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자 가라사대(23)
<위대한 개츠비>와 대공황을 향해 달려가는 이 시대를 위하여!
오늘은 놀자의 생일이었다.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평소 친하게 지내던 두 친구가 찾아왔다. 하루 종일 식음을 전폐하고 옥탑 방에 누워서 빈둥거리며 우울하게 지내던 놀자는 친구들을 보자 속으로는 몹시 반가우면서도 대뜸 역정부터 냈다.
“내가 오지 말라고 그리 신신당부를 했거늘, 왜 이렇게 찾아오고 난리야!”
“너 혼자 궁상떠는 꼴이 눈에 선한데, 이 형님께서 어찌 안 와볼 수가 있겠느냐, 응?”
모 공기업에서 오랫동안 근무하다가 은퇴한 친구가 느물거리며 말했다.
“야! 너 요즘도 생일만 되면 죽을상을 하고 드러누워서, 태어나고 죽는 윤회를 계속 되풀이하고 있는 데 대해 참회를 합네 어쩌네 하며 주접을 떨고 있냐?”
사업하다 재산을 몽땅 말아먹은 백수 친구가 단도직입적으로 놀자의 허를 찔러왔다.
“주, 주접이라니---.”
“말이야 바른 말이지만, 늬가 무슨 성철 스님 같은 대단한 고승이라도 되냐?”
“허허, 이런 몹쓸 친구들을 봤나. 나의 오래되고 신성한 연례행사를 단칼에 이리도 가차 없이 능멸하다니!”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놀자는 친구들을 반갑게 맞아들였다.
“늬가 생일날 우울해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집이 있나 절이 있나, 그렇다고 처자식이 있길 하나---.”
“그렇긴 하지만, 이제는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고 하니, 그런 거 저런 거 다 떨쳐버리고 생일 좀 즐겁게 맞이해 봐. 어쨌거나 생일은 즐거운 거야. 늬가 태어난 덕에 우리가 이렇게 즐겁지 않냐. 그리고 이제 생일파티 할 기회도 그리 많이 남지 않았어.”
“제발 걱정들 좀 하지 마. 일 년에 하루 쯤 우울해 하는 것도 괜찮아. 그리고 내가 생일날 우울해 하는 건 괜히 고승들 흉내 내며 폼을 잡으려고 그러는 것만은 아니야.”
“그럼 도대체 이유가 뭐야?”
“사실은 내가 말이지, 전생에 천상계에서 노닐던 고귀한 존재였다는 거 아니냐.”
“그런데?”
“그런데 그만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고 말았지. 얘기인즉슨 선녀들과 엄청난 스캔들을 일으켜서 천상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이 말이지, 히히!”
“얼씨구, 잘한다! 넌 충분히 그러고도 남지. 그래서?”
“그래서 벌을 받아가지고 지상으로 쫓겨나는 바람에 이 모양 이 꼬라지를 하고 태어났는데, 아 글쎄 생일날만 되면 천상계에 두고 온 선녀들이 몹시도 그립고 간절하게 생각나서, 나도 모르게 그만 슬프고 우울해진다는 거 아니냐.”
“하하하! 틈만 나면 이렇게 구운몽을 날로 회를 쳐서 먹으려고 들어요!”
“야! 이제 신박한 새 버전 좀 나올 때도 되지 않았냐?”
“내가 그렇지 뭐. 너무 무리한 걸 바라지 마, 히히히!”
세 친구는 놀자가 급하게 차린 조촐한 생일상 앞에서, 은퇴 친구가 가져온 비싼 위스키를 조금씩 홀짝이며 환담을 이어갔다.
“참, 백수야! 너 예전에 <위대한 개츠비> 책을 유난히 좋아했었지?”
놀자가 백수 친구를 빤히 바라보며 뜬금없이 물었다.
“응. 나만 그런 게 아니고, 뭘 좀 아는 젊은이들이라면 대부분 다 좋아했었지. 워낙 사나이 가슴을 울리는 유명한 소설이라서 말이야. 아마 지금 젊은이들도 그럴 거야. 근데 생뚱맞게 그건 왜 물어?”
“이렇게 비싼 위스키를 오랜만에 마시고 있자니, 옛날에 사업이 한창 잘나갈 때 늬가 개츠비 흉내를 내며 돌아다니던 생각이 나서 그래.”
“야! 넌 또 왜 이 친구의 가슴 아픈 추억을 함부로 들쑤시고 그러냐?”
놀자로부터 우리나라에서 가장 청렴한 탐관오리라는 영광스런(?) 별명을 하사받은 은퇴 친구가 눈치를 보며 말했다.
“아니 그런 게 아니라, 그때 우리가 신세를 참 많이 졌는데, 이제라도 고맙다는 얘기를 하고 싶어서 그러는 거지, 뭐---.”
놀자가 얼른 수습을 하였다.
“그건 그래. 한창 전성기 때 이 친구 참 대단했었지. 팔자에 없는 개츠비 행세를 하는 바람에 세상이 온통 시끄러웠다니까.”
그랬다. 예전에 그는 제법 큰 부동산 회사를 운영하며 돈을 엄청나게 벌었다. 그리고 하루가 멀다 하고 강남에 있는 고급 술집에서 각양각색의 친구들을 불러다가 파티를 열었다. 밤마다 화려한 향연의 연속이었다. 얼마나 돈을 펑펑 써댔는지, 계속 이러다간 집안 기둥뿌리가 하나도 남아나지 않겠다며 술집 마담이 되레 걱정을 할 정도였다. 하지만 소설에서 개츠비가 데이지에게 바친 눈물겨운 순정 같은 것은 전혀 없었다. 오로지 사업 확장을 위한 로비가 목적이었다. 그렇게 한동안 초호황을 누리다가 IMF 사태 때 부도를 맞고는 쫄딱 망해서 하루아침에 알거지가 되고 말았다.
“개츠비가 살았던 미국의 1920년대를 흔히 ‘광란의 20년대’라고 부른다지. 자동차 철강 석유 산업 등의 급속한 발달로 자본이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불어나 최고로 풍요롭던 시대. 이를 바탕으로 엄청난 부의 양극화 속에서 상류층 인사들은 온갖 비리를 저지르며 타락과 환락에 물들어 흥청대고, 그들 뒤에서는 알 카포네 같은 무시무시한 갱들이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며 활개치고, 광기에 휩쓸린 가난한 서민들도 양심이고 뭐고 다 팽개치고 오로지 돈만을 좆아서 빚을 내어 불나방처럼 주식 시장에 뛰어들고---. 그런데 대공황을 향해 치닫던 그때 모습이 꼭 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과 흡사하지 않냐?”
놀자가 자못 심각한 표정으로 친구들을 보며 물었다.
“내 입으로 말하려니 엄청 쑥스럽지만, IMF 때 직접 당해봐서 아는데, 지금은 그때보다 훨씬 더 심각하고 불길해. 정말 큰일이야.”
백수 친구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그리고는 놀자에게 물었다.
“참, 궁금한 게 있는데, 왜 개츠비를 위대하다고 하는지를 모르겠어. 물론 그가 맨손으로 어마어마한 부를 일구었고, 첫사랑 상대였던 여인의 마음을 다시 얻기 위해 기상천외한 행동을 일삼다가 결국 부도덕한 상류층에 의해 희생된 대단한 친구임에는 틀림없지만, 그렇다고 위대하다고까지 할 수는 없지. 안 그래?”
“그래, 맞아! 나도 늘 그것이 궁금했어.”
은퇴 친구도 거들었다.
“그건 말이야, 애시 당초 번역자가 번역을 잘못한 거 같아. 미국 사람들은 대화를 하면서 유난히 호들갑을 떨기 때문에 걸핏하면 ‘그뤠잇!’ ‘그뤠잇!’ 하잖아. 그게 위대하다는 말이 아니라, 괜찮다 혹은 대단하다 뭐 그런 뜻이지. 이런 점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그냥 <위대한 개츠비>라고 번역한 것이 지금껏 내려오고 있는데, 사실은 <대단한 친구 개츠비> 혹은 <풍운아 개츠비>가 더 어울린다고 할 수 있어.”
“그래, 맞아! 개츠비야 말로 정말 대단한 야심가이자 대단한 수완가요, 대단한 순정파이자 대단한 로맨티스트였지!”
“자, 그럼 이제부터 우리만이라도 개츠비를 제대로 불러주자고.”
“그래, 그래! 대단한 야심가이자 수완가인 개츠비를 위하여!”
“대단한 순정파이자 로맨티스트인 개츠비를 위하여!”
“그리고 대단한 우리의 짝퉁 개츠비를 위하여, 히히히!”
한때 개츠비를 좋아했던 늙다리 친구 셋이 잔을 높이 들고 건배를 하였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다들 너무 잘나고 똑똑해서 말이야. 도대체가 쓸모없음이나 비어있음의 미학을 모른단 말이야, 히히! 도덕경 11장에는 비어있음의 쓰임새에 대한 아주 재미난 말이 나온단 말이야. 바퀴는 살 사이가 비어있기 때문에 바퀴 역할을 할 수가 있고, 그릇은 안이 비어있기 때문에 그릇으로 사용할 수가 있고, 방도 안이 비어있기 때문에 방으로 사용할 수가 있다는 말이야. 무가 존재해야 유도 존재할 수 있다는, 정말로 노자가 아니면 할 수 없는 기발한 얘기란 말이야, 히히!”
모처럼 생일 축하주에 제대로 취한 놀자가 기분이 좋아서 해롱거렸다.
“야, 그렇게 따지면 우리가 지금 이렇게 숨을 쉬면서 살고 있는 것도, 그리고 하늘에서 별들이 저렇게 빛나고 있는 것도, 다 허공이 텅 텅 비어있기 때문이겠네?”
은퇴 친구가 제법 아는 체를 하며 장단을 맞추었다.
“맞아, 맞아! 바로 그거야. 역시 탐관오리 출신이라 눈치 하나는 빠르구만, 히히히!”
“너 자꾸 탐관오리라고 놀릴래? 나 탐관오리 아니야. 늬가 말한 대로 청렴오리야.”
“그래그래, 알았어. 앞으로는 청렴오리라고 부를게, 히히! 어쨌거나 이 우주의 진짜 주인공은 은하계도 아니고, 암흑물질도 아니고, 인간은 더더군다나 아니야. 바로 저 허공이야.”
“허허, 그건 또 무슨 듣도 보도 못한 사이비 다단계 내로남불 개똥철학인고?”
백수 친구가 게슴츠레한 눈으로 놀자를 바라보며 물었다.
“잘 생각해 봐. 은하계가 제아무리 넓고 한도 끝도 없다고 해도, 결국은 허공 안에서 일어났다 스러지는 한갓 불꽃놀이에 지나지 않아. 허공이 없으면 아무것도 존재할 수 없어. 천당과 지옥 같은 영적 세계까지 포함해서, 모든 존재는 다 허공의 일시적인 변형일 뿐이란 말이야. 존재 자체가 더없이 신비로우면서도 덧없는 거품이야. 우주의 본질은 허공이고, 그게 우리의 참 나란 말이야. 그래서 우리 인간도 자신을 비우면 비울수록 우주의 본질과 하나가 될 수 있다, 이 말이야!”
“그래, 너 잘났다. 정말 대단한 개똥철학이다. 하지만 본질과 현상은 하나인데, 그 둘을 분리해서 보는 따로국밥이 어디 있냐. 허공이 거품이고, 거품이 허공이지. 안 그래?”
은퇴 친구가 틈을 엿보다가 날카롭게 반격을 가했다.
“어이쿠! 이거 한방 크게 맞았네, 히히! 사실 따로국밥은 없어. 알고 보면 다 한통속이지. ‘무와 유가 같은 곳에서 나왔으되 이름만 다르다’는 노자의 얘기가 바로 그거야.”
“근데 허공에서 어떻게 저런 위대한 거품들이 생겨날 수가 있냐?”
“그건 나도 몰라. 첨단 물리학에서도 물질적 차원만 다루지, 허공까지는 감당하기가 불가능할 거야. 과학을 훨씬 넘어선 차원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 선가에서 흔히 말하는 ‘허공에서 한 송이 연꽃이 피어나는 도리가 무엇인가?’라는 화두와도 같은 얘기인데, 내가 그걸 알면 시방 여기서 늬들하고 이러고 있겠냐? 히히히!”
한동안 놀자가 능숙한 솜씨로 달여 낸 녹차를 마시며 이런저런 환담을 나누던 친구들은 최근에 본 영화 <자산어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바야흐로 서양 세력과 문물은 흑산도의 거센 파도처럼 밀려들어 오는데, 세상은 성리학의 견고한 틀에 갇혀 바뀔 기미가 보이지 않고, 미래에 대한 희망이라고는 조금도 기대하기 어려운 그 머나먼 유배지에서, 그래도 앞으로 다가올 실사구시의 세상을 위해 묵묵히 물고기 연구에 정진하며 마음을 달래던 정약전의 모습이 몹시 감동적이면서도 가슴 아프더군.”
“그래! 그리고 창대라는 젊은이도 참 흥미로운 인물이었어. 천하의 대학자 정약전에게 성리학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한 선비라고 몰아세우던 그가, 그렇게도 소원하던 육지에 나가서 벼슬살이를 하면서 세상물정을 어느 정도 깨우친 뒤에, 썩어빠진 세상에 실망하여 다 팽개치고 다시 섬으로 돌아와서 어부가 되는 모습이야말로 미래에 대한 씩씩한 꿈과 희망으로 보여서 좋았어.”
“사실 우리나라가 지금 이렇게 눈부시게 발전한 것도 따지고 보면 조선조 오백년 동안 축적되고 체질화된 성리학 공부 덕택이라고 할 수 있어. 왜냐고? 아, 물론 나라를 망하게 한 많은 폐단도 있었지만, 그토록 치열한 이론 탐구와 명분 논쟁의 전통이 해방 이후 목숨 건 민주화 투쟁을 가능케 했고, 그토록 지독한 학문 숭배와 학습 신봉의 전통이 엄청난 교육열로 이어져 산업화를 성공적으로 일구어냈으니까. 안 그래? 그나저나 난 정약전을 곁에서 알뜰살뜰 보살피던 가덕댁이 참 마음에 들더라. 그렇게 후덕하고 마음씨 곱고 곰살맞은 과수댁 좀 어디 없나? 히히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