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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입문 Mar 01. 2020

[야알못 탈출-030] SK와이번스에 대한 기억

#SK와이번스 #김광현 #김성근  #10구단뽀개기 #인천야구

그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10구단을 객관적으로 설명한다는 것은...


야구를 보는 이상 이미 관심은 내 팀에게 쏠려있다. 객관적으로 설명하려고 워드파일을 열었지만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처음에 남자친구가 나에게 물었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자신 있어 정말? 다 공평하게 소개할 자신이?" 좀 모자라지만 기본적인 것들은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불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패배를 인정한다.


누구나 떠올릴 만한 '객관적인' 것들을  쓰자면 지금 당장 KBO와 네이버에 검색하면 다 나온다. 구단 홈페이지 앞에도 그 설명이 장황하게 써져있다. 그렇다고 내가 생각나는 이야기를 써보자니 이 팀이랑 싸우다가 우리가 졌던 일. 이 팀이랑 싸우다가 혈압 솟은 일 정도밖에 생각이 나지 않았다. 당황스러웠다. 몇 번을 썼다가 지웠지만 객관적이면서 나만의 포인트를 잡는 "남의 팀"이야기는 아직 지금의 내 수준으로는 쓸 수 있는 글이 아닌 것 같다.


안 되는 건 안 되는 것으로 포기하고, 그저 생각나는 일들을 적어보기로 했다. 이왕 10구단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기로 했기 때문이다. 객관적이고 정확한 최신 SK와이번스 이야기는 아마 다른 SK팬 여러분들이 자세하게 써주실 것이라 믿으면서.



다른 팀을 응원하는 입장에서, SK 와이번스 하면 이런 것들이 떠오른다.

김광현, 김성근,  잘해서 얄미움, 고기 굽는 소리와 잔디밭...




1. 김광현

잘한다고 하면 떠오르는 투수가 있다. 그저께부터 KKK를 찍고 있는 남자. MLB에 갔다고 스토브리그 내내 혼자 이름을 날리고 있는 남자. 잘생겼고 몸은 늘씬한데 심지어 MLB에 간 남자. 닥터K 류현진의 친구이자, 애석하게도 류현진은 가지지 못한 (안 가진 것으로 정정한다.) 그 몸매를 가진 남자. ‘김광현’이다.


이제 그는 MLB로 갔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김광현. 묘한 안도감


동갑이었다고 들었다. 당시- SK의 김광현, 한화의 류현진은 동갑내기였다. 무서운 신예, 괴물 같은 신인이라는 뉴스 기사가 계속해서 나왔던 것 같은 기억이 난다.



그중에 단연 실력과 멋진 몸매를 가진 김광현은 많은 여성 팬을 사로잡았다. 독특한 투구폼도 한몫을 했다. 잘 생겼는데, 멀리서 알아보기 좋게 희한한 투구 폼을 가졌다. 멀리 날아 차기를 하는 것 같은 모습이다. 학이 푸드덕 거리는 느낌이기도 하다. 다리도 긴데 요란하게 던지니까 문학구장 멀리서도 아 김광현이 던지는구나 알아볼 수 있었다. ‘아 씨... 왜 오늘 선발 확인도 안 하고 예매했지.’ 같은 기분을 느끼면서 말이다.


그 남자가 마운드에 있으면 우리 팀은 자주 졌다. 무기력하게 방망이 한번 휘두르지도 못하고, 점수도 크게 내지도 못하고 방망이가 아니라 물방망이를 든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 느낌을 요즘 메이저리거들이 느낀다니 어쩐지 으쓱하다. 봤냐, 그 남자가 우리를 그렇게 괴롭히던 김광현이다. 그리고 묘한 안도감도 있다. 여하튼 한국 야구엔 김광현이 없는 것이다.



2. 김성근

그리고 또 떠오르는 남자가 있다. 필요할 때마다 귀신 같이 김광현을 마운드에 올리며 우리 방망이를 물방망이로 만든 또 다른 남자. 채병용에 있는 투수 없는 투수를 다 올리면서 벌떼야구로 우리를 울리던 그 아저씨. 당시에 야신으로 불리던 감독 '김성근'이다. 왜 그렇게 얄미웠는지 모르겠다. 내 기억 속에서 '김성근'이라는 이름은 늘 얄밉게 웃음 짓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2007-2008년의 SK 리즈시절 김성근 감독


뭐라 말하건 그는 내 눈앞에서 케이크 위에 딸기를 먹어버린 사람이었다. 우리 선수들이 1년 내내 고생하며, 이기고 이겨 겨우 올라온 한국시리즈에서 가장 맛있는 부분인 '우승"을 날름 먹어버렸다. 그렇다. 아주 못된 아저씨였다(역시 객관적이긴 틀렸다).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아닌지 모를 이야기들 그 가운데 김성근이 있었다. 잊을만하면 ‘독한 아저씨’ 이슈로 여기저기서 나타났다. 비시즌훈련 이슈가 뜰 때도, 한화 감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슈에 중심에 서있었다. 그 이야기를 보면서 '역시 김성근.' 이라며 무심코 기사를 지나쳤다. 진위의 여부는 '독하고 얄미운 사람.'으로 기억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럴 때 보면 인간은 이성의 동물이라기보다는 감정의 동물처럼 느껴진다.


3. 잘해서 얄미웠던 -벌떼야구, 지옥훈련

김현태: 초구 공략! 투수가 잡았습니다. 홈에 아웃! 1루에~ 1루에 아웃! 한국시리즈, SK의 우승입니다! 2년 연속 SK의 우승.
이용철: 결국 야구가 이렇게 끝나네요~
김현태: 그렇습니다. SK가 2년 연속, 한국시리즈를 우승합니다.


십수 년 야구를 좋아하면서 중요한 대목마다 그들이 두산베어스의 앞을 막아섰다.. 덕분에 해묵은 쌉싸름한 미워하는 마음이 있다. 입시를 하다 나는 떨어지고, 너는 붙은 것 같은 그런 미움이다. 이제는 가물가물하지만 마음 한편 어딘가 남아 있는 쌉싸름한 맛의 그것. 당신들 덕에 2007-2008년 2등의 자리에서 쌉싸름하게 한국시리즈의 패배의 맛을 보았다. 다 된 밥에 재가 그런 맛이 아니었을까.



그때마다 있는 투수, 없는 투수가 다 올라와서 정신을 하나도 없게 만들었었다. 중공의 인해전술 마냥 투수를 퍼붓는 작전, 벌떼처럼 마운드에 투수들이 올라간다 하여 그 작전의 이름은 '벌떼야구'였다. ‘


독하게 훈련한다.'는 것도 SK를 생각하면 자주 나오는 이야기였다. 스프링캠프 일정을 당겨서 지옥훈련을 한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이게 바로 비시즌훈련 이슈인데 -상세는 비시즌훈련편 참조-논란이 계속되는 이 이야기의 시작은 2007년의 SK일지도 모르겠다.  


4. 연안부두

SK는 인천을 연고지로 한 구단이다. 인천은 항구이고 자연스럽게 배가 떠오른다. 8회 때 진행하는 '연안부두'응원은 상대편 입장에서 봐도 찰떡 지다.


"바람이 불면~ 파도가 울고~ 배 떠나면 나도 운단다~ 저무는 연안부두 외로운 불빛~ 홀로 선 이 마음 달래주는데~ 말해다오~ 말해다오~ 연안부두 떠나는 배아~"


https://youtu.be/KQqScNRJje8?t=25

8회 공격 때마다 하는 연안부두 떼창



그리고 우리의 패배가 담겨있던 2007, 2008 엠블럼에 배가 있는 건 필연적인 것일지도 모르겠다. 보는 입장에서는 영 배알이 꼴리는 일이지만 말이다. 응원 타워를 큰 배처럼 꾸미기도 한다. 왠지 모르겠지만, 문학구장은 바다 냄새가 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5. 고기 굽기 좋은 구장(+ 스토브리그)

고기를 구울 수 있는 구장은 오픈할 당시에는 정말 센세이셔널한 곳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문학구장(SK행복드림구장)은 새롭게 증축된지도 꽤 지났지만 아직까지도 내 머릿속에는 ‘새로 만든 좋은 구장’으로만 떠오른다.


한 번은 봉사활동으로 정신적 아픔이 있는 청소년들과 야구를 본 적이 있다. 넓은 잔디밭에서 고기를 구워 먹으며, 캐치볼까지 하니 여간 즐거워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 개방감, 파티를 하는 것 같은 즐거움. 그 날의 기쁨은 내 마음속에도 깊이 남아있다. 승패의 행방과는 상관없이.  



https://www.youtube.com/watch?v=5j4opomnKcw

스토브리그 백승수 단장님과 문학구장


이제는 "스토브리그"의 배경이 되는 구장으로도 기억이 날 것 같다. 아무리 팬이라도 시즌이 끝난 이후인 겨울에 구장에 들어갈 만한 기회는 없다. 그래서 겨울에 구장이 어떻게 사용되는지는 잘 몰랐었다. 드라마에서 나온 구장에 비닐막이 쌓여있는 장면은 살짝 충격적이었다. 저렇게도 사용할 수 있구나 싶어서.




KBO 팀 소개

https://www.koreabaseball.com/About/Etc/TeamInfo.aspx

SK와이번스

https://www.skwyverns.com/Wyverns/main

나무위키 SK와이번스

https://namu.wiki/w/SK%20%EC%99%80%EC%9D%B4%EB%B2%88%EC%8A%A4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이다.   


SK를 아련하게 기억할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들은 그저 얄밉고 화나는 적군이었다. 김광현도 밉고, 채병용도 미웠다. 잘 쳐서 호쾌한 야구를 볼런가 싶을 때는 벌떼처럼 센 투수를 마운드에 무자비하게 올렸다.


이제 1등 한번 해보나 싶으면 무참히 2등으로 끌어내렸다. 얄미운 표정의 김성근 감독의 웃음이 떠오른다.  


김광현, 빨간색과 검은색, 김성근, 고기 굽는 냄새기 나는 잔디밭은 나에게 SK와 문학구장을 떠올리게 한다.   


타 팀의 시선으로 보는 SK는 역시 얄밉다. 잘하기도 하고 좋은 구단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저 내 눈엔 얄밉다. 아마도 그건 ‘잘하기’ 때문일 것 같다.


이번에는 (2019) 우리가 이겼다. 정규시즌에서 가까스로 따라잡아 뒤집기를 성공했다. 하지만 그건 이런 패배의 나날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또 모를 일이다. 이 잘하는 팀에게 또 뒷덜미를 잡힐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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