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자 가라사대(25)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는 어디로 가야 하나

by 김혁

날이 무지 덥다. 연일 푹푹 찌는 불볕더위가 계속되고 있다. 벌써부터 폭염주의보와 폭염경보가 여기저기서 발령되고, 코로나 때문에 마스크까지 쓰고 다니려니 정말로 죽을 맛이라고 다들 아우성이다. 하지만 이건 약과다. 장마가 끝나고 앞으로 본격적인 무더위와 함께 열 돔 현상이 쭉 계속되면, 예년보다 훨씬 더 심각한 불가마가 닥칠 것이라고 한다.

“허허, 이거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가 따로 없네, 그려---.”

놀자는 연신 비지땀을 흘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루 종일 돌아가고 있는 낡은 선풍기에서는 그의 한숨을 꼭 닮은 미적지근한 바람이 나왔다.

“금년에도 본의 아니게 밤마다 뜨거운 밤을 보내게 생겼구먼---.”

"덕분에 외롭지 않아서 참말로 땡큐여, 히히히!"

해마다 여름이 되면, 구식 옥탑방에 사는 놀자는 그야말로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 신세가 된다. 좁은 옥상 한쪽에 조립식으로 지어 놓은 건물이라서, 여름에는 무지 덥고 겨울에는 무지 춥다. 그렇다고 냉방이나 난방을 빵빵하게 할 수도 없는 형편이다. 이렇게 열악한 옥탑방을 벗어나지 못하는 신세 건만, 그는 이것도 감지덕지하며 산다. 도가 높아서가 아니라 달리 갈 곳이 없어서다. 그리고 이보다 훨씬 못한 곳에 사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미안하기 때문이다.

물론 놀자도 어디 산속 깊은 곳에 들어가서 ‘나는 자연인이다’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살 수도 있지만, 아직은 그럴 때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악착같이 버티면서 이 못돼먹은 자본주의 체제에 아주 작은 구멍이라도 하나 시원하게 뚫어보는 게 그가 스스로에게 부여한 성스러운 임무이기 때문이다. 자발적 가난과 불복종과 게으름과 정신승리의 본보기 - 그 임무를 완성하기 전에는 이 징글징글한 서울 바닥을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가 없다. 가능성은 희박해 보이지만, 버틸 때까지 버텨볼 심산이다.

“내가 그동안 삼계화택(三界火宅)에서 굴러먹은 지가 얼마나 되었을까?"

"아마 몇 억겁도 더 됐을 거야. 그러니 이깟 더위쯤이야 정말로 아무것도 아니지!”

“암만, 이제는 불난 집에 앉아서 불구경하며 시도 짓고 밥을 해먹을 때도 되었지, 히히!”

놀자는 화가 친구가 산수화를 멋지게 그려준 부채를 부치며 애써 자위를 했다. 마음만은 불구덩이 속에서도 수염에 고드름이 주렁주렁 달린다는 도사의 심정이었다.

불교에서는 모든 중생들이 윤회하며 살고 있는 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를 삼계라고 하는데, 이 삼계가 탐욕과 무지로 인해 다 불난 집처럼 위험하고 위태로우니 조금도 미련을 두지 말고 한시바삐 벗어나 해탈을 하라고 한다.

“근데 그놈의 해탈이 어디 말처럼 그렇게 쉬워야 말이지.”

“그리고 삼계를 벗어나면 도대체 어디로 가며, 또 거기서는 무슨 재미로 산다는 말인지---.”

“그나저나 지구촌 곳곳에서 이상고온으로 인한 폭염과 무더위로 저렇게 난리를 치는 걸 보니, 삼계화택이란 말이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실제 상황이 되고 말았네, 그려!”

“불로 문명을 일으킨 인류가 결국은 불 때문에 망하게 될 모양이야, 쯧쯧!”

“노자 할아범도 2천5백 년 전부터 그토록 무위자연을 강조하고, 욕심과 이기심을 멀리하라고 당부했건만, 도통 소 귀에 경 읽기요 말 귀에 동풍이니 이를 어찌하면 좋을꼬.”

“이대로 가다가는 앞으로 10여 년 후에 남극 북극의 빙하가 다 녹는다는데, 그럼 다들 물에 잠겨서 나라와 민족과 종교와 이념과 다국적 IT기업과 기득권과 부동산과 주식이 몽땅 꽝되는 거 아녀?”

"그렇게 되면 이 지구 상에서 그 어떤 전쟁도 폭력도 착취도 차별도 빈부격차도 다 없어지고, 자유와 평등과 행복과 평화의 세상이 도래하겠네? 물론 살아남은 뒤의 얘기지만 말이야, 히히히!"

"암만, 민중들이 그토록 바라던 진정한 미륵 세상과 후천 개벽 세상이 오는 거지."

“가만있자, 남극과 북극이 사라지면 자연히 동서남북도 없어질 것 아닌가? 그렇게 되면 오방(五方) 중에서 유일하게 중앙만 남겠구먼.”

“그럼 어딜 가나 다 중앙이고, 앉고 서는 곳마다 다 중심이 되니까, 수처작주(隨處作主) 면 입처개진(立處皆眞)이라 - 가는 곳마다 참 주인이 되면, 서 있는 곳마다 진리가 피어난다 - 는 선가의 깨달음의 경지가 자연히 실현되겠네, 히히히!”


하루 한 끼 그것도 채식을 위주로 하는 놀자는 오늘도 점심 식사로 잡곡을 섞은 현미밥에다 김치와 된장국을 맛있게 먹은 뒤, 슬슬 집을 나섰다. 오전에는 그런대로 견딜 만했지만, 오후가 되면 방안이 너무 더워서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놀자는 책 한 권을 들고 슬슬 걸어서 근처에 있는 모 은행 지점으로 향했다. 특별한 볼 일이 있어서가 아니라, 시원하다 못해 춥기까지 한 대기실에 앉아서 눈치껏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낼 요량이었다. 고객들이 붐비는 곳 두세 군데를 이렇게 돌다 보면 은행 마감시간인 오후 4시까지는 완벽하게 더위를 피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은행에 돈을 많이 넣어둔 척하며 거드름을 피워보는 기분도 그런대로 썩 괜찮았다.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는 희곡도 재미있지만, 영화도 참 볼만했지.”

고객을 가장하고 대기실에 앉아서 책을 뒤적거리며 놀자가 자신에게 중얼거렸다.

“그래 맞아.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폴 뉴먼이 주연으로 나온 그 영화는 정말 좋았지. 두 사람의 연기도 아주 뛰어났었고.”

“특히 물이 오를 대로 오른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미모는 그야말로 눈이 부실 지경이었지.”

“당연하지. 20세기 최고의 미녀라는 데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만큼 대단한 여배우였으니까. 결혼도 평생에 걸쳐 여덟 번씩이나 했고 말이야, 히히!”

“미모도 미모지만, 남편의 얼어붙은 마음을 되돌리려는 집요한 사랑과, 시아버지의 재산을 놓치지 않고 받아내려는 욕망으로 이글거리는 그녀의 눈빛은 마치 뜨거운 양철 지붕 위에서 몸부림치는 발정 난 암고양이의 그것과도 같았지.”

“영화 내내 술을 끊임없이 마셔대며, 주위 사람들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의 위선과 거짓에 대해 분노하고 좌절하며 무너져 가는 폴 뉴먼의 주정뱅이 연기도 일품이었고.”

“부자간의 갈등, 형제간의 갈등, 부부간의 갈등, 친구 간의 갈등--- 등, 일어날 수 있는 온갖 종류의 갈등이 겉으로 드러나면서, 애정과 우정과 온갖 욕망들이 때론 날카롭게 때론 뻔뻔하게 부딪치며 끓어오르다가, 자신들의 내면을 온통 차지하고 있던 탐욕과 허위와 거짓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받아들임으로써 가까스로 화해에 이르기는 하지. 하지만 많은 생각할 거리와 여운을 남기며 끝나지.”

“물론 현실 사회에서는 그리 쉽게 해결될 문제들이 아니지. 재산 다툼, 음주 도박, 동성애 문제, 부부간의 애정 트러블과 불륜 등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인 핫한 이슈가 아니던가.”

“그래서 오래전에 나온 희곡과 영화가 전혀 어색하지 않고, 아직도 많은 인기를 끌고 있단 말이지.”

“사실 21세기 신자유주의 체제 하에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 다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니야. 세상이 우리의 온갖 욕망을 끝없이 부추기고, 그런 거대한 흐름에 다들 제대로 대항하지도 못하고 오히려 춤추고 즐기며 휩쓸려가고 있으니까. 그렇지 않아? 이를 자신 있게 부인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어디 한번 나와 보라고 그래!”

“암만, 그렇고말고! 더군다나 기후 온난화로 인해 지구 자체가 뜨거운 양철 지붕이 되어가고 있는 마당에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해?”

“영화에서 폴 뉴먼이 그렇게 지붕이 뜨거우면 뛰어내리라고 하는데, 아내인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가슴속에 더 뜨거운 욕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못 뛰어내리지.”

“그게 바로 중생이야. 하지만 뛰어내리고 싶어도 뛰어내릴 곳이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지?”

“그럼 나처럼 참을 수 있을 때까지 참고 또 참으며 견뎌야지 뭐, 별 수 있나? 히히히!”

놀자는 은행일로 바쁘게 오가는 고객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히죽거렸다.


마감 시간이 지나서 은행을 나온 놀자는 인근에 있는 커다란 중고서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늘 가는 자연스러운 코스였다. 그는 중 고등학교 시절부터 중고서점을 사랑했다. 저렴한 가격도 가격이지만, 일반 서점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각종 다양한 책들과 진귀한 자료들을 (특히 야한 19금 서적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무척이나 쏠쏠했다. 그리고 옛날 사랑방 냄새 같은 오래된 책 특유의 냄새를 맡고 있노라면 왠지 마음이 푸근해지곤 했다. 그건 어쩌면 그의 영혼 자체가 중고품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중고서점도 이제는 크고 깨끗하게 현대화되어 예전 같은 낭만은 사라졌지만, 그래도 언젠가 읽고 싶었으나 때를 놓쳐 잊어버리고 있었던 책을 싼 값으로 구입할 때면 대단한 보물이라도 얻은 듯 기뻤다. 그리고 책을 먼저 읽은 어느 얼굴 없는 독자의 생각과 감정을 마음대로 추측해 보며 공유하는 것도 좋았고, 독자의 선택을 한 번도 받지 못하고 바로 중고서점으로 직행한 불운한 책들을 동병상련의 심정으로 어루만지며 살펴보는 것도 좋았다. 예전에 자신이 아끼며 고이 간직했던 책과 똑같은 책이 누군가의 손에 의해 매장에 나와 있는 걸 보면 몹시 반가우면서도 가슴이 아팠다.

새로 들어온 책들을 꼼꼼히 훑어보고 난 놀자는 매장 구석에 놓인 탁자에 앉아서 몇 시간 동안 이런저런 책을 보다가 밖으로 나왔다. 한낮의 뜨거운 열기는 가셨지만, 아직도 공기가 후텁지근하였다. 집을 향해 발걸음을 천천히 옮기는데, 지난번에 길거리에서 설전을 벌이며 나름 치열하게 법 거량을 했던 사이비 종교 전도자를 또 만났다. 피하고 싶었지만 워낙 끈질긴 친구라 피할 도리가 없었다. 그는 지난번 일을 설욕하려고 단단히 벼르고 나온 것 같았다.


“선생님, 도를 아십니까?”

“난 그런 거 모르오. 관심 없소.”

“아니, 지난번에는 잘 안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땐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오.”

“그럼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이런 말입니까?”

“아니, 그때는 틀리고 지금이 맞소.”

“에이, 그렇게 왔다 갔다 하는 건 도가 아닙니다.”

“허허, 모든 게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해야 세상이 쉬지 않고 돌아가지.”

“그건 그렇습니다만, 움직이면서도 그걸 벗어난 중심이 바로 도란 말입니다.”

“움직임 가운데 정지가 들어있는 거지, 그게 어디 따로 있소?”

“선생님이 도를 잘 몰라서 그런 말을 하시는 겁니다.”

“그래요? 그렇다면 도를 잘 아는 그대가 어디 한번 얘기 좀 해보소.”

“절대 침묵과 절대 정지와 절대 자유의 경지는 분명히 따로 존재합니다. 하지만 제가 주제넘게 말씀드릴 입장은 못되고요, 저와 함께 가셔서 법문을 들어보시면 아실 겁니다.”

“허허, 결국 나를 모임에 끌어들이려는 수작이로군.”

“오해하지 마십시오. 그런 게 절대 아닙니다. 이 세상을 구원할 진짜 진인이 드디어 출현하셨다는 기쁜 소식을 전해드리려는 것일 뿐입니다.”

“그럼 그동안 출현했던 수많은 재림예수, 미륵불, 정도령, 청림 도사 등은 다 가짜란 말이오?”

“그렇습니다. 이분이야말로 진짜 진인이십니다.”

“그렇다면 증거가 있을 테니, 확실한 증거를 한번 대보시오.”

“원효 대사가 미래에 대한 예언을 아들 설총에게 비밀리에 전해서 문무대왕 수중릉에 감추라고 한 비기가 있습니다. 이 비기는 박정희 대통령이 비서를 직접 보내서 돌무덤을 비밀리에 개봉해서 찾아냄으로써 세상에 알려지게 됐는데,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 비기에 진인의 출현이 예언되어 있습니다.”

“그래 뭐라고 쓰여 있소?”

“자세한 내용을 여기서 다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다각도로 자세히 검토해 본 결과 이 분이 확실합니다.”

“허허, 이거 갈수록 태산이구먼.”

“그리고 선생님, 혹시 지난 2016년 12월부터 2017년 9월까지 목성이 역행과 순행을 거듭하며, 무려 41주 그러니까 10 달 동안이나 처녀자리의 자궁 부근에 머물렀던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대충 들어서 알고는 있소.”

“그때 그러니까 2017년 9월에, 하늘로부터 점지된 어느 분이 영적으로 완벽하게 거듭나서 나서, 곧 닥칠 환란으로부터 이 세상을 구원할 진인이 된 것이지요.”

“오, 그게 사실이라면 정말 대박이요. 우린 가만히 있기만 해도 구원받을 테니까.”

“선생님, 가만히 있어도 받을 수 있는 구원은 없습니다. 함께 가셔서 법문도 듣고 열심히 공부를 하셔야 구원도 가능합니다.”

“그분이 진짜 진인이라면 곧 소문이 어마어마하게 날 테니까, 난 그때까지 기다려 보겠소.”

“그때 가면 이미 늦습니다. 서두르셔야 합니다.”

"뭘 서두르라는 거요?"

"일단 저와 함께 같이 가셔서 회원 가입을 하시고, 구원자 명부에 꼭 등록을 해야 합니다. 명부에 등록이 안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아직 늦지 않았으니 서두르세요."

“늦어도 할 수 없지, 뭐. 내 대신 다른 사람이 구원을 받아도 좋고 말이오."

"------?"

"그나저나 온난화 때문에 다들 죽겠다고 난리요. 그분에게 온난화 문제부터 해결해 달라고 하시오.”

“선생님도 아시다시피 지구가 태양을 돌 듯 태양계도 은하를 중심으로 돌고 있는데, 지금 우리는 은하계 중에서 가장 뜨거운 불의 지대에 들어섰기 때문에 날씨가 이렇게 뜨거운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하루하루가 불난 집에 살고 있는 것처럼 위험하니 빨리 탈출하셔야 합니다.”

“허허, 내가 이래 봬도 삼 계화택에서 굴러먹고 산지가 몇 억겁이나 됐소. 그런데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어디로 탈출을 한단 말이오. 그냥 이대로 살다 죽겠소.”

“에이 씨벌! 그럼 푹푹 찌는 가마솥 안에서 천년만년 잘 먹고 잘 싸십시오.”

“고맙소. 내 걱정일랑 하지를 말고 너나 잘하세요, 히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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