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자 가라사대(22)
남인도 함피의 추억과 장자의 <소요유>에 대하여
코로나 때문에 발이 묶여서 오랫동안 여행을 못하게 되자, 여기저기서 몸살을 앓으며 아우성치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특히 해마다 몽골을 찾아가던 친구들은 몽골 병을, 히말라야를 순례하던 친구들은 히말라야 병을 심하게 앓고 있다. 직접 찾아가서 그곳의 땅과 하늘과 바람과 햇볕과 음식과 사람을 몸소 겪어 보지 않으면 결코 해소되지 않는 갈증, 그것은 지독한 향수병이었다. 여행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놀자 또한 동병상련의 심정으로, 이런저런 지난 여행의 추억들을 되새김질하며 갈증을 하루하루 견디고 있는 중이었다.
앞날이 불확실하고 예기치 못한 사건들로 인해 종종 계획이 어긋나곤 하는 점에서, 여행은 인생과 흡사하다. 인생 자체가 하나의 여행이기 때문에 그런지도 모른다. 그리고 한번 가본 곳을 언젠가 꼭 다시 가보고 싶어 하는 여행자의 심리는 마치 범행 장소를 몰래 찾아가 보고 싶어 하는 범죄자의 그것과도 흡사하다. 아마도 한껏 고양된 분방한 활력과 고혹적일 정도로 밀도 높은 해방감에 마음을 빼앗겨서, 자신도 모르게 그만 영혼의 한 자락을 남겨두고 오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하여 그것이 늘 우리를 그리워하며 부르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본질에 있어서 이 세계와 하나지만, 실제적으로는 아주 작은 시공간만을 공유하며 산다. 그래서 세상에 대해 그토록 많은 관심과 호기심과 갈증을 가지는 것이다. 모르는 세계가 많을수록 우리의 자아는 그만큼 편협하고 왜소해지고, 세상을 아는 만큼 자신에 대해 더욱 잘 알 수 있다. 세상과 우리 사이에는 수많은 장벽들이 가로놓여 있다. 여행은 그 장벽들을 조금씩 허물고, 오래전부터 기다리고 있던 미지의 자아와 만나는 일이다.
여행은 또한 잠깐 바람을 피우다 제자리로 돌아가는 가벼운 외도와도 흡사하다. 둘 다 꽉 짜인 일상과 규범의 틀을 벗어나 금단의 영역으로 탈출한다는 점이 같다. 그리고 크고 작은 문제와 위험이 뒤따르는 걸 알면서도, 더 큰 기쁨과 행복을 찾아 모험을 감행하는 심리도 유사하다. 일단 발을 들여놓으면 유혹의 손길을 쉽사리 뿌리치지 못하고 점 점 더 깊은 곳으로 빠져들기 일쑤라는 점도 닮았다.
남인도 여행의 백미는 뭐니 뭐니 해도 함피였다. 물론 함피 말고도 대단한 곳들이 많았다. 무굴제국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아서 원형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아주 오래된 힌두교 사원들의 수수하면서도 성스러운 민낯이나, 하루 종일 배를 타고 야자수가 끝없이 펼쳐진 양 쪽 강변 풍경을 질리도록 감상하면서 천천히 떠내려가는 환상적인 수로여행도 아주 좋았다. 하지만 특이하게 생긴 돌무더기 산야가 장대하게 펼쳐져 있는 함피가 역시 최고였다.
오, 함피! 마치 외계 행성에 불시착이라도 한 듯 기상천외하고 그로테스크하면서도 생뚱맞고 익살스럽기까지 한 그 풍광들을 또 어디 가서 만날 수 있으랴! 그리고 한때 엄청나게 융성했다가 이제는 폐허가 된 왕국의 장엄한 유적들이 자아내는 그 고즈넉하고 숭고하면서도 몽환적인 비애감을 어찌 잊을 수 있으랴!
놀자와 친구는 오토 릭샤를 한 대 대절해서 하루 종일 곳곳을 열심히 돌아다녔다. 얼핏 보기에는 바위투성이 불모지 같지만, 자세히 돌아보면 곳곳에 돌로 조각된 거대한 왕궁 터와 크고 작은 수많은 사원들과 거대한 바자르(시장) 흔적 등 대단한 유적과 유물들이 즐비하였다. 그리고 정교하면서도 아름답기 그지없는 돌조각 솜씨는 그저 할 말을 잃게 만들었다.
그렇게 돌아다니다가, 저녁 무렵에 노을이 가장 멋지다고 소문난 마탕가 힐을 찾아갔다. 이미 일단의 여행객들이 와서 자리를 잡고 있었는데, 큰 개 한 마리도 바위 위에 의젓하게 앉아서 명상을 하고 있었다. 언덕 위에서 멀리 발아래 펼쳐진 기이한 광경을 감상하자니, 일몰 무렵이라 그런지 더욱 기묘하고 비현실적인 느낌이 들었다. 사방은 먹먹할 정도로 고요하고, 점점 깊어가는 노을 속으로 둥지를 찾아가는 새들만이 까마득히 하늘을 나는 가운데, 순간순간 거대한 지상의 노을과 하늘의 노을이 하나가 되어갔다. 문득 몸이 노을 한가운데 둥둥 떠 있는 듯하였다. 그리고 노을빛이 절정에 달하면서 세상의 모든 경계가 아득하고도 모호해져 가더니 땅거미가 급하게 깔리기 시작했다.
한동안 노을에 넋이 빠져있던 사람들은 마치 집단 최면 상태에서 깨어나기라도 하듯 하나 둘 자리를 털고 일어나 언덕을 서둘러 내려갔다. 달이 뜨려면 아직 한참 더 있어야 했다. 작은 불빛 하나 보이지 않는 황무지인지라, 더 캄캄해지면 길을 잃고 바위 벼랑을 헤맬 위험조차 있었다. 하지만 놀자와 친구는 그 유명한 보름달 구경을 하기 위해 꼼짝도 않고 자리에 앉아 있었다. 남인도의 황무지에 태고의 어둠이 빠르게 찾아왔다. 어디서도 느껴볼 수 없는 깊고도 으스스한 어둠이었다. 손으로 만지면 깜장이 묻어날 것 같았다. 아마도 어느 골짜기에선가는 각국에서 온 히피 추종자들이 모여서, 밤새워 광란의 파티를 벌일 준비를 하며 하시시를 피워대고 있을 것이었다.
이윽고 거대한 바위산 사이로 보름달이 떠오르기 시작하자, 바위산들은 태고의 어둠 속에서 마치 살아있는 거인처럼 이곳저곳에서 긴 잠을 깨고 꿈틀거리며 일어났다. 그리고 그 옛날 화려했던 왕국 시절의 수많은 숨겨진 이야기들을 수런거리기 시작했다. 달빛은 점점 더 밝고도 푸른빛을 띠어 갔다. 두 사람은 이제 자신들의 존재마저 잊고 무언가에 홀린 듯 그저 멍하니 앉아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문득 놀자의 눈앞에 이상한 형상이 하나 나타났다. 꼭 화살표 같은 모습이었는데,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어서 황금 화살처럼 보였다. 그것은 허공 속에서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였다. 너무도 놀라서 옆에 있는 친구에게 물어보니, 그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신기한 일이었다. 황금 화살은 몇 번 더 반복해서 나타나더니 이윽고 달빛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냥 단순한 환영이었을까? 아니면 신의 은밀한 계시였을까?’
‘혹시 <사라하의 노래>에 나오는 그 여인의 화살은 아니었을까?’
‘불교 탄트라의 정립자이자, 대승불교를 만든 용수보살의 스승인 사라하!’
‘젊은 시절 그는 이미 당대 최고의 바라문 학자이자 대사제였지만, 진리에 대한 목마름으로 엄청난 비난을 무릅쓰고 힌두교를 과감하게 버리고 불교도가 되어, 부처님 아들 라훌라의 수제자인 쉬리 기르띠를 만나 뼈를 깎는 수행 끝에 최고의 명상가로 이름을 떨쳤지.’
‘하지만 나중에는 그마저도 헌신짝처럼 버리고, 시장바닥에서 화살을 만드는 한 비천한 여인을 만나, 주위의 견딜 수 없는 멸시와 조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함께 살았지. 그리고 악주불(樂主佛)의 화신인 그 여인에게서 진정한 가르침을 받고, 드디어 최고의 진리를 얻었지.’
‘그 이후, 그 여인과 하나가 되어, 시체가 타고 해골이 뒹구는화장터에서 함께 춤추고 노래하며 깨달음의 경지를 시로 많이 남겼지. 나중에는 그를 총애하던 왕과 왕비조차 그에게 귀의하여 왕국이 텅 비게 되었지. 그런데 그 장소가 바로 여기가 아니었을까---.’
언덕을 내려오는 놀자의 머릿속에 온갖 망상이 다 들끓었다. 그리고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숙소에 돌아와서도 조금 전의 흥분이 채 가시지 않은데다, 가슴에 간간이 통증마저 느껴져서 잠이 오지 않았다. 천장에서 천천히 돌아가고 있는 팬 소리도 유난히 귀에 거슬렸다. 설핏 잠이 들었다가도, 어디선가 황금 화살이 가슴을 향해 날아오는 뒤숭숭한 꿈에 밤새 시달리며 뒤척였다.
그날 이후, 그 황금 화살은 화두가 되어 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신라 때 시장바닥에서 민초들과 어울려 춤추고 노래하며 깨달음을 설파했다는 원효대사 얘기도 함께 떠올랐다. 하지만 근기도 약하고 주변머리도 없는 놀자는 지금껏 그 이상한 화두를 풀지 못했다. 아무리 애를 써도 소용이 없었다. 어쩌면 영원히 수수께끼로 남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함피에서의 특별했던 경험도 어느덧 까마득한 옛 추억이 되고 말았다---.
이제 말만 들어도 지긋지긋한 코로나. 그리고 코로나보다 더 무섭다는 코로나 블루!
오랜 코로나 사태로 피로감이 쌓일 대로 쌓이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쳐가고 있다. 특히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우울증이 전염병처럼 번져가고 있어서 큰일이다. 이른바 코로나 블루다. 평소 우울감이라고는 전혀 느껴보지 못했던 놀자도 요즘 들어 까닭 없이 가슴이 답답하고 불안하다. 기분도 착 가라앉아서 아무 것도 하고 싶은 의욕이 없다. 입맛도 없고, 몸은 천근만근 무겁고, 잠을 자다가도 몇 번이나 깨기 일쑤다.
“허허, 코로나 블루라는 놈이 드디어 나한테도 찾아왔단 말인가?”
“나한테까지 이렇게 찾아온 걸 보면, 그 놈이 세긴 센 모양이네.”
“그래, 좋다! 늬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어디 한번 해보자, 히히히!”
놀자는 오랜만에 장자를 꺼내 <소요유> 편을 소리 내어 읽었다. 이렇게 마음이 무겁고 울적할 때면 그 부분을 읽으며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펴는 게 상책이었다.
“어둡고 끝이 보이지 않는 저 북쪽 바다에 곤이라는 큰 물고기가 있는데, 그 곤이 얼마나 큰지 몇 천리나 되는지 모른다. 이 물고기가 변해서 새가 되는데 이름을 붕이라고 한다. 그 붕이 얼마나 큰지 날개 길이가 몇 천리나 되는지 모른다. 그리고 그 새가 한번 기운을 떨쳐 날면 날개가 마치 하늘에 온통 드리운 구름과 같다---.”
큰 소리로 <소요유> 편을 끝까지 다 읽고 나니 답답하던 가슴이 한결 후련해졌다.
놀자는 오래전부터 붕이라는 존재에 대해 큰 흥미를 느꼈다. 그토록 거대한 새가 구만 리나 되는 하늘을 날아간다고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더없이 통쾌했다. 붕정만리(鵬程萬里)라는 말 그대로였다. 지금도 보통 사람들은 감히 꿈도 꾸지 못할 원대한 사업을 계획하고 추진할 때, 이 말을 사용하고 있지 않은가.
물론 붕은 장자의 머리에서 창조된 상상속의 새에 불과하다. 하지만 왠지 실제 모델이 있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옛날 사람들은 전설로만 전해 내려오는 신기하고 기이한 동물들을 많이 만들어냈다. 지금보다 상상력이 훨씬 더 풍부한데다, 오랜 신화시대를 거치면서 나름대로 각별한 의미를 지닌 대상에게 특별한 상징을 부여한 때문이었을 것이다. 붕 또한 그랬을 것만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놀자는 기후 변화와 생태계 위기에 대한 책을 읽다가 한 대목에 이르러 그만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붕의 실제 모델이었음직한 새를 드디어 발견했던 것이다.
'바로 이거다! 북미 대륙에 거주하던 이 새는 옛날에 중국까지 날아왔을 것이다! 그리고 장자도 틀림없이 이 새를 보고 붕을 상상했을 것이다!'
놀자는 이렇게 확신했다.
전문가들의 연구에 의하면, 한때 이 지구상에서 가장 풍부했던 새는 북미 나그네비둘기였다고 한다. 이들이 수십 억 마리씩 떼를 지어 날아가면, 지평선이 끝에서부터 끝까지 뒤덮이고 하늘이 캄캄해졌다고 한다. 그리고 몇 시간이 지나도 다 날아가지 못할 정도로 많았다고 한다. 이들은 현재의 볼품 없는 비둘기보다 훨씬 크고 멋졌으며, 검푸른 빛깔에 가슴이 붉었고 긴 꼬리를 가졌다고 한다. 맛도 좋아서, 현재 우리가 닭고기를 먹듯 먹었다고 한다.
그러나 개척자들이 서부로 몰려들면서부터 성능 좋은 산탄총으로 매년 수백 만 마리씩 남획하였으며, 시장에 내다 팔기 위해 엄청난 양이 철도화물로 운반되기까지 했다고 한다. 게다가 숲을 대량으로 벌채함으로써 서식지를 마구 파괴했다고 한다. 그 결과 1870년부터 그 수가 격감되었고, 결국 1914년 9월 신시내티 동물원에서 마지막 개체가 죽음으로써 멸종된 종으로 공식 분류되었다고 한다. 나그네비둘기의 멸종은 자연보호 운동을 일으키도록 자극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위스콘신의 한 주립공원에 있는 나그네비둘기에 대한 기념물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고 한다.
<이 종은 인간의 탐욕과 무지 때문에 멸종되었다.>
“허허, 인간들이 하는 짓이 늘 그렇지, 뭐!”
“붕새가 사라지고 나면, 봉황의 뜻을 전혀 모르는 참새들만 온 세상에 가득하겠지.”
“장자가 말한 '소요유'란 권력이나 신분 재산 권위 따위를 초월해서, 완전하고도 절대적인 자유의 경지에서 노닐며 참다운 행복을 느끼는 것을 말하는데, 이것도 이제는 아득한 옛날 이야기가 되고 말았구나.”
“아니지, 현재 중국이나 우리나라의 많은 젊은이들이 암울한 현실과 미래에 대한 절망으로, 하루 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고 빈둥거리면서, 그저 해가 뜨고 지는 것이나, 사람들이 바쁘게 오가는 것이나, 꽃이 피고 지는 걸 무심하게 바라보며 소요유의 경지를 몸소 실천하고 있다지 않은가.”
“허허, 이거야말로 장자의 위대한 정신 승리요, 신자유주의의 빛나는 쾌거로다! 히히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