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자 가라사대(24)
<개미와 베짱이 - 신자유주의 버전>
아직도 개천에서 용이 나올 수 있을까?
아마도 대부분 고개를 가로저을 것이다. 예전에는 그래도 인간 승리의 귀감이 될 만한 인재들이 심심치 않게 나와서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과 희망을 주었지만, 이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대체적인 중론이다. 그만큼 계층 간 이동을 가능케 했던 사다리가 사라지고, 격차가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벌어졌다는 얘기다. 개천용이 사라진 자리에는 보나마나 문신용들이 제 세상을 만난 듯 활개치고 다닐 것이다.
지금 MZ 세대라고 일컫는 2030 세대를 중심으로 공정에 대한 요구가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공정하지 못하고, 특히 젊은이들이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사실 우리처럼 부의 양극화가 심각하고, 비정규직이 넘쳐나고, 반칙과 특권이 횡행하고, 부정부패와 부동산 투기가 만연한 사회에서 젊은이들의 이러한 요구가 일어나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할 정도다.
“잘한다! 역시 젊은이들은 다르구나, 히히!”
“한데 오죽 살기가 힘들면 저렇게 절규를 할까---.”
놀자는 젊은이들의 요구에 충분히 공감을 하면서도 입맛이 몹시 씁쓸했다. 그리고 꼭 자신이 죄를 지은 것만 같아서 미안한 마음마저 들었다.
“공정이란 무엇인가. 모든 일의 시작과 끝, 그리고 과정과 결과가 편파적이지 않고 공평하고 올바른 것을 말하는 게 아닌가. 하지만 그걸 실천하는 것이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차라리 유토피아를 건설하는 게 낫지.”
“추악하고 탐욕스런 세력들이 권력의 이름으로 언제나 패거리를 지어 선량한 국민들을 개돼지처럼 여기고 군림하려 드는 이 풍진 세상에서, 진정으로 공정한 사회를 만든다는 건 맹자가 말한 대로 연목구어(緣木求魚)일 뿐이지.”
“특히나 분단과 전쟁, 기나긴 개발 독재와 민주화 투쟁, 국민 혈세를 먹고 성장한 대기업들의 갑질 횡포와 기득권층의 견고한 카르텔, 개혁 진보세력들의 내로남불식 위선과 타락, 투기꾼들과 중산층들이 깔아뭉개고 있는 부동산 문제 등등--- 적폐가 쌓일 대로 쌓여 불공평의 정도가 워낙 심하니까, 젊은이들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저렇게 분노하는 것이지.”
“근데 너희가 MZ 세대라고? 그럼 우리는 DMZ 세대다. DMZ 세대가 뭐냐고? 아, 물론 공식적인 용어는 아니고 내가 만들어 본 건데, 태어나서 지금까지 보고 듣고 배우고 익힌 그 모든 것에 비무장지대 즉 DMZ의 철책선이 칡넝쿨처럼 칭칭 감겨있는 그런 세대를 말하지, 히히!”
“사실 우리도 그동안 공정한 사회에서 한 번도 살아보지 않아서 공정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 그래서 문제가 많아. 오랫동안 반독재 투쟁하랴 산업 전사로 뛰랴 열심히 달려왔지만, 어느덧 꼰대가 되어 너희들의 앞길을 막고 있으니 정말 미안해. 아무리 그렇기로서니 우리 세대 자체를 공공의 적이자 적폐 집단으로 보는 것도 문제는 문제로고---.”
최근에 택배 노동자 한 명이 또 과로사를 했다. 택배 회사들이 머리를 조아리며 재발 방지를 굳게 약속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건만, 아직 달라진 게 전혀 없는 모양이다. 이 소식을 접한 놀자는 마치 친한 후배가 일을 당하기라도 한 듯 가슴을 두드리며 탄식을 했다. 그리고 답답한 마음에 이솝우화 <개미와 베짱이>에 대해 다시 한 번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이 우화만큼 인간의 삶과 노동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얘기도 달리 없지. 일은 물론 중요해. 누구든 먹고살아야 하니까. 하지만 개미처럼 일만 하다 죽는 것도 참 불행하지.”
“개미처럼 먹고사는 일 위주로 살아가는 생계형이나 소유형 인간이 될 것인가, 아니면 베짱이처럼 타고난 소질을 계발하고 좋아하는 일 위주로 살아가는 자아실현형이나 존재형 인간이 될 것인가, 이것이 문제로다!”
“근데 요즘처럼 먹고살기 힘든 세상에선 이런 질문조차 사치스럽다고 하겠지. 하지만 자신의 삶에 충실한 베짱이를 오로지 양식만을 기준으로 삼아서 게으르고 무능하다고 탓할 수 있을까. 그리고 걸핏하면 노동자들이 과로사하거나 각종 산업재해로 죽어나가는 마당에, 이 얘기는 어떤 의미를 지닐까.”
“그래, 얼핏 보면 이 우화는 개미처럼 근면하고 성실한 삶이야말로 인생의 소중한 지혜이자 성공의 지름길이라는 교훈을 전해주는 것 같지만, 계급적 시각에서 자세히 뜯어보면 아주 잔인한 논리가 숨어 있어. 그리고 이 논리가 지난 2천 년 동안 지배계급이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을 깊이 세뇌시켜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야.”
“그게 뭐냐고? 너희들은 개미처럼 평생 일만 하다가 죽어라. 그게 너희들의 운명이다. 너희들의 운명을 사랑하라. 너희들에게는 화창한 여름날 노래하고 춤추며 즐길 수 있는 호사 따위는 애시 당초 없다. 그런 건 아예 꿈도 꾸지 마라. 그리고 베짱이처럼 일도 하지 않으면서 입만 열면 예술입네 철학입네 하고 거들먹거리며 농땡이를 치다가, 걸핏하면 불평불만을 늘어놓으며 사람들 허파에 불순한 바람이나 잔뜩 불어넣고 선동하는 그런 놈들은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해충일 뿐이다. 그러니 절대로 따라하지 마라---. 뭐 이런 순종과 노예의 논리지.”
혼잣말을 주고받던 놀자는 가슴 속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 그래서 한동안 방안을 뒹굴며 화를 삭이다가, 마음을 가다듬고 개미와 베짱이에 대한 이야기를 이 시대 현실에 맞게 새로 썼다.
<개미와 베짱이 - 신자유주의 버전>
뜨거운 여름날, 개미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열심히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일개미들은 부지런히 먹이를 나르고, 쓰레기도 치우고, 주변 청소도 하였습니다. 병정개미들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서 실전과 흡사한 훈련을 열심히 하였습니다. 개미들은 언제나 이렇게 열심히 일을 하였습니다. 일을 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내일을 위하여 오늘을 희생하자!>라는 것이 개미들의 유일한 신조였습니다.
그들은 일하지 않고 놀고먹는 베짱이들을 보며 이렇게 혀를 끌끌 찼습니다.
“자고로 일을 하지 않으면 먹지도 말라고 했는데, 저렇게 허구한 날 먹고 놀기만 하다가는 머지않아 두 눈에서 피눈물을 줄줄 흘릴 때가 올 것이야, 쯧쯧쯧!”
“그러게 말이야. 세상에서 가장 신성한 것이 일인데, 일하는 기쁨과 보람을 모르는 쟤들은 정말로 불쌍해.”
“그래도 저렇게 노래하고 춤추면서 우리를 기쁘게 해주니까, 힘도 훨씬 덜 들고 기분도 덩달아 좋아지잖아. 정말 고마워.”
“근데 우리는 언제나 내일을 위해서 사는데, 내일은 오늘의 또 다른 반복일 뿐이잖아. 우리에게 과연 진정한 내일은 있을까?”
한편, 개미들이 부지런히 일하는 일터 주변에서는 멋을 잔뜩 부린 베짱이들이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신나게 파티를 하고 있었습니다. 가수 베짱이는 노래를 하고, 댄서 베짱이는 춤을 추고, 악사 베짱이들은 연주를 열심히 하였습니다. 베짱이들은 이렇게 시원한 나무 그늘에서 하루 종일 먹고 마시면서 노래하고 춤추며 노는 것이 일과였습니다. <오늘을 위하여 내일을 희생하자!>라는 것이 베짱이들의 유일한 신조였습니다.
그들은 땀 흘려 일하고 있는 개미들을 한껏 비웃으며 조롱하였습니다.
“내일 아침 눈을 뜨면 세상이 망해 있을지도 모르는 판에, 저렇게 죽어라고 일만 하다 죽으면 얼마나 억울해? 홍홍홍!”
“그러게 말이야. 쟤들은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늙어지면 못 노나니, 화무십일홍이요, 달도 차면 기우나니라~~~’하는 노래도 모르는가봐.”
“그래도 자기들을 위해서나 우리를 위해서나 저렇게 죽자 사자 일하는 모습을 보면 정말 감동이야. 너무 고맙고 사랑스러워.”
“근데 매일매일 이렇게 놀다보니 이제 노는 것도 따분하고 별 재미가 없어. 어디 좀 더 자극적이고 짜릿한 재미거리 좀 없을까?”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여름이 끝나고 겨울이 닥쳤습니다. 그토록 무성하던 나뭇잎들을 우수수 다 떨어지고, 사방에서 찬바람이 세차게 불면서 눈보라가 휘날리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개미들은 아무 걱정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땅 속 깊은 곳의 따뜻한 집에 살면서 그동안 쌓아놓은 양식을 먹으며 지냈습니다. 그리고 다가올 봄을 대비하기 위해 부지런히 일을 했습니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그저 먹고 논다는 것은 개미들에게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일을 하는 틈틈이 베짱이에 대한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이 추운 날씨에 베짱이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며 지내는지 걱정이구나.”
“틀림없이 배가 고파서 여기저기 먹을 것을 구걸하러 다니다가 얼어 죽었을 거야.”
“우리한테 찾아와서 부탁하면 잠자리와 먹을 것 정도는 해결할 수도 있으련만, 쯧쯧쯧!”
그때, 누군가 문을 세게 두드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때마침 베짱이가 찾아온 모양이었습니다. 문을 열고 보니, 뜻밖에도 집 주인의 하수인 노릇을 하는 땅강아지가 거만한 자세로 서 있었습니다. 땅강아지는 집안으로 들어오자마자 불도저처럼 생긴 앞발을 마구 휘저으며 위압적인 말투로 말했습니다.
“이번 겨울부터 집세를 30% 올려달라는 주인님의 전갈이오, 흠흠!”
“뭐시라? 30%를 올려달라고라?”
“그렇소. 집세를 더 내던가, 아니면 나가든가 알아서 하시오, 흠흠!”
“아니, 집세 올린지가 얼마나 됐다고 또 이렇게 올린대?”
“그러게 말여. 이거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하는 거 아녀?”
“집세로 다 바치고 나면 우린 도대체 뭘 먹고 살라는 겨?”
아닌 밤중에 홍두깨 격으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개미들은 마구 불평을 쏟아냈습니다.
“나더러 하소연해 봐야 아무 소용없소. 난 그저 주인님의 말을 전달할 뿐이니까, 흠흠!”
집을 지을 때 앞장서서 길을 뚫었던 땅강아지는 앞발을 툭툭 차며 심드렁하게 말했습니다.
“이거 안되겠수. 이번 기회에 집 주인을 직접 만나서 좀 따져 봐야겠수. 자, 앞장서시우!”
화가 잔뜩 난 개미들은 씩씩거리며 당장이라도 땅강아지를 따라나설 채비를 했습니다.
“그래봐야 아무 소용없소. 주인님은 절대로 당신들을 만나주지 않을 테니까, 흠흠!”
“도대체 그 주인님이라는 작자가 누구요? 어디 살고 있소? 당신은 잘 알 것 아니요?”
“그게 그리도 궁금하오? 흠흠!”
“그렇수. 오래전부터 그것이 몹시도 궁금했수.”
“그렇다면 내가 알려주겠소. 우리 주인님은 다름 아닌 베짱이요. 그리고 하늘처럼 높은 집에 꼭꼭 숨어살고 있어서, 아무도 허락 없이는 함부로 찾아갈 수가 없소, 흠흠!”
“이, 이럴 수가! 그게 사실이우?”
“그렇소. 내친김에 숨겨진 비밀을 조금 더 알려주겠소. 그러니까 그 뭐시냐, 여름날 우리 주인님이 하루 종일 노래 부르고 춤추며 노는 것도, 실은 당신들로 하여금 잠시나마 고단함을 잊고 기분 전환을 해서 더 열심히 일하게 하려는 자상한 배려에서 나온 사랑의 행위예술이다 이런 말이오, 흠흠!”
“------.”
“그리고 이거야말로 진짜 비밀 중의 비밀이라 절대로 발설해서는 안 되지만, 까짓것 오늘 내가 인심 쓰고 화끈하게 다 말하겠소. 우리 주인님에게는 아주 특별한 건강 장수비결이 있는데, 그게 뭐냐 하면 아침저녁으로 개미허리를 부러뜨린 뒤 곱게 갈아서 그 즙을 마시는 것이오, 흠흠!”
“아악! 이건 아니야!”
“그래, 이럴 수는 없어! 이건 악몽이야!”
“세상이 아무리 불공평하다 해도, 이건 아니야!”
땅강아지가 땅속 마을을 태풍처럼 한바탕 휘젓고 돌아간 뒤, 개미들은 모두 패닉 상태에 빠졌습니다. 다들 일할 의욕을 잃고 누워서 멍하니 허공만 바라보았습니다. 성급한 일부 젊은 개미들은 결사대를 조직해서 베짱이를 응징하고자 떠났지만, 눈보라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얼어 죽었다는 슬픈 소식만 바람결에 들려왔습니다.
그렇게 한동안 우울증과 무기력증과 의욕 상실증에 빠져있던 개미들은 다시 주섬주섬 자리에서 일어나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쓸개가 빠지고 배알이 없다고 욕을 바가지로 먹어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본디 일을 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성미인데다, 당장 집에서 쫓겨나지 않기 위해서라도 더욱 열심히 일을 해야만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화를 다 쓰고 나서, 놀자는 새삼 개미들이 불쌍해서 눈물을 글썽였다.
“개미들이여, 오랜 잠에서 깨어나라! 자본의 교활한 논리에 더 이상 속지 마라!”
“만국의 게으름뱅이들이여, 뭉쳐라! 굳게 뭉쳐서 신자본주의에 마구 빵꾸를 내자!”
“그리고 MZ 세대들이여! 우리 DMZ 세대와 손잡고 좋은 세상 한번 만들어 보자, 히히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