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속 바짝 마른 나뭇잎, 하지만 오늘도 산다

절망과 절망 속, 살아가기로 한 이유

by 김효민





처음 글을 썼던 기억이라면 초등학교 3학년 즈음이었다. 어느 학교에나 있는 백일장 행사가 있었고 나도 어느 학생들처럼 선생님이 시켰으니 원고지에 글을 써서 제출했다. 그런데 그 글이 교내에서 상을 받았다. 최우수상이었는지 장려상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 상장을 잃어버렸으니까.


어쨌든 국어 선생님이 쉬는 시간 내가 있는 교실로 찾아오셨고 그 당시 선생님의 저서였던 글쓰기 교본을 한 권 선물해 주셨다.


감사하거나 기쁘다기보다 선생님이 나를 부르신다는 것만으로 긴장했던 나는 얼떨떨한 마음으로 그 책을 받았다. 하루 종일 낯선 기분으로 책을 책상 서랍에 넣어뒀다가 집에 가지고 와서 낯선 사람을 보듯이 한참을 열어보지도 않고 표지만 바라보았다.


그렇게 앉아서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 어색한 첫 만남의 끝에서 나는 깨달았다. 내가 받은 상장의 의미와 선생님이 이 교본을 주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내가 글쓰기에 소질이 있나 봐.'


글쓰기가 좋아졌던 건 그 후의 일이다. 스스로 알아챈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가르쳐줬기에 깨달은 나의 어린 재능. '나는 글쓰기를 잘하는 사람일지도 몰라.'


시작이 그러했기에 글쓰기에 관심은 생겼지만 내가 정말로 재능이 있는지는 다른 문제였다. 마침 어릴 때의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고 그 시절 책 대여점은 동네에 서너 군데씩 있었으며 인터넷으로도 인터넷 로맨스 소설이 흥하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나는 많은 소설을, 주로 로맨스와 판타지 소설들을 읽었고 자연스럽게 그것들이 너무나도 흥미로워졌으며 나도 그런 이야기들을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재능도 열정도 그저 초등학생이었을 뿐, 어디서부터 어떻게 첫걸음을 떼야할지 몰라 아빠에게 도움을 청했다. '아빠는 어른이니까 소설을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알겠지.'


소설이 너무 재밌고 그 안의 세계들은 너무나 기발하고 생각만으로도 심장이 터질 만큼 많은 가능성들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나도 이런 글을 쓸 수만 있다면, 그렇게만 되면 나도 기발하고 무한히 확장되는 그 글 속의 세계들처럼 큰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


이 벅찬 마음을 누구라도 좋으니 알아주고 나와 함께 이 좋은 생각을 기뻐해줬으면 하는 마음으로 마침 집에 있었던 아빠에게 달려가 소설가가 되고 싶다고 했을 때 아빠는 나의 첫 꿈을 이렇게 표현했다. "소설가 따위."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렇게 대답한 건 사실 아빠가 아니라 그 당시의 젊은 아빠를 짓눌러서 입을 커다랗게 벌려도 숨이 막혀오는 무거운 생활고의 대답이었던 것 같다.


어쨌든 그날 그 대답은 아빠와 나 모두에게 상처를 남겼다. 나에게는 기대와 환상이 무너져버린 상처였고 아빠에게는 그 후로 내가 아빠에게 어떠한 꿈도 말하지 않게 되었으니 지금까지도 딸을 이해할 수 없게 되는 상처가 되었다.


그리고 곧바로 찾아온 사춘기 속에서 나는 더욱 세상 모든 일에 흥미를 잃어갔고 아무것도 되고 싶은 게 없었고 그럼에도 살아야 하는 인생이란 것에게 채무자처럼 지긋지긋하게 쫓겼다. 나의 십 대 중반부터 이십 대 중반까지의 꽃 같은 나이, 이팔청춘이라는 것은 그렇게 되어버렸다. 공부도 사람들과의 관계도 가족들과의 관계조차 주는 것도 없으면서 내게 바라기만 하는 것 같이 내 목과 심장을 졸라대는 빚쟁이들이었다.


그래도 다섯 개의 수능 과목 그 와중에 그나마 흥미가 있었던 언어영역 점수로 대학에 갔지만 출석일수가 모자라서 3학년 봄 중퇴처리가 되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첫 순간에는 '그래, 그게 왜?'라고 반응했을 뿐이었지만 머지않아 깨달았다. 이제 내가 살고 있는 이 사회가 나를 부를 수 있는 이름이 아무것도 없게 된 거다.


그 순간 갑자기 찾아온 외로움, 아니지, 아빠와의 대화가 끊어졌던 그 순간부터 늘 내 옆에 있었지만 내가 눈을 돌리고 보려 하지 않았던 그 외로움이 갑자기 내 속눈썹에 닿을 만큼 눈앞에 있었다. 그 순간 온몸에서 소름이 돋아 당장 이 방을 뛰쳐나가서 알바든 취직이든 무엇이라도 해야 했다.


외로운 건 싫었으니까. 외로움은 살아서 겪는 죽음처럼 느껴졌다. 까만 안개 같은 외로움이 가득히 찰랑거리는 집에서 드디어 나는 뛰쳐나왔다.


하지만 내 방에서 대문 밖으로 나왔다고 갑자기 모두가 나를 필요로 할 만큼 대단한 능력이 생기는 것도 아니지 않나. 번듯한 돈벌이를 할만한 경력이나 능력은 없으니 숨을 쉬고, 먹고, 잠을 자듯이 두 팔 두 다리 달린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부터 닥치는 대로 하기 시작했다.


나를 필요로 하는 일들을 찾기 위해, 내가 필요한 사람들을 찾기 위해, 그들을 통해서 나의 존재 가치를 확인받고 싶어서.


그때의 나는 태풍이 치는 어두운 바다에 떠있는 말라비틀어진 낙엽과도 같았다. 푸릇한 나뭇잎이었다 할지라도 한 번의 파도만으로 부서질 수 있는데 그 정도의 생기조차 없는 먼지 같은 것이 내 마음이었다. 일하면서 만나게 되는 고객들, 동료들, 일 그 자체와도 나는 상처받았고 매일 몇 번이라도 부서졌고 무슨 일을 하든 끝내는 도망치고 말았다. 결국 몇 년을 노력했어도 경제적 능력이나 경력, 세상 사람들이 다들 중요하다 말하는 것들 중에 나는 아무것도 이룬 게 없었다.


그래도 죽을 생각이 아니라면 살아야 했으니 내가 필사적으로 기억을 헤집어 찾아낸 마지막 희망은 글쓰기였다. '이건 나 혼자서만 하면 되는 일이고 그럴 가능성은 적겠지만... 잘되면 돈이 될 가능성이 있지.'


당연히 그런 마음으로 쓴 글이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게 할 리가 없었다. 나는 또 당연한 수순으로 좌절했고 또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그렇게 세월이 흐른다.


마지막 희망이라고 생각했던 시도마저 좌절되자 내 마음의 밑바닥이 드러났다.


그걸 본 이상 더 이상 살아있을 이유가 없을 수도 있었지만 그래도 나는 살아냈고 지금은 꽤 잘 살고 있다. 돈 걱정 안 하고 풍족하게 살고 있다는 뜻이 아니라 최소한, 외롭지는 않다.


그 지경에서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낼 수 있었는가는 앞으로 반드시 말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그 이야기들을 말하고 싶어서 글을 쓰자 생각하기도 했으니까.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스스로 거부했던 내 마음속 내 자리에, 어쨌든 지금은 잘 앉아있으니, 거긴 이제 빈 집이 아니다.


오히려 그래서 이제 글을 써보자 생각했다. 쓰는 것만으로 그치지 않고 남들에게도 다 보여주자고 생각했다.


말하자면 초대인 것이다. 내 집에 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남편도 있고 엄마도 아빠도 동생도 있고 친척들과 직장 동료들과 내 반려견들과 심지어 타인도 있을 수 있도록. 그러면 집은 더 커질 것이고 더 아름답고 품위 있는 장식을 할 생각도 들고 청소도 매일 깨끗하게 하게 되겠지. 혼자만 있는 집보다야 반드시 그렇게 되겠지.


"이것이 내가 글을 쓰는 이유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살아간다."





대한민국 90년생 여성, 직장인, 아내, 딸, 언니.
내게 다정하지 않은 세상을 다정하게 바라보고 싶은 사람.
그런 사람이 쓰는 오늘도 살아가는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