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 그래도 '일' 해야지

나를 돌보는 것보다 중요한 '일'은 없어

by 김효민



이직 한 달이 지났다. 일에 적응하기 힘들어 운동도 글쓰기도 다 내려놓은 한 달이었다. 운동 가기 싫었는데 잘됐다 했었고 글쓰기도 휴일에는 쓸 수 있겠지 생각했다.


하지만 의외로 그건 귀찮은 루틴을 빼버리는 정도가 아니라 나 자신을 내려놓는 일이었나 보다.


한 달을 채웠지만 여전히 일은 힘들다. 바쁜 와중에 눈꺼풀도 입술도 깜빡이거나 숨 한 번 제대로 들이마실 시간이 없어 8시간 내내 입은 계속 벌어져 바짝 말라버린다. 일을 마칠 즈음엔 하루 종일 들은 기계소음 때문에 새가 지저귀는 소리도 듣기 싫다.


몸과 마음의 에너지가 빨간불도 켜지 못하고 까맣게 입을 닫아버리면 채소가 뭐냐, 질 좋은 단백질이 다 뭐냐, 라면이나 빵이나 패스트푸드처럼 빠르고 자극적인 이미지들만이 뇌를 채운다.


나의 초자아는 그것들이 어차피 몸에도 좋지 않고 일시적인 충동일 것을 안다. 그러나 뒷일 따윈 생각지 않고 미쳐 날뛰려는 에고의 고삐를 쥐고 있는 것마저도 또 다른 잔업처럼 느껴지는 한 달이었다.


게다가 사흘 전에는 채칼에 손끝이 찢어져 마취 후 3 바늘을 꿰맸다. 정확히 이직 한 달째 되던 날이었고 슬슬 회복되어야 하지 않나 싶은 희망찬 봄날이었다.


하고 싶은 것도 많고 미뤄둔 일도 많았던 휴일 아침부터 병원치레를 하느라 정신을 차려보니 시간은 벌써 오후였다.


두드려 맞은 빨래처럼 기운이 쭉 빠졌다.


하필이면 손, 그것도 오른손을 베였다. 살아가려는 모든 노력들이 불편해지겠지. 먹는 것, 씻는 것, 입는 것뿐만 아니라 이 손으로 일을 할 생각이 하니 나의 마음은 한층 더 좁은 벽 사이로 몰린다. 아픈데, 아프다고 말이나 할 수 있을까?


울컥하고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밀려 나온 눈물이 눈꺼풀을 흔든다.


새로운 직장에서 어떻게든 내 자리에 매달려 있는 것만도 지금 너무 힘들어. 여기저기 지적받고 혼나고 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할지 혼란스럽단 말이야. 그런데다 내 실수로 이 통증까지 안고 내일부터는 또 아무렇지도 않게 일을 해내야 하는 거야?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해?


꼭두새벽의 알람이 아니라 창문에 해가 들 때 감은 눈꺼풀이 그걸 알고 스스로 문을 여는 아침.


채소와 자극적이지 않은 든든한 아침으로 시작하는 하루.


연료를 주입하듯 입에 쏟아붓는 식사가 아니라 음식을 씹으며 멍을 때릴 만큼 느긋한 점심과 휴식.


퇴근하자마자 침대에 방전되는 게 아니라 남은 하루를 나의 시간으로 만들 수 있도록 여유로운 마음.


하지만 한 달 내내 나를 씻고 먹이고 재우기만도 벅찬 저녁들이었다. 그건 자동차를 정비하듯 기계적인 루틴이었고 필요한 일이었을지는 몰라도 내게 '만족스러운 삶'은 아니었다.


나의 삶, 즉 나답게 살아가려면.
회사와 집안일 같은 것과는 전혀 반대를 향하는 쓸모없는 생각을 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었다.


하루의 몇 시간, 몇십 분, 몇 분 마저도 촘촘히 쪼개고 빼곡히 할 일을 채우고 그 체크리스트를 지우면서 쾌감을 느끼는 사람은 나에게 그저 성인(聖人)으로 보일만큼 존경스러운 사람이지 내가 될 수 있는 사람은 아니다. 그런 삶을 동경하기도 한 적이 있어 흉내를 내보려던 때도 있었지만 그 경험은 결국엔 자괴감과 게으른 나라는 잘못된 자의식으로 끝을 맺고 만 것이었다.


잘못된 자의식과 굳이 필요 없는 자괴감으로 몇 년을 보낸 나는 지금은 내가 그런 사람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담백하고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그렇다면 다시 나로 살아야겠지.


하지만 나다운 여유 있는 마음은커녕 오늘도 남편의 도움을 받아서야 간신히 저녁밥숟갈을 뜨고서는 먹자마자 기절하듯 잠이 들었다.


그 이른 잠을 깨버린 지금은 오후 11시 58분. 바로 다시 잠들 것 같지도 않지만 침대에서 일어나서도 할 일이 없는 공백의 시간을 다시 자괴감이 스멀스멀 차지하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자책은 이제 지긋지긋하다. 그렇게 여태껏 외면하던 나다운 삶을 어떤 식으로든 마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옆으로 누워 휴대폰 삼성노트에 손가락 타자로 이 글을 쓰고 있다. 옆에 자고 있는 사람이 있으니 화면밝기는 최소로 줄이고.


내일 출근해야 하니 계속 자야지, 자정이 넘었으니 자야지 하는 생각은 지금 하지 않을 것이다. 비장하게 결심하건대,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현실에 밀려나서도 한 달이나 기다리고 참아준 나를 오랜만에 만나는 시간이다. 그러므로 이 심야의 시간은 짧든 길든 내 수면을 아무리 대가로 지불한다한들 후회 따윈 없다.


아, 이제 좀 '사는 거' 같네!


그렇게 한 번, 묵은 숨을 뱉고 나니 낮에 들렸던 내 목소리가 또 한 번 똑같이 들려온다. 하지만 나만의 시간을 회복하고 마음이 여유로워진 걸까, 그 목소리가 낮과는 다르게 들린다.


다친 내가 다른 사람의 짐이 될까, 오히려 걱정하던 몇 시간 전의 나를 떠올린다. 정작 내가 다친 채로 일하고 있는 다른 누군가를 본다면, 그리고 그 사람이 되려 아무렇지 않은 척 일하려 하는 것을 본다면 나는 그 사람을 안쓰럽게 여길 것이고 그럴 필요 없다고 말해주었을 거면서 왜 나 자신은 그렇게 봐주지 못했을까.


나는 왜 나 자신만을 1순위로 생각하지 못했을까.


해와 달이 동쪽에서 뜨는 것만큼이나 불변의 진리 중 한 가지, "나의 고통은 세상 누구보다도 내가 가장 잘 느낀다."


잘 아는 만큼 나의 실수든 나의 오해이든 나의 장단점까지, 그 고통의 뿌리들을 정확하게 가려내 알아봐 줄 수 있는 사람은 나 자신이었는데.


속마음의 바닥, 아니 그 지하에서부터 "그래, 맞아!" 하고 이 깨달음에 반응하는 목소리가 심장을 옥죄어왔다. 조용한 밤에 눈물이 날 만큼 벅찬 목소리였다.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지는 사람이 있고 멀쩡히 걸어가다가 맑은 날 벼락을 맞고 죽는 사람도 있다. 사람은 원래 그렇게 연약하고 눈 한 번 깜빡이는 한 찰나만 지나도 살아있는 몸이 차갑게 식어버릴 일들이 세상에는 다반사이다.


그런데 마침 휴일을 맞아 반찬 좀 만들어두려다 칼에 손을 베인 것이 뭐 그리 잘못이라고. 무슨 죽을죄를 지었다고.
손이 아파 일이 느려지는 게 뭐 그리 잘못이라고 찢어진 그 상처에서 피가 멎기도 전부터 나는 그렇게 걱정했던가.


오히려 나는 잘 살아남았다고, 스스로 칭찬할 일이었다. 피가 멎지 않는 것을 보고 가까이 있는 병원으로 즉각 달려가서 치료를 받았고 먹으라는 약을 먹었고 맞으라는 주사를 맞고 하루 종일 상처를 조심해 왔다. 그렇게 나 자신을 돌보지 않았나.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을 만큼 나는 최선을 다했다.

오늘 하루, 그리고 내 삶의 어느 날이든지 간에 '나 자신을 돌보는 것.'
설령 땅이 갈라지고 하늘이 없어져버려도
'그것 외에는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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