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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아 Jul 03. 2022

프랑스에서 고양이와 사는 법

외출 냥이는 아니 되오




방충망이 없다니. 생각도 해보지 못한 부분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작은 마을은 산 밑에 있고 건조해서 30도가 넘는 날에도 실내에 있으면 선풍기 없이도 견딜 만 한데 문제는 프랑스의 다른 집들처럼 방충망이 없다.


모기가 거의 없는 동네라 방충망이 없어도 된다고 집주인은 껄껄 웃으며 말했지만, 모기가 문제가 아니라 파리며 나방이며 심지어 도마뱀까지.. 이사 온 날 저녁에 문을 잠시 열었다가 몰려들어온 벌레들 때문에 나도, 남편도, 그리고 고양이들도 밤새 잠을 설쳤다.


문을 열면 맞바람이 쳐서 정말 시원한데 벌레랑 고양이들 때문에 문을 열 수가 없다니 이게 무슨 변이란 말인가.


한국에서 들고온 방묘창이 맞을리 없다


한국에서는 아파트에 살았으니 당연히 방충망이 설치되어 있었고, 우리 고양이들의 하루 일과는 아침에 집사들이 베란다 문을 열어주면 방충망 앞에 코를 대고 킁킁 거리며 바람 냄새를 맡는 것부터 시작했는데, 프랑스에서는 그런 안전장치가 되어 있지 않아서 창문 여는데 제약이 많다.


한국에서 방묘창을 이고 지고 왔으나 어마어마한 층고와 그에 걸맞은 커다란 문들 때문에 싸들고 온 방묘창들은 애물단지로 전락한 지 오래. 그나마 햇빛 가리는 나무문을 살짝 열어두면 그 사이로 바람이 조금 들어와서 코를 내밀고 바람에 실려오는 꽃향기며 풀내음을 맡는 녀석들이 어찌나 안쓰럽던지. (이 여름에 문도 활짝 못 열고 지내는 집사들도 안쓰럽기는 마찬가지)


이게 무슨 냄새야?
문 열어주세요


중문도 없으니 외출하고 돌아와서 문 열 때마다 조마조마. 사실 이 동네는 주변이 죄다 밭이라 나가봐야 갈 데도 없지만, 여우나 여타 야생동물들을 만나거나 밭에 쥐약 뿌려둔 거라도 집어먹으면 어쩌나 싶은 노파심에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


친정 부모님도 시댁도 모두 고양이를 반려하는데 우리가 떠맡긴 고양이들을 애지중지 키우시는 친정아빠는 절대 고양이들 못 나가게 조심하라고 신신당부를 하시는 반면 외출 냥이 집사 시어머니는 좀 나가면 어떠냐며 우리의 육묘 방식을 이해하지 못하신다.


고양이는 개와 달라서 점프하면 못 가는 데가 없으니 천장에 달린 창이라도 맘 놓고 열어둘 수가 없어 이 더운 여름에 눈물겨운 감금 생활을 하고 나니 너무 답답해서 월급이 들어오자마자 방충망을 셀프로 만들기로 결심했다.



조금만 기다려바


프랑스에서는 사람을 고용해서 뭔가를 하는 게 너무 비싸고 시간도 많이 걸리다 보니 어지간한 집수리는 사람들이 셀프로 자재를 사서 직접 해결하는 경우가 많고, 재료를 살 수 있는 매장들이 동네마다 하나씩은 꼭 있다.


Brico marche, Castorama, Weldom 이런 곳 들인데 전문분야가 좀 미세하게 다른 것 같기는 하지만 집을 고치는데 쓸만한 건 어지간하면 다 구할 수 있는 편. 우리는 창틀에 끼울 방충망을 만들거라 적당한 두께의 나무, 못, 그리고 그물망을 사 왔다.




2m가 넘는 나무 막대기를 톱질해서 남편이 자르고 못질해서 프레임을 만든 뒤에 그물망을 씌웠는데 막상 다 만들고 보니 벌레는 막아도 우리 고양이들 발톱을 못 견딜 것 같아 알루미늄으로 된 망을 추가로 덧씌웠다.



짜잔!!


무거운 나무문을 열고 방충망을 걸어두니 냉큼 올라가 보는 녀석들. 좀 어설픈 방충망이기는 해도 당분간 쓰는 데는 문제없을 것 같다.


방충망 하나 성공한 뒤 자신감이 붙은 남편은 나중에 한국 가서 우리가 셀프로 집을 짓자는 이야기까지 했다. 어이 남편.. 너무 멀리 가지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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