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트라는 이름의 '진짜 위로'

식이조절을 싫어했던 내가 아직도 싫어하는 너에게.

by 김효민





내 인생에 다이어트는 이걸로 마지막, 다시는 없다는 마음으로 올해 4월부터 식이조절을 시작했다.


한 때 홍차와 스콘을 먹으러 부산에서 서울 연남동까지 혼자 먼 길을 가기도 했을 만큼 디저트와 빵에 진심인 사람이다. 나에게 디저트는 맛도 중요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디저트는 식사 후, 배는 이미 불렀지만 식사의 마무리를 조금 더 화려하게 마치기 위해 먹는 사치스러운 행위다. 그 여유로움을 제대로 만끽하기 위해서는 빵뿐만 아니라 곁들이는 차나 음료와 그들을 음미할 충분한 시간도 필요하다. 까다롭고도, 까다로운 만큼 디저트를 먹는 순간에는 어떤 생각이나 걱정에도 눈을 돌릴 수가 없다. 나를 세상에서 잠깐 하늘로 띄워주는 그 여유로움이 좋았다.


디저트뿐만이 아니라 패스트푸드 또한 그렇다.


혼자 용돈을 벌기 시작했던 스무 살 초반부터 퇴근 후 힘들거나 위로를 받고 싶거나, 평소에 무슨 우울한 일이 있는데 주변 도움 없이 혼자 추슬러야 할 때, 집으로 가자니 집에서도 설거지나 샤워처럼 미룰 수 없는 꼭 필요한 일들이 나를 기다려 쉴 수가 없을 때, 자연스럽게 내 발은 패스트푸드 점으로 향했다.


우선 주문이 쉬웠고 어린애 입맛에 그 달고 짠맛은 당연히 좋았고 혼자 조용히 먹고 있으면 아무도 나를 건드리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나 혼자 있는 공간은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의외로 바로 그 점이 너무나도 위로가 되는 부분이었다.


그러니 내가 갈 곳이 없다고 느끼거나, 혹은 어디에서나 나를 필요로 하는 것 같아 부담스러울 때 내 몸이 먼저 나를 이끄는 곳이 거기였다는게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다.


처음 맥도널드에 갔었던 어린 날에서부터 서른 중반에 다다른 올해 초까지 거의 삼십 년을 살아오면서 혼자일 때의 나는 이 두 가지 방법으로 스스로를 달래고 추슬렀다.


하루 종일 참았던 한숨을 처음 한 번만이라도 크게 내쉴 수 있는, 집도 외부도 아닌 또 다른 도피처. 나에게 다이어트란 이미 나의 일부가 된 그것을 멀리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결심을 더는 미룰 수 없는 순간이 오고야 말았다.


하루 정도 길게 고민하고서, 고개를 들고 작별을 고했다. 허전한 마음을 벌써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하지만 결심했다면 해내야지.

마지막 다이어트라고 결심한 만큼 단순히 안 먹고 무작정 참는 식이조절이 아니다. 제대로 한 번 해보기로 했다.


포만감과 자제 없이 먹는 충동을 제어하기 위해 하루 중 최소 한 끼에는 꼭 채소를 보충한다. 가능하면 세끼 전부 먹는다. 간단하게 방울토마토나 냉동채소라도 좋다.


그다음으로 단백질을 매 끼에 포함한다. 여의치 않다면 두유나 아몬드라도 먹는다.


탄수화물은 최소로 먹고 집에서 밥을 지을 땐 현미를 절반 섞는다.


그리고 튀김, 밀가루, 단 것, 짠 것은 가능하면 먹지 않는다. 너무 피곤하거나 거절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당연히 덜 먹어야 하는 것들도 있다.

아무리 좋아하는 음식을 배가 터질 때까지 밀어 넣고 싶어도 치킨과 삼겹살은 먹은 조각 개수를 세어가며 배고픔이 사라질 때까지만 먹고 피자는 한 조각이라도 남긴다. 빵이나 디저트류는 식이조절을 잘 지킨 열흘 중에 하루 한 끼로, 가장 먹고 싶은 것으로 한 조각 정도.


그렇게 두 달을 꽉 채우고 나니 기분이 나쁘면 무조건 빵집으로 향했던 나는 이제 전생처럼 멀어졌다. 졸리거나 당을 떨어질 때 찾았던 간식들은 아메리카노와 물로 달랜다. 고작 두 달일 뿐이었는데.


과연 정말로, 처음에 생각한 것처럼 메마른 사막을 지나는 듯한 느낌의 두 달이었을까?


5kg이 빠졌고 몸의 붓기와 염증들이 사라져 아침이 가벼워진 것 정도는 당연한 변화였다. 나조차도 생각지 못했던 가장 놀라운 것은, 그 두 달 동안 나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내 몸이 내게만 전하는 소리 없는 목소리가 들린다.


아침식사보다 잠을 택했던 나. 그 전날 출근하기 싫어서 늦게 잤으니 당연히 밥보다 잠을 택하는 게 옳다고 생각했지만, 미룰 수 없이 출근해야 하고 움직여야 하는 내 몸은 당장 쓸 수 있는 열량을 원하고 있었다.

똑같이 잠이 부족한 날이었지만 억지로라도 몸을 일으켜 채소와 두유로 아침을 챙겨 먹으니 알게 되었다.


아침을 챙겨 먹질 않았으니 자연스럽게 질보다 양으로 많이 먹게 되었던, 아니면 또 잠에 밀려서 아예 건너뛰곤 했던 점심.

그러니 오후에는 폭식한 그 많은 양을 소화시키느라 피곤해져서 오히려 일에 소홀하게 되던가, 쓸 수 있는 열량이 없어 무기력했었다.

그러나 사실 아침처럼 한 두 주먹의 채소와 단백질만으로도 저녁까지 충분하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게다가 식곤증으로 졸리지도 않았고.


아침과 점심에 못 먹은 만큼 한꺼번에 먹어치웠던 저녁은?

저녁에 많이 먹는 게 좋지 않다는 건 이미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일이었지만 참을 수가 없어서 죄다 먹어치워 놓고 꼭 후회도 하곤 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어떤 메뉴든지 어울리는 샐러드나 채소 반찬을 꼭 함께 내놓고 그것을 곁들여가며 맛을 음미하면 과식하기 전에 배가 불러온다. 메뉴에 따라 근사한 풀코스로 느껴지는 때도 있었다. 이전보다 먹는 양은 절반으로 줄었는데도. 당연히 과식했다는 후회도 없다.


침대에 누웠을 때 생각나는 야식들은 누구나 쉽게 생각하는 것처럼 배가 고파서 그랬던 게 아니었다.

따뜻한 차 한 잔이나 혹은 우유 한 잔, 그조차 귀찮으면 누워서도 할 수 있는 스트레칭과 마사지를 하면서 깨달았다.

오늘을 버티는 사이 생겨났던 수많은 자책과 후회들, 잠을 이루지 못하게 만드는 다음날에 대한 걱정, 혹은 옆에 누군가가 있는데도 숨구멍을 덮어오는 외로움이었다는 것을.


지금도 자극적일 만큼 풍부한 맛에 푸짐한 음식이 위로가 될 때도 분명 있지만, 음식이 아니라 다른 해결책이 필요했던 순간들을 내 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된 지금 뒤늦게 깨달았다.


감자튀김과 콜라보다, 나에 대한 자책을 거두는 것.


아이스크림과 휘핑 올린 핫초코보다, 나를 잘 아는 사람에게 내 솔직한 마음을 부끄럽도록 전부 꺼내놓고 공감받고 이해받는 것.


청양고추 잔뜩 넣은 라면 두 봉지보다, 간단하게라도 얼른 씻고 종일 서 있어야 했던 다리를 한 번 더 주물러주고 고요한 음악 속에서 일찍 잠에 드는 것.


삼시 세끼 꼬박꼬박, 채소는 많이, 간식은 적게, 되도록 가공이 덜 된 신선한 것들로,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먹고서만 살 수 있는가 생각했는데. 나는 절대 그렇게 못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하자고 생각하고 정말 그렇게만 했을 뿐인데 그전에 걱정하고 무서워하던 게 허무할 만큼 너무나 쉬운 일이었다.


내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 내 몸에 귀 기울이고, 나를 돌아보고, 아니다 싶은 곳부터 하나씩만 옳다는 길로 움직이기만 했을 뿐이다.


씹고 뜯고 먹는 자극으로 나를 멈추게 하는 건 살면서 어쩌다 한 번 그럴 수는 있지만 평생을 함께 할 방법은 아니었다. 그 결과 나는 살이 쪘고 건강이 안 좋아졌고 나의 삶으로 원했던 어떤 것들을 포기해야만 했다.

그렇게 살지 않아도 되는 길이 분명 있었던 것이다. 외롭고 지치고 슬프고 방황할 때 손에 빠르게 닿는 자극적인 음식만으로는 결코 해결책이 될 수 없는 문제들 속에서.


억지로라도 그 음식들을 내게서 떼어놓고 나서야, 비로소 보이게 된 또 다른 길.

앞으로의 내 인생에 새롭게 열린 그 길에는 이름이 있다.

다이어트라는 이름의 '진짜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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