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노숙자의 노래
“어, 어디 갔지?”
화장실을 나온 놀자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누군가를 찾아보았다. 이 시간쯤이면 늘 여기서 마주치던 여인이 하나 있었다.
“성은 노 씨요, 이름은 숙자였는데---.”
놀자는 마치 잘 아는 여자라도 되는 것처럼 중얼거렸다.
그녀는 언제나 커다란 빨간색 비닐 백을 옆에 끼고 대합실 의자에 앉아서, 때가 잔뜩 낀 얼굴과 수세미처럼 헝클어진 머리를 하고, 무심하게 지나치는 행인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나이는 대략 40대 후반으로 보였는데, 실성한 것도 같고, 그렇지 않은 것도 같았다. 세상살이에 찌들 대로 찌든 얼굴에는 늘 분노와 절망이 뒤섞인 가벼운 냉소가 어려 있었다. 어쨌거나 그녀는 정신없이 바쁜 출근길 시민들 틈에서 유일하게 자유로운 사람이었다.
가끔은 아침부터 술에 취해 울면서 <어차피 떠난 사람> 노래를 아주 구슬프게 부르곤 하였다. 그럴 때마다 놀자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노래를 유심히 듣곤 했다. 남의 눈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어떤 과장이나 꾸밈도 없이 부르는 그녀의 노래는 썩 괜찮은 편이었다. 가슴속에서 온갖 종류의 슬픔이 썩어서 자연스럽게 터져 나오는 듯한, 실연의 아픔과 완벽하게 하나가 된 노래는 그의 마음을 애절하게 파고들었다.
무슨 가슴 아픈 사연이 있기에 저리도 절절한 것일까. 만일 생활 형편도 좋고 운도 좀 따라주었더라면, 요즘 유행하는 트로트 경연 프로그램 같은 데 나가서 큰 인기를 끌 수도 있었을 텐데, 그리고 외국에서는 노숙자 생활을 하다가 우연한 기회에 실력을 검증받아 스타가 되는 일도 종종 있다는데, 혹시 그런 행운이 찾아와 줄 수 있을까---. 하지만 그녀가 아무리 구슬프게 노래를 불러도, 놀자 말고는 아무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놀자는 대합실 여기저기를 둘러보며 그 여인을 찾았다.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출근을 서두르는 사람들의 발걸음만 바쁘게 오갈 뿐, 잡다한 물건들로 꽉 찬 가방 위에 때가 꼬질꼬질한 곰돌이 인형을 꼭 챙겨가지고 다니던 그 여인은 오늘따라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가 않았다.
놀자는 집으로 돌아오면서 그 여인이 걱정되어 계속 중얼거렸다.
“이 강추위에 혹시 어디 맨바닥에서 자다가 얼어 죽지는 않았을까?”
“만나서 따뜻한 자판기 커피라도 한 잔 뽑아주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러게 말이야. 커피보다는 따끈한 국밥 한 그릇이 더 나았을 거야.”
“그녀는 어쩌다가 그런 신세가 되었을까? 누군들 좋아서 그러겠냐마는---.”
“노숙자들 중에는, 전에 큰 회사 사장이나 임원이었던 사람들도 있더라니까.”
“그래, 사람 팔자는 모르는 거야. 너라고 그렇게 되지 말란 법이 있어?”
“나도 아직은 용케 그런 신세를 면했지만, 까딱 잘못하면 바로 직행이지 뭐.”
“천지는 인자하지 않아서, 만물을 짚으로 만든 개처럼 대한다는 말 알지?”
“노자 얘기로군. 꾀죄죄한 몰골을 한 그 여인이 그렇게 보인다는 거지?”
“응. 그래서 말인데, 만일 내가 그녀를 데려다가 같이 좀 지내보면 어떨까?”
“예끼! 말 같지도 않은 소리 하지도 마. 지금 제정신으로 하는 소리야?”
“왜? 맨 날 주둥이로만 자비를 떠들어대다가, 막상 실천하려니까 겁나냐?”
“그게 아니라, 진짜로 그랬다가는 당장 수많은 여성단체들로부터 성추행이나 성폭행 범인으로 몰려서 생매장돼, 임마!”
“아차, 그렇지. 그걸 깜빡했네. 요즘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데, 정말로 큰일 날 뻔했구먼, 히히히!”
“아무 사심 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돕다가 그런 누명을 쓰면 너무 억울하지.”
“그래. 아무리 돕고 싶어도, 분수와 형편에 맞게 정도껏 해야 하는 거야.”
“비겁한 놈! 그래서 큰 인물이 못 되는 거야. 그러고도 늬가 노자 추종자냐?”
“허허, 보아하니 문둥병 처녀와 동거한 경허 선사 흉내를 내려는 거로 구만.”
“그래. 나도 꼭 그렇게 한번 해보고 싶다, 야! 하지만 내공이 쥐뿔도 없는 주제에 어떻게 감히 그럴 수 있겠냐.”
“암만! 늬 꼬라지를 알아야지 하하하!”
“내가 하는 일이 늘 그렇지 뭐, 히히히!”
옥탑방으로 올라온 놀자는 따뜻한 이불속으로 들어가서 빈둥거리며 <어차피 떠난 사람> 노래를 반복해서 들었다. 들을수록 괜스레 눈물이 났다. 마치 최근에 실연이라도 당한 것처럼!
유튜브에 많은 가수들이 부른 노래가 올라와 있었지만, 그중 김 연자가 부른 게 최고였다. 한동안 이 노래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 같은 예감이 들면서, 이제는 기억도 아련한 옛 일들이 떠올랐다. 짧고 달콤하면서도 살벌했던 연애와 함께, 오래전에 그의 곁을 떠나간 세 여인에 대한 추억들이---.
첫 번째 여인은 모 잡지사 기자였다. 놀자가 조그만 신인 문학상을 받았을 때 취재차 만났다가 연인으로 발전한 사이였다.
처음에는 아주 좋았다. 그래서 한동안 늘 붙어 지내다시피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두 사람 사이에 틈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여성학에 관심이 많았고, 앞으로 그쪽 방면으로 나아가려고 했다. 하지만 놀자는 그런 학문이 존재하는지조차 몰랐다. 그러던 어느 날, 여성 인권문제로 크게 다툰 끝에 그녀는 놀자의 뺨을 한 대 세게 때리고는 떠났다. 여성에 대한 이해가 너무 부족하고, 가부장적인 태도가 몸에 밴 데다, 섹스만 밝힌다는 게 이유였다. 떠나면서, 자기보다 훨씬 더 좋은 여자를 만나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놀자는 잠시 우울증에 빠졌다가 이내 툭툭 털고 일어났다. 마치 그녀가 떠날 것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는 듯이. 들리는 말에 의하면, 그녀는 지금 잘 나가는 여성학 학자로 활동하고 있다고 했다. 어쨌거나 참 잘된 일이었다.
두 번째 여인은 운동권 출신 시민 활동가였다. 어느 철거민 대책 농성장에서 만나 의기투합해서 함께 투쟁하다가 가까워져 연인으로 발전한 사이였다.
처음에는 너무 좋았다. 그래서 몇 달간 함께 동거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두 사람 사이에 틈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정치에 지나치게 관심이 많았고, 앞으로 그쪽 방면으로 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놀자는 사회정의에는 관심이 많았지만 정치라면 딱 질색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정치 문제로 크게 다툰 끝에 그녀는 놀자의 뺨을 한 대 세게 때리고는 떠났다. 혁명정신이 너무 부족하고, 본심을 알 수 없는 회색분자인 데다, 섹스만 밝힌다는 게 이유였다. 떠나면서, 자기보다 훨씬 더 예쁜 여자를 만나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이번에도 놀자는 잠시 우울증에 빠졌다가 이내 툭툭 털고 일어났다. 마치 그녀가 떠날 것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는 듯이. 들리는 말에 의하면, 그녀는 지금 모 정당의 잘 나가는 간부로 활동하고 있다고 했다. 어쨌거나 참 잘된 일이었다.
세 번째 여인은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어느 글쓰기 강좌에서 강사와 수강생으로 만나 매번 마지막까지 함께 술을 마시다가 가까워져 연인으로 발전한 사이였다.
처음에는 정말 좋았다. 그래서 일 년 가까이나 진하게 연애를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두 사람 사이에 틈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아파트와 부동산에 관심이 많았고, 결혼 후에는 반드시 강남에서 살아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놀자는 그런 거라면 딱 질색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부동산 투기 문제로 크게 다툰 끝에 그녀는 놀자의 뺨을 한 대 세게 때리고는 떠났다. 이 험난한 세상을 살기에는 너무 무능하고 게으른 데다, 현실감이 턱없이 부족하고, 섹스만 밝힌다는 게 이유였다. 떠나면서, 자기보다 훨씬 더 훌륭한 여자를 만나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이번에는 전보다 조금 더 깊은 우울증에 빠졌지만 그래도 이내 툭툭 털고 일어났다. 마치 그녀가 떠날 것을 처음부터 잘 알고 있었다는 듯이. 들리는 말에 의하면, 그녀는 강남에 아파트가 몇 채나 되고, 유명한 돼지엄마가 되어 아이 둘을 다 의대에 보냈다고 했다. 어쨌거나 참 잘된 일이었다.
“내 싸다구만 때리고 떠나면, 여자들 인생이 다들 술술 잘 풀리네, 히히!”
놀자는 과거를 회상하며 히죽거렸다. 마치 자기가 그 여자들을 크게 도와줘서 잘되기라도 한 듯이 의기양양해했다.
“그래도 나하고 헤어진 뒤에 잘못된 것보다는 잘된 것이 백 번, 천 번 낫지 뭐. 안 그래?”
“암만! 내가 그녀들에게 반면교사 역할은 확실하게 한 셈이지.”
“그나저나 도덕경 5장에 나오는 그 유명한 ‘천지는 인자하지 않다(天地不仁)’는 말을 어떻게 해석하는 게 좋을까?”
“사실 천지는 인격체가 아니기 때문에, 인자하냐 아니냐 하고 거론하는 자체가 맞지 않는 거 같아. 그건 마치 하늘과 땅이 사람처럼 말을 하느냐 못하느냐 하고 논하는 것과도 같지.”
“그건 그래. 그래서 여기서 불인이라는 말은 인자하지 않다는 뜻이 아니고, 몸의 어느 부분에 감각신경이나 운동신경이 마비된 걸 지칭하는 한의학 용어로 보는 게 자연스러워. 전에 내가 한의학에 관심이 많아서 한의학의 고전인 <황제내경>을 읽어봤는데, 옛날부터 그렇게 사용했다더군.”
“아하, 그러니까 천지는 만물과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신경 통로가 없어서, 마치 짚으로 만든 허수아비 대하듯 이래라저래라 말을 하지 않는다는 얘기네. 묵묵히 자기 할 일만 할 뿐.”
“그렇지. 그러니까 인간이 하늘에 대고 아무리 빌고 애원해 봐야 아무 소용도 없다는 거지. 인간 세상의 일은 인간 스스로 해결을 해야지.”
“이 지구 상에서 인간이 모두 사라진다면, 과연 지구가 이를 가슴 아파하고 안타까워하고 애도하고 그럴까?”
“아니야. 전혀 그렇지 않을 거야. 인간이 사라지든 말든 지구는 제 갈 길을 묵묵히 갈 거야.”
“그래, 그게 바로 천지불인의 참 뜻일 거야.”
“사실 천지가 이미 우리에게 넘치도록 주었는데 뭘 더 바래? 그런다고 더 줄 것 같아?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소리. 받은 걸 제대로 소화도 못 시키면서, 더 바라는 게 어리석은 짓이지.”
“맞아, 맞아! 그래서 내가 성경에서 제일 좋아하는 구절이 바로 ‘내 잔이 언제나 넘치나이다!’ 란 구절이야, 히히!”
“허허, 이런 못 말리는 술꾼 같으니! 천지는 그렇다 치고 성인들은 또 왜 그래? 그들도 똑같이 신경이 마비된 거야? 그래서 백성들을 짚으로 만든 허수아비 대하듯 말이 없다는 거야?”
“마비된 게 아니고, 성인들도 그처럼 사사로운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묵묵히 할 일만 한다는 얘기지. 백성들의 소리를 일일이 다 들어주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고, 아무 일도 못하겠지. 그래서 그다음 구절이 참 재미있어. 천지 사이는 절구통과도 같고 피리와도 같아서, 텅 비어있는 것 같지만 절대 구부러지지 않고, 움직일수록 많은 것이 나온다네.”
“천지 사이가 절구통 같고 피리 같다니, 도대체 그게 무슨 뜻이야?”
“자고로 이 세상은 참으로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곳이라서, 조금만 찧어도 소문이 절구통에서 곡식이 밖으로 튀어나가는 것 같고, 조금만 불어도 피리소리처럼 커져서 멀리 퍼져나간다는 거지.”
“아하, 그러니까 사람들이 늘 이상한 소문과 풍문과 험담을 계속 확대 재생산해서 찧고 까불고 나발을 부는 곳이 세상이니, 특히나 정책을 집행하는 위정자들은 천지나 성인들이 말없이 맡은 바 일을 훌륭하게 수행했던 것처럼, 언행을 각별히 조심해라 그런 말이구나.”
“응. 그래서 마지막 구절의 결론인즉슨, 고위층에 있는 사람들이 말이 많으면 자주 궁지에 몰리고 낭패를 보기 쉬우니, 중요한 말일수록 가슴속에 깊이 간직하라, 뭐 그런 얘기지.”
“지금 우리나라 위정자들에게 꼭 맞는 말이네. 그동안 시도 때도 없이 설익은 정책을 발표해서 얼마나 많은 혼란을 자초했어?”
“그러게 말이야. 그나저나 오늘 아침에 노숙자 여인을 핑계로 말을 너무 많이 하는 거 아냐?”
“왜, 아직도 그 숙자 여인이 걱정되고 그리워?”
“예끼 이 사람아, 그런 말 함부로 하지 말아, 허허허!”
“난 또 그리워하는 줄 알았지, 히히히!”
혼자 놀기의 달인인 놀자는 오늘도 이렇게 스스로 얘기를 주고받으며 방바닥을 한가하게 뒹굴면서, 백석 시인의 시에 나오는 ‘그 드물다는 굳고 정갈한 갈매나무’를 아득히 생각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