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자 가라사대(11)

현빈은 과연 누구인가

by 김혁

시골에 사는 친구 하나가 오랜만에 상경하여 놀자를 찾아왔다.

그는 여러 해 전에 서울에서의 고단한 생활을 청산하고 고향 뒷산으로 내려갔다. 거기에다 농막을 한 채 짓고 이런저런 농사를 조금 지으며 <나는 자연인이다>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전원생활을 하고 있다. 말이 좋아 전원생활이지, 사실은 오갈 데 없는 생계형 자연인이었다.

그 친구는 서울에 올라오면 놀자의 옥탑방에 며칠씩 묵으며 그간 쌓인 얘기도 나누고, 또 여기저기 볼 일도 보고 내려가곤 했다. 놀자도 가끔 가슴이 답답하고 울적하면 친구의 시골집에 내려가서 며칠 지내다가 올라오곤 했는데, 일종의 품앗이 모텔인 셈이었다.

“어서 와. 오늘 자네가 올 줄 알고 기다리고 있었지, 히히!”

놀자가 반갑게 맞으며 농을 건넸다.

“내가 올 줄 어떻게 알았어?”

친구는 ‘또 얘가 무슨 생뚱맞은 말을 하려고 저러나?’ 하는 표정을 지으며 대꾸했다.

“간밤에 자네 꿈을 꾸었지.”

“허허, 내가 뭐 그리 대단한 사람이라고 선몽 씩이나 꾸고 난리냐?”

“아 글쎄, 늬가 어쩐 일인지 토실토실한 아기가 돼서 나한테 자꾸만 뽈뽈거리며 기어 오더라고.”

“뭐, 내가 아기가 됐다고? 허허, 그거 대단한 길몽이로구만 .”

“암만! 길몽이지. 반로환동(返老還童)이라는 말도 있듯이, 자네가 드디어 신선이 되려는가 봐.”

“신선은 개뿔! 근데 그 아기 옆에 강아지도 한 마리 있지 않았냐?”

“있었어. 그건 왜 물어?”

“이런 순 진짜 개꿈 같으니, 하하하!”

“아 참, 그런가? 히히히!”


놀자는 친구가 직접 담가서 가져온 된장 고추장 식초 꾸러미를 반갑게 받아 놓고는, 조금 맛을 본 뒤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맛이라고 진심 어린 치사를 한참이나 늘어놓았다. 아닌 게 아니라 최근에 놀자가 먹어본 것 중에서 단연 최고였다.

“그래, 현빈 산장(玄牝 山莊) 안주인께서는 잘 계시고?”

놀자가 친구 부인의 안부를 물었다.

친구가 고향 뒷산 계곡에 조그만 농막을 짓고 초대했을 때, 놀자가 내려가서 고심 끝에 지어준 집 이름이 <현빈 산장>이었다. 도덕경 6장에 나오는 곡신불사 시위현빈(谷神不死 是謂玄牝)이란 구절에서 따온 말이었다. “그럼, 너무 잘 지내서 탈이지. 갈수록 무서운 호랑이가 돼 간다니까.”

“말이야 바른말이지만, 제수씨가 옛날부터 암호랑이 아니었던가? 히히!”

“그야 그랬지만, 그래도 예전에는 순할 때가 있었는데, 이젠 사납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네.”

“그래야 골짜기를 든든하게 지키지.”

“그 골짜기에 뭐 볼 게 있다고? 산이 높기를 하나, 아니면 골이 깊기를 하나.”

“꼭 산이 높아야 명산인가. 자네 같은 신선이 살고 있으면 거기가 명산이지.”

“허허, 나 같이 한심한 생계형 막노동 엉터리 신선도 다 있다든가?”

“암만! 있다마다. 그래서 ‘골짜기의 신은 죽지 않는다.’는 말도 있잖아.”

“그게 무슨 귀신 씨 나락 까먹는 소리야?”

“예전에 집 이름 지을 때 얘기해 준 것 같은데, 벌써 까먹었구먼.”

“그랬던가? 어쨌거나 자네가 볼 품 없는 농막에다 <현빈 산장>이라는 멋진 이름을 지어준 후부터, 마누라에게 큰 변화가 생겼다네.”

“무슨 변화가?”

“다름이 아니라, 전부터 좋아하던 미남 탤런트 현빈을 부쩍 더 좋아하게 됐어. 책임져!”

“시골 생활이라 적적할 텐데, 그거 참 잘된 일이로군, 히히히!”

“잘되긴 개뿔! 밤낮으로 현빈 나오는 드라마만 주야장천 보는 통에 나만 찬밥 신세 구만, 하하하!”


“그런데 요즘 뱃속의 애는 잘 크고 있나?”

친구와 한참 정담을 나누던 놀자가 진지한 표정으로 조용히 물었다.

“응. 근데 얼마 전부터는 더 이상 크지 않고, 몸속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네.”

친구도 정색을 하고 심각한 어조로 얘기를 했다.

“허허, 그것 참! 아무리 생각해도 신기한 일이로세!”

“그러게 말이야. 남들이 들으면 돌아도 단단히 돌았다고 하겠지.”

“벌써 몇 년째 그러고 있는 거야?”

“그러니까 한 5, 6년 돼가지. 나도 이게 무슨 조화인지 모르겠네.”

“몸도 계속 그렇게 무거워?”

“응. 산달이 가까운 임신부처럼 무거워 죽겠어.”

“자고로 옥동자를 낳으려면 산고의 고통이 그만큼 따르는 법이니, 힘들어도 좀 더 참아 봐.”

“옥동자인지 돌덩이인지 몰라도, 빨리 끝나기만 했으면 좋겠어.”

“뭔가 해결의 조짐 같은 게 느껴지는 건 없어?”

“아직 출산 기미가 없어. 언제 끝날지 모르니까 그냥 막막해.”

“출산을 한다니, 뭘 출산한다는 거야?”

“나도 잘은 모르지만, 기운이 단단하게 뭉쳐진 어떤 존재인 것 같아.”

“멀쩡한 초로의 사내가 출산을 한다니 엄청 웃기네, 고생이 많다, 야.”

“하필이면 나한테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다니까.”

“틀림없이 전생에 도력이 아주 높은 도사였나 봐.”

“도사는 개뿔! 이것도 다 팔자소관으로 여겨야지, 별 수 있나.”

“아무튼 엄청 기대된다, 야! 잘 되거든 부디 나를 1대 제자로 받아줘.”

“허허, 이 친구가 또 왜 이래! 제발 사람 좀 놀리지 좀 마.”

“놀리는 거 절대로 아니야. 앞으로 잘 좀 부탁한다.”

두 사람은 엄청난 천기누설이라도 밝히는 양 비밀스럽게 속삭였다.


사연인즉슨 이랬다.

놀자의 친구는 거듭된 사업 실패로 벼랑 끝까지 내몰려서 자포자기를 한 끝에, 어느 날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했다. 그런데 고층 아파트 옥상에 올라가서 아래로 뛰어내리려는 찰나, 하늘의 태양이 갑자기 자신의 몸 안으로 쑥! 들어오는 것이었다. 순간, 온몸이 불덩이처럼 뜨거워지면서, 마음이 더없이 편안해졌다. 그리고 다시 한번 살아봐야겠다는 용기가 강하게 솟구쳤다. 하늘로부터 뭔가 특별한 계시를 받은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그는 그 길로 주변을 정리하고 고향 뒷산으로 내려갔다.

그런데 그날 이후 아랫배에서 미세한 진동이 느껴지더니, 무언가가 자꾸만 꿈틀거리는 것이었다. 혹시 큰 병은 아닌가 하고 병원에 가서 검사를 다 해봤지만, 아무 이상이 없다고 했다. 그리고 호흡이 저절로 깊어지면서 배가 조금씩 불러오더니, 이윽고 주먹만 한 태아가 자라기 시작했다. 실제 태아라기보다는 기운이 뭉친 덩어리였다. 몸도 임신부처럼 무거워졌다. 알고 보니 소위 도가 수련에서 말하는 도태(道胎)였다. 평생 도 닦는 일과는 무관하게 살아온 친구에게 어쩌다 이런 일이 생겼는지 정말 미스터리한 일이었다.


“자네가 살고 있는 현빈 산장은 정말 멋지고 좋은 곳이야. 거기만 가면 마음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어.”

놀자가 새삼스럽게 칭찬을 늘어놓았다.

“고향이니까 그렇지. 다 쓰러져 가는 농막이 좋긴 뭐가 좋아.”

친구는 손사래를 치며 멋쩍게 웃었다.

“정말이야. 나한테는 말 그대로 현빈의 소중한 의미를 깨우쳐주는 곳이야. 그런데 역대 학자들이 현빈(玄牝)에 대해 해석해 놓은 걸 보면 정말 가관이야.”

“어떻게 해석해 놨는데 그래?”

“다들 신령스러운 암컷이니, 우주적 암컷이니 하고 헛소리들을 하고 있어.”

“의미도 모른 채 그냥 글자 풀이만 해 놨다, 이거구만.”

“응. 그래서 대부분 곡신불사 시위현빈(谷神不死 是謂玄牝)을 골짜기의 신 즉 암컷 거시기를 닮은 도는 영원하다, 그래서 이를 신령한 암컷이라고 한다---, 어쩌고저쩌고 해 놨지.”

“뭐, 그렇게 틀린 말도 아니구먼.”

“예끼 이 사람아! 알고 보면 아주 한심하고 저질스러운 해석이야. 현빈이 무슨 뜻인지 모르니까 이런 어처구니없는 사태가 벌어진 거야.”

“그놈의 현빈이 도대체 뭔데 그래?”

“현빈은 현문과 빈호를 줄인 말이야. 내가 전에 한의학의 바이블인 <황제내경>을 읽어봤는데, ‘코는 하늘의 기와 통하니 현문(玄門)이라고 하고, 입은 땅의 기와 통하니 빈호(牝戶)라고 한다. 이 둘을 일러서 현빈(玄牝)이라 한다.’라고 되어 있더라고.”

“아하, 그러니까 코와 입이라는 말이구만. 별것도 아니네.”

“그렇지. 노자 당시의 대학자들은 의학에도 정통한 사람들이었으니까, 어떤 문장을 지을 때 내용에 어울리는 적당한 의학용어를 마음대로 인용해서 넣었지. 그걸 모르고 글자만 풀이하면, 위에서 얘기한 것처럼 우스꽝스러운 해석이 되는 거지.”

“그럼 곡신불사는 무슨 뜻이야?”

“당시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골짜기에 모여 작은 공동체를 이루고 살았으니까, 곡신을 그냥 골짜기 신이라고 번역할 게 아니라, 공동체를 살아 움직이게 하는 정신이라고 해야 이치에 맞지. 골짜기에 무슨 신이 있겠어?”

”그건 그렇지.”

“어쨌거나 개인이든 공동체든 죽지 않고 잘 유지되는 것은, 자유롭고 평화롭게 코로 숨을 쉬고 입으로 밥을 먹기 때문이다, 이런 말씀이지.”

“아하, 그런 뜻이구나. 세상만사 알고 보면 다 먹고살자고 하는 것이니까.”

“그래야 다음 문장이 자연스럽게 해석이 돼. 현빈지문 시위천지근((玄牝之門 是謂天地根)이라. 콧구멍과 입 구멍이야말로 천지의 뿌리가 되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맘 편히 숨 쉬고, 굶지 않고 밥 먹는 것이 곧 세상살이의 근본이니라, 이런 말이지.”

“구구절절 옳은 말이야. 아, 갑자기 가슴이 찡-! 하고 아려오네. 코로나 때문에 하루 종일 답답하게 마스크를 쓰고 지내야 하고, 수입이 없어서 다들 힘든 요즘 더욱 절실하게 와닿는구먼.”

“그렇지? 이럴 때일수록 공동체의 안녕과 평화를 위해서 서로 더 열심히 돕고 보듬으며 살라는 얘기야.”

“근데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인가? 우리 사회의 양극화와 계급화는 갈수록 심각해져만 가는데---. 에-휴, 맘 편히 숨 쉬고 밥 먹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나처럼 죽을 고생을 해본 사람만 알지.”

“암만! 그래서 넌 현빈 산장에 살 자격이 충분히 있어, 히히!”

“사실 거기 내려가 살면서 깨달은 바가 많아. 모든 잘못은 다 내 탓이고, 모든 사기는 결국 나 자신한테 당하는 거야.”

“아이고, 이거 많이 발전했네, 히히! 아주 좋아! 근데 이 문장을 신령스러운 암컷의 거시기가 천지의 근원이다,라고 해석하면 그야말로 신성한 도덕경이 포르노가 돼버리고 말지.”

“옛날 사람들도 포르노를 좋아하지 않았을까?”

“예끼 이 사람아! 옛날에는 성이 우리보다 훨씬 더 자연스럽고 개방적이었기 때문에, 그런 건 아예 필요조차 없었을 거야. 신선 될 사람이 생각하는 것 하고는!”

“에이, 그래도 좀 아쉽다. 그래서 결론은 뭐야?”

“면면약존 용지불근(綿綿若存 用之不勤)이라. 공동체 구성원 누구나 자유롭고 평화롭게 숨 쉬고 먹고 살 수 있는 사회가 되도록 모두가 끊임없이 노력하여 보존하되, 그렇다고 거기에만 너무 힘쓰지는 말고 살아라, 뭐 그런 얘기지.”

“아니, 있는 힘을 다해서 노력해도 그런 공정하고 공평한 사회를 이룩할 수 있을까 말까 한데, 너무 힘쓰지 말라는 건 또 무슨 해괴한 말이야?”

“억지로 그런 유토피아 사회를 만들려고 무리하거나 강제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그런 성숙한 사회가 되도록 노력하라는 거지. 억지로 만들려고 했다간 큰 사단이 벌어진다는 거지. 역사상 숱하게 일어났다 실패한 혁명들이 그 좋은 예라 할 수 있지. 사회주의 국가들이 망하는 것도 똑똑히 봤잖아.”

“사회주의는 실패하기는 했지만, 위대한 실패라고 할 수 있지.”

“신자본주의는 승승장구하고 있지만, 누구도 원치 않는 추악한 승리이고.”

“그러고 보면 노자는 역시 진짜배기 공산주의의 시조야, 하하하!”

“암만!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저 세상에서 많이 배우고 있을 걸? 히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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