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페코 Jul 07. 2022

밤 10시에도 밖이 환한 유럽의 여름

에어컨 없어도 아직 살만합니다



원래 여름을 그렇게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겨울은 추워서 싫고, 여름은 습하고 더워서 싫고. 좋은 건 짧은 봄뿐인가 싶기도 한데 그나마 여름은 하루가 길어서 야근하고 퇴근한 후에도 햇빛이 쨍쨍하니 밖에서 오래도록 뭔가를 할 수 있어서 설렌다.


그런데 유럽의 여름은 한국보다 해가 더 길다. 한 7시나 되었으려나 하고 시계를 보면 10시쯤. 놀다가 정신 차려보면 잘 시간이 훨씬 지나서 여름이 오니 잠을 많이 못 자는 것 같다.


어제 저녁 정원에서 @21:30



프랑스에 오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인스타그램에 밤 9시에 하늘 사진을 찍어 올리면서 프랑스의 낮은 이렇게 길다고 놀랍다는 스토리를 올렸더니 스웨덴에 있는 동료가 11시에도 환한 스웨덴의 하늘 사진을 보내왔다. 으악. 서유럽도 놀라운데 북유럽은 더하네. 이래서 암막 커튼이 필수구나.



창마다 나무 블라인드 ‘볼레’가 달려있다 @샹베리


에밀리 파리를 가다를 보면 파리의 오래된 건물에는 에어컨이 없다. 실제로 오래된 것에 병적일 정도로 집착하는 프랑스는 각종 규제로 오래된 건물들을 보호하고 있어서 에어컨을 설치하기가 쉽지 않다. 실외기 설치를 위해 벽에 구멍을 뚫을 수 없거나, 도시 미관 문제로 실외기는 보이지 않는 곳에 설치를 해야 하는데 이런저런 규제를 피해서 에어컨을 설치하는 것이 하늘의 별따기라 새로 지은 건물이 아니라면 보통 에어컨이 없다고 보면 된다. 참고로 방충망도 없다. (그래서 직접 만들어 쓴 사람)


그래도 프랑스는 여름에 습하지 않고 건조한 편이라 여름에도 그늘에 들어가면 온도가 확 떨어진다. 아침에 서늘한 바람이   창문을 열고 환기를 했다가 해가 들어오기 시작하면 창문이랑 문에 달린 볼레를 닫아 햇빛을 차단하고 실내에  공기를 가둬서 동굴처럼 지낸다.


출퇴근길에 지나는 해바라기 밭


밖에서 허덕거리면서 돌아다니다가도 집에 들어오면 시원해서 사실 견딜만하다. 작년 8월에는 남프랑스의 철로가 녹을 정도로 더웠다는데, 여긴 알프스 근처라 그렇게 덥겠나 싶기도 하고. 7월인데도 저녁에 남편이랑 마당에 앉아있으면 찬기운이 돌아서  정도만 돼도 아주 살만하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다음 주에는 36도까지 올라간다고 하니 내가 지난주에 무슨 소릴했냐며 울면서 글을 쓸지도..


퇴근하면 다시 열어두는 편


어제는 저녁 9시가 지나서 자전거를 타러 나갔다. 동네 한 바퀴를 도는데 한 시간 정도 걸리는데 그 시간에도 밝은 데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서 운동하기 좋았다.


남편이랑 이렇게 작은 동네에 사는 사람들은 대대로 여기서 태어나고 자라서 온 동네 사람들이 서로 다 잘 알고, 여하튼 답답하지 않을까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도 눈앞에 막힌 것 없이 탁 트인 곳에서 공기청정기가 필요 없는 깨끗한 공기를 마시고 있으니 ‘아 이렇게 살면 뭐가 더 필요하겠어’하는 생각도 들었다.


당나귀를 만났던 길


퇴근하고 환한 밤에 자전거를 타는 일상이 언제까지 즐거울지 모르겠지만 아직은 신난다. 7월이 이렇게 상쾌할 수도 있구나 :)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