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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미니꾸 Sep 19. 2023

[playlist 9] : DeBarge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지금의 내 또래 친구들이라 후배 동생들에게  알렉산드르 푸쉬킨이 누구냐고 물으면 금방 기억하지 못할 수 있다. 하지만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 말라’라는 시는 대번에 기억할 것이다. 그 시의 주인이 푸쉬킨이다. 러시아 문학의 대표적인 작가들을 떠올리면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를 가장 먼저 떠올릴 것이다. 실제로 두 작가들은 한국인에게 가장 익숙한 러시아의 문학가이고, 러시아 문학의 대표작으로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와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을 꼽는다. 그러나 러시아 문학의 아버지라는 별명은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 두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다. 러시아 문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사람은 바로 '푸쉬킨'이다. 



 러시아의 대문호 중 하나이 푸쉬킨은 20대에 7년간 유배지 생활을 하였다. 북쪽 시골 영지에서 유배가 끝나갈 무렵 썼던 한 편의 짧은 시가 바로 그것이다. 26살의 푸쉬킨은 이웃에 살던 열다섯 살의 귀족 소녀에게 이 시를 써주었다. 선전수전 다 겪은 어린 청년이 여리디 여린 나이의 소녀에게 인생 조언을 해 준 것과 마찬가지다.  머지않아 들이닥칠 인생의 거친 폭풍우는 상상도 하고 있지 못한 채 마냥 행복하고 밝기만 한 어린 처녀가 안쓰러웠을 것이다. 시는 무작정 희망을 노래하고 있지만은 않다. 앞부분만 따로 떼어내 본다면 희망가로 들리겠지만, 끝까지 읽는다면 이 시는 절망가에 가깝다. 현재는 괴로울 수밖에 없다는 직설적인 인생 고해 때문이다. 오늘을 견디면서 꿈꿔온 미래조차도 막상 현재위치에 오게 되면 꿈꾸던 것과는 반대로 괴로울 수 있다는 것이다. 삶이 나를 속였다는 배반감이 바로 그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푸쉬킨은 모두 다 지나갈 것이다라는 덧없는 치유력에 기대어 현재를 버티라 말한다. 과거가 된 아픔과는 화해하라 말한다. 지나간 것이라고 어찌 말할 수 있겠는가. 지난날의 철없던 회환이 혼탁한 숙취처럼 괴롭다고 푸쉬킨 스스로가 말하지도 않았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지나간 모든 것들을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것이 삶이고,

삶 자체가 소중하기 때문이다. 




늘 뒤통수를 치는 행복이라는 녀석에게 오늘도 속아버린다. 열심히 살다 보면 잘은 몰라도 행복의 언저리에 다가갈 것 같았는데 이제는 이게 행복인지 불행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보니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어”라는 탄식이 나오는데 무엇이 문제인지 바로잡기도 어렵게 된다. 이럴 때 나오는 말이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다. 무엇이 우리를 속이는 것일까? 삶이, 행복이, 나 자신이? 무엇도 탓하지 말라고 했으니, 그저 받아들이고 사는 것이 인생인가? 인류의 출현과 동시에 행복에 대한 고뇌는 시작되었다. 어떻게 해야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그런데 이것보다 더 근본적인 질문은 “행복은 무엇인가?”이다.  우리는 왜 행복하지 않을까? 평생 행복을 위해 사는데 번번이 행복에 배반당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시인 푸쉬킨의 말대로 우리는 속고 있다. 미래에는 행복할 것처럼 꾀는 속임수에 넘어가고 있다. 그런데 그 사기꾼의 정체가 우리 자신이라는 것. 여기에 반전이 있다. 그대를 속이는 것은 삶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뇌인 것이다.

행복할 것이라고 믿었는데 미래 예측은 자꾸 빗나간다. 무언가 예측대로 돌아가지 않을 때 내 잘못이 아니라 뇌의 한계라는 것을 알아채야 한다. 예컨대 “우리는 시간을 상상할 수 없다.” 미래는 상상을 통해 예측되는데 “시간은 구체적인 사물이 아니라 추상적인 것이므로 상상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생각은 현재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  오늘이 좋으면 어제도 좋았고, 내일도 좋을 것이라고 무심코 생각하는 것이다. 인간의 뇌는 당연히 현재의 경계를 뛰어넘지 못한다. 과거를 회고하고 미래를 상상하는 뇌의 영역은 현재의 지각을 담당하는 영역이다. 회고와 상상, 지각이 동일한 뇌의 영역에 일어나기 때문에 우리는 과거, 현재, 미래를 혼동하고 착각하는 것이다. 우리의 뇌는 현실과 주관적 경험을 혼동하고,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자기 합리화에 능숙하다. 결론적으로 인간의 기억, 판단, 예측이 매우 불완전하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헛되이 미래를 예단하고 뜻대로 되지 않는 불행한 인생이라고 한탄하며 산다.



  빨리 자신의 불완전함을 인정하던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우리가 미래를 예측하지 못한다면 앞서 간 경험자의 조언을 참고하는 것이 현실적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귀를 열어 들어야 하는 것이다. 입은 닫고 귀를 열려하지만, 참 쉽지가 않다. 우리의 실수를 줄이는 순간, 행복은 조금 더 가까이 다가올 것이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진짜 와닿지가 않네. 행복은 내 근처에 있다는 말....... 어디 있는 거야 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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