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위를 달리다
시마나미 해도(しまなみ海道).
일본 에히메현과 히로시마현을 잇는 해상 자전거 길이다.
‘섬’과 ‘파도’라는 뜻에 ‘바닷길’이 붙어, 이름만으로도 푸른 풍경이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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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 이마바리
시코쿠 섬은 오래전 유배지로 쓰였던 곳이다.
위치가 애매해 개발은 더뎠지만, 그만큼 고즈넉하다.
그 안의 에히메 현. 귤이 유명하고, 이마바리 시는 사이클링의 성지라 불린다.
역 근처에는 자전거가 가득하다.
호텔 입구에도, 택배 트럭에도.
짐 없이 와도 괜찮다. 좋은 자전거를 빌릴 수 있으니까.
이마바리역에서 택시를 타고 출발지로 향한다.
마치 1980년에 멈춘 듯한 차.
손으로 돌려 올리는 창문, 대롱대롱 달린 낡은 달력, 달달거리는 엔진 소리.
묘하게 정겨운 첫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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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위의 길
출발지에 서자, 탁 트인 쿠루시마 대교가 눈에 들어온다.
자전거를 빌려, 각자 취향대로 고른다.
페달을 밟으면 오르막이 시작되고, 바닷바람이 세차게 불어온다.
양쪽도, 발아래도 모두 바다.
섬과 섬을 잇는 현수교 위를 달린다.
일직선이라 지루하려는 순간, 나선형 내리막이 이어진다.
작은 섬에 내려 잠시 둘러보고 다시 다리를 건넌다.
자전거로 타는 롤러코스터.
기계와 도시가 아닌, 숲과 바다에 둘러싸인 코스라 더 다채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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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휴게소
길 끝에서 오래된 휴게소를 만났다.
출출해 들른 곳에서 만난 건, 감자튀김.
바삭함과 짭짤함이 절묘하다.
아이스크림에 찍어 먹으니 멈출 수가 없다.
오늘의 운동을 다 날려도, 한 번 더 주문할 수밖에.
“월드 베스트 후라이!”
내 칭찬에 매점 주인은 웃으며 길 안내까지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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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 그리고 자유
두어 시간이 금세 지나고 해는 짧게 기울었다.
버스를 기다리는 시골의 30분은 끝없이 느리다.
뒤편에는 상조회, 하늘엔 금세 몰려온 구름.
빗줄기가 쏟아질 즈음, 겨우 버스가 도착했다.
해 질 녘 풍경은 구름에 가려 사라졌지만,
자전거가 준 감각은 또렷했다.
한국이 아닌 곳에서,
내 의지로 움직이는 탈것을 타는 자유.
버스나 지하철이 아닌, 내 발로 선택한 길을 가는 경험.
자전거는 나에게 자유를 준다.
걷는 속도와는 다른 세계를 보여주고,
조금 더 빠르게, 조금 더 넓게 나아가게 한다.
달리며 알았다.
내 발로 갈 수 있는 세상은 생각보다 훨씬 넓다는 걸.
뛰어서는 하루 42km도 버거울 테지만, 자전거라면 70km도 갈 수 있다.
실제 거리가 아니라, 두 배쯤 확장된 세계관.
그 확장된 세계가 좋다.
나는 내 힘으로 꽤 멀리 떠날 수 있다.
자전거가 알려준 자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