼭대기를 수없이 오르내리며 갈고닦은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할 때가 드디어 찾아온 것이었다. 갑자기 지긋지긋하던 그때 그 시절이 그리워지면서, 국방부에 감사한 마음까지 들 정도였다.
이렇게 해서, 놀자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2주간의 히말라야 트레킹이 시작되었다.
물론 충격적인 일들도 많이 있었다. 우선 카트만두 공항을 나오자마자 우르르 달려드는 택시기사들의 모습에 놀자는 경악 하였다. 행색이 남루해도 너무 남루했던 것이다. 그리고 시내로 들어가는 길 좌우에 펼쳐진 사람들 사는 모습에 그만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거지꼴도 그런 거지꼴이 없었다.
“아이고, 세상에나---.”
수도 카트만두의 모습 또한 마찬가지였다. 많은 사람들이 집이 없거나, 집이라고 할 수도 없는 곳에서 그렇게 가난하게 살고 있었던 것이다. 가난이라는 말조차도 어색하게 여겨질 만큼 궁색해 보였다. 처음에 놀자는 자신의 눈을 의심하였다. 아무리 빈궁해도 사람들이 이렇게 살고 있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제아무리 눈을 비비고 봐도 그건 엄연한 현실이었다.
“저들이 저렇게 사는 모습을 보고서도 태연히 웃고 떠들며 트레킹을 할 수 있을까? 우리가 너무 뻔뻔하고 사치스러운 건 아닌가?”
한창 감성이 풍부하고 정의감에 넘치던 놀자는 마치 자기에게 책임이라도 있는 것처럼, 죄인이 된 심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자신이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서, 그저 마음속으로 그들의 신에게 공손히 기도하며 거리를 돌아다녔다.
“오, 나마스떼, 나마스떼, 나마스떼---.”
그 후 며칠 동안 놀자는 트레킹 준비를 하느라 정신없이 보냈다. 현지에서 필요한 물품들을 구입하는 것도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거리 풍경에도 익숙해졌다. 그래서 처음의 무거웠던 마음에서 벗어나 홀가분하게 출발할 수 있었다.
트레킹은 너무 좋았다. 오, 그토록 동경하던 히말라야! 눈이 부시도록 하얗게 빛나는 안나푸르나 봉우리가 손에 잡힐 것만 같은 거리에서 숨바꼭질하듯 숨었다 나타났다 하는 트레킹 내내, 놀자는 꼭 꿈속을 걷는 것만 같았다. 등에 짊어진 무거운 짐도 새털처럼 가벼웠다. 마치 무중력 상태처럼 무게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무슨 복으로 여기까지 왔을까! 놀자는 행복감으로 가슴이 미어져 수시로 눈물을 흘렸다. 첫 해외여행이 하필이면 남들이 마지막에 간다는 히말라야였으니 더 말해 무엇하랴. (하지만 나중에 돌이켜보니, 그건 결코 행운이 아니었다. 그 이후로, 세계적으로 이름난 곳을 가 봐도 그는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첫 경험의 충격이 너무나 크고 강렬해서, 불행하게도 그만 여행의 성감대를 잃어버렸던 것이다.)
트레킹을 시작한 지 여러 날 째 되던 어느 오후, 길을 걷는데 갑자기 똥이 마려웠다. 여행의 흥분과 긴장으로 일정하던 배변 주기가 흐트러졌던 것이다. 포터까지 합해서 열댓 명이 대열을 지어 부지런히 걷는데 쉬자고 얘기하는 것도 민망한 일이었다.
그래서 꾹 참고 걷자니 몹시 불편하고 고통스러웠다. 조금만 더 걸으면 휴식 시간이 될 것이므로, 어떻게든 그때까지만 견뎌보자는 심산이었다. 그날따라 정상에 날씨가 흐린 지 안나푸르나 여신은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윽고 그토록 고대하던 휴식 시간이 되자, 놀자는 재빨리 짐을 벗어놓고 일행에서 벗어나 길 아래 비탈로 내려갔다. 비탈은 경사가 심한 데다 돌과 눈이 뒤섞여 있어서 매우 미끄러웠다. 허리를 잔뜩 굽히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조심조심 내려가는데, 마음은 다급하고 몸은 전혀 안 따라주고, 참으로 난감하였다. 그래도 조금 평평한 곳을 겨우 찾아서 쭈그리고 앉아 똥을 싸고 나니, 깊은 안도감과 함께 전신에 맥이 탁 풀렸다.
바로 그때였다! 구름에 가려서 보이지 않던 안나푸르나 여신의 얼굴이 바로 눈앞에서 너무도 선명하게 불쑥 나타나는 것이었다!
오오, 저토록 영롱하고도 초절한 아름다움이라니! 온몸에 왕 소름이 돋으며 어떤 알 수 없는 법열에 휩싸인 놀자는 그만 엉엉! 울고 말았다. 꼭 대자연의 속살 깊이 숨어있는 신비로운 영혼의 실체를 본 것 같았다. 짧은 순간이나마 모든 존재의 의문이 다 풀려버린 듯, 더없이 충만하면서도 한없이 허탈한 그런 느낌마저 들었다.
“도가도 비상도! 천장지구! 은산 철벽! 체로 금풍! 니르바나! 색즉시공 공즉시색! 옴 마니 파드메 훔! 쑤냐! 텅 빈 충만! 아제아제 바라아제! 수리수리 마하수리! 갓 이즈 러브! 러브 이즈 갓! 너 자신을 알라! 유레카! 차라투스트라! 알라 후 아크바르! 빅뱅! 블랙홀! 화이트홀!”
그의 입에서 온갖 말과 주문들이 방언처럼 흘러나왔다. 꼭 시간이 허공 속으로 사라진 것 같았다.
영원히 지속될 것만 같던 지복의 순간은 그러나 금방 끝나고 말았다. 길 위에서 자신을 부르는 선배의 목소리에 문득 정신을 차린 놀자는 비탈을 기어올라 대열에 합류하였다. 그리고 다시 길을 떠났다.
그 이후,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까지 갔다가 되돌아오는 길은 마치 잘 아는 산 능선을 걷는 것처럼 편안했다. 처음 대하는 풍광과 사람 사는 모습과 장엄한 산세 등, 모든 게 자신과 하나가 된 듯 친밀하고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트레킹을 하는 내내 한 생각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앞으로 이 세상을 살면서, 나는 이와 같은 지복의 순간을 얼마나 더 경험할 수 있을까? 모르긴 몰라도 아마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아등바등하며 힘들게 사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부질없는 희망과 덧없는 기쁨과 막연한 소망만을 지닌 채 살아가야 한다면, 하루하루가 얼마나 따분하고 지루할까---.’
그랬다! 그곳을 다녀온 이후로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놀자는 지금껏 단 한 번도 그와 같은 감동을 경험하지 못했다. 감동은커녕 온갖 굴욕과 자기기만과 환멸의 연속인 그의 삶은 무거운 짐을 잔뜩 짊어지고 별 볼일 없는 목적지를 향해 걸어가야 하는 지루한 트레킹에 불과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놀자는 좌절 하거나 실망하지 않고 오늘까지 잘 살아왔다.
“사람은 단 한순간의 깨달음이나 사랑만으로도 평생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데, 나도 즐겁게 열심히 살아야지, 히히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