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미니꾸 Sep 20. 2023

[playlist 10] : Skinshape

느린 삶의 첫걸음


정말이지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이다. 우린 너무 빠르게 달리고 있다. 쉬지 않고 돌아가는 러닝머신 위의 다이어터들처럼말이다. 더 빨리, 더 많이, 더 강하게가 어느새 우리 현대인들의 미덕이 되어버렸고 신념이 되어버렸다. 어느새 느리게, 부드럽게, 더 작게는 소리조차 낼 수 없을 정도로 무시받게 되어버렸다. 한가한 것은 바쁜 것이 되었고, 죄악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바쁘게 사는 우리는 무엇을 얻고 있는가. 인생이 그만큼 풍요로워지긴 했는가. 밤하늘의 별을, 지는 노을을, 푸른 하늘의 뭉게구름을 을 보지 못하고 삭막한 콘크리트더미 위의 삭막한 감수성에 남은 것은 일에 찌든 몸만큼이나 찌든 사회가 아닌가.


한자 쉴 휴(休)는 사람이 나무에 기대고 있는 모양이다. 그것은 묵힘이고 삭힘이다. 느림은 따뜻하고, 속도는 차갑다. 느림은 침묵이지만, 속도는 말이다. 말을 배우고 나서야 침묵을 배울 수 있다. 말 배우는 데는 3년 침묵을 배우는 데는 30년이 걸린다. 차가운 말로써 어찌 나의 따스한 마음을 전달할 수 있을까. 느림은 고독과 반성과 은둔과 명상의 시간인 셈이다. 느림은 복잡함이 아니라 단순함이며, 덧셈이 아니라 뺄셈이다. 느림은 용서이고 자비이며, 사랑이다. 속도는 화냄이며 갈등이다. 버림과 욕망. 비움과 소유. 연대와 경쟁


수많은 책들은 느리게 살기 위해


 느리게 사는 지혜로 자기만의 시간을 가질 것,

신뢰할 만한 다른 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것,

무의미할 때까지 반복되는 것을 받아들일 것,

꿈을 꿀 것,

기다릴 것,

 그리고 한가로이 거닐기를 제안한다.


우리가  한가로이 거니는 것은 시간을 중단시키기 위함이 아니라 시간에 쫓겨 몰리는 법 없이 오히려 시간과 조화를 이루기 위한 것이다. 그것은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움을 의미한다. 쓰지 신이치라는 작가는 느린 삶의 첫걸음이 산책을 되찾는 일이라고 했다. 목적지에 도달하는 곧게 뻗은 길을 버리고, 샛길로 들어가 멀리 돌아가면서 이것저것 살펴보는 것이라 하였다. 미래는 불확실하다. 그래서 불안한 것이다. 생태계 파괴와 심각한 이상기후가 확실할 뿐이고, 고령화 사회가 온다는 것도 확실할 뿐이다. 빨리 가 본들 그것들과 만날 뿐이다. 많은 미래학자가 사회의 변화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만, 자연의 변화에 대해서는 거의 침묵하고 있다. 엘빈 토플러는 〈권력이동〉에서 문명사는 빠른 것과 느린 것의 대결이었고, 빠른 것의 승리로 끝났다고 하였다. 밀란 쿤데라는 자본주의와 느림은 상극이라고 했다. 자본주의에서 느리게 가면 패배자가 될 것인데, 그럼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우주의 지름은 일천억 광년이다. 빨리 가 본들 어디까지 가겠는가. 힘들지만 빠른 속도에 저항해야 한다. 느린 것이 아름답다.


그렇게 난 오늘도 늘어져 하루를 보내련다.


작가의 이전글 [playlist 9] : DeBarge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