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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디 Jul 15. 2021

[미디어교실] 아이의 문해력(2/2)

어머님, 미디어교육이리터러시를 향상시킬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리터러시는 어떻게 향상될 수 있을까?  이전 글에서 리터러시가 글자에 국한된 능력이 아닌, 의미를 생산하는 능력이 보다 본질이라는 것을 살펴보았다. 결국, 리터러시 향상을 고민하기 위해서는 '의미'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



<삶 속에서 실천되는 리터러시>     


 우리는 흔히 단어의 `의미`나 ‘뜻’이 사전 속에 고정되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리터러시의 핵심이 되는 `의미`는 사전이나 개인의 머리에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단어가 실제 사용되는 실천 속에서 존재한다(Gee, 2015). 즉 `의미`란 언어를 사용하는 과정에서 사용자들에 의해 협상되는 무엇이며, 동시에 언어가 쓰여지는 공간과 그 언어를 사용하는 공동체 구성원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예를 들어 살펴보자. 우리가 편의점에서 ‘딸기우유’를 살 때 대부분 우리는 실제 생딸기가 들어간 우유를 기대하지 않는다. 딸기우유의 생딸기함량이 3%에 그치거나, 합성재료를 통해 딸기맛을 구현한 것에 불과하더라도 우리는 ‘딸기’우유라고 생각을 한다. 하지만, 생과일 전문점이나 카페에서 `딸기우유`를 상당한 가격을 지불하고 시켰을 때에는 이야기가 다르다. 우리는 ‘어느 정도’ 생딸기가 갈아져서 나오기를 기대한다. 편의점의 ‘딸기우유’처럼 극히 소량의 딸기-100ml 음료에 딸기 3g-만  있거나, 딸기맛 파우더를 사용했더라면 우리는 분노할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카페의 ‘딸기우유’가 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생딸기가 포함되어야하는데, 이 `어느 정도` 식품의약품법으로 정해진 것도, 그리고 모든 개인이 인정하는 특정한 수치로 존재하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우리가 분노하지 않을 딸기의 양은 단순히 개인의 숱한 생과일 음료 주문 경험과 ‘생과일주스는 이것이다’라는 사회 관습에 따라 결정된다. 이같이 의미는 고정된 무엇이 아니라, 협상되고 변화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단어의 사전적 정의가 어느 정도 ‘잠재적이고 가능한 의미의 범위’(Gee, 2015)를 결정해 주지만, 보다 정교하고 정확한 의미는 맥락에 따라 변화하고 협상된다.     

< "딸기우유"는 정확한 의미를 지닌 단어처럼 생각되지만, 어떤 상황에서 쓰이냐에 따라 다른 뜻~>

 이는 비단 ‘생과일주스’만의 문제는 아니다. 모든 법률이 글자로 명시되어 있음에도 해석을 둘러싼 수많은 논쟁이 발생하고, 연인사이에서 단어 하나로 감정이 상하는 일 이면에는 의미의 협상이 자리 잡고 있다. 리터러시의 본질인 의미 형성(design)은 개인의 머릿속이 아닌 삶의 공간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리터러시는 고요하고 정적인 과정이 아닌 역동적이고 살아있는 과정이다. 그리고 리터러시 교육 역시 리터러시 본연의 역동성을 살릴 때 향상될 수 있다. <당신의 문해력>에서의 핵심은 학생 개인이 책을 읽은 행위 자체보다는, 이와 함께 이루어진 독서 행위를 둘러싼 실천, 다시 말해 자신의 관심사에 기반하여 책을 선택하고 생각을 나누고 말하고 답하는 리터러시 실천(practice)에 보다 방점을 두어야 한다. 



<책을 넘어 리터러시로미디어 리터러시로 아이들 삶에 다가가기     


 아이들의 리터러시가 향상되기 위해서 중요한 것은 결국 `의미 형성`에 주체적으로 참여하는 경험이다. 모든 배움이 그러하듯, 리터러시 역시 실천과 경험 속에서 습득된다. 삶에서 마주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보를 습득하고 평가하며, 자신의 경험을 표현하고 행동할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이는 독서활동만으로는 분명한 한계를 지닌다. 리터러시 향상은 활자(text)에 갇힌 활동이 아닌 학생의 삶의 맥락을 대상으로 학습자의 지식 자산(asset-based pedagogy)을 바탕으로 공동체 안 협력이 이뤄질 때 가능하다(조병영, 2020).  

   

  리터러시 학습에서 아이들의 삶을 중심에 두면, 자연스럽게 미디어의 중요성이 함께 떠오른다. 아이들 삶에서 미디어가 차지하는 중요성은 어제 오늘일이 아니지만, 리터러시 교육에서 유독 미디어는 항상 그 대척점에 있거나 리터러시를 방해-특히 책읽기를 방해-하는 역할을 도맡았다(책도 하나의 미디어이지만, 이 경우에 항상 책은 미디어와 다르게 구분되며 동시에 유독 성인들의 총애를 받는다). 하지만 삶의 한 공간인 미디어를 문자중심 시각에서 벗어나 바라보면 리터러시(literacies)가 실천되는 생동감 넘치는 곳이며, 리터러시를 위한 풍부한 학습자원을 지닌 후원자(sponsor of literacy)로서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      


<인터넷 상의 다양한 짤(혹은 밈)은 단순한 유희의 과정으로 볼 수도 있지만, 특정 텍스트를 맥락에 맞게 재구성하여 사용하는 적극적인 의미 생산 활동의 하나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미디어 공간의 가능성이 유의미한 리터러시 활동으로 필연적으로 귀결되지는 않는다. 일부 기술결정론자들은 미디어 공간의 지닌 특성들로 인해 아이들이 보다 민주적이고, 주체적인 존재로 만들 것이라고 보았지만(Tapsocot, 1998; Prensky, 2001), 이는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미디어 공간에서 아이들의 삶은 복잡하고 아이들은 나름 고군분투하며 살아가고 있다. 미디어의 재미와 기술에 취약하여 무분별하게 사용하고 있기 보다는, 자신의 정체성과 친구들과의 관계, 평판 등을 생각하며 사용한다.(danah boyd, 2014). 물론 때로는 날카롭고 비판적으로 살아갈 때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위험을 과소평가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살아갈 수 이다. 마치, 성인인 우리가 삶의 복잡성을 이해하기 위해 때로는 노력하고, 때로는 기존의 습관에 맡기며 살아가듯, 아이들도 그렇게 복잡다단하게 살아간다. 그리고 우리 교사는 아이들이 삶의 복잡성을 이해할 수 있도록 안내할 수 있어야 한다.     


 리터러시가 삶과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으며 동시에 삶의 자리에서 공동체와의 관계를 통해 신장될 수 있기 때문에 리터러시 수업에서 아이들의 미디어 경험을 인정하고 끌어들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가장 효과적인 관점 및 방법은 미디어 리터러시라 생각한다. 근래 미디어 리터러시를 단순히 가짜 뉴스에 대한 해결책이나 과몰입, 과이용에 대한 해결책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이 역시 미디어 교육으로 길러질 수 있는 역량 중 하나임은 틀림없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미디어 리터러시는 아이들의 삶에 관한 이야기이며, 아이들의 삶을 교육의 중심으로 이끄는 학습자 중심의 교육 방법(pedagogy)이며 철학이다(Buckingham, 2003). 따라서 미디어 리터러시는 단순 미디어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존재하기 보다는 ‘아이들의 삶’을 중심에 두고, 보다 본질적인 소통과 시민성 증진을 위한 보편적 능력으로 바라보고 접근할 필요가 있다. 아이들의 삶을 인정하고, 리터러시에 대한 보다 폭넓은 관점을 취할 때만이 고등문해력 역시 리터러시의 한 부분으로 향상될 수 있다.



<참고문헌>

 조병영(2020), 뉴리터러시와 전환적 의미 디자인 - 융복합 문식 환경 속 국어교육의 실천 방향 탐색 -, 

 Gee, J.(2015), Social Linguistics and Literacies Ideology in Discourses / 사회 언어학과 서로 다른 리터러시 - 담론과 이데올로기, 김영란,이정은,박혜영,김해인,이규만 역(2019), 사회평론아카데미.

 Tapscott, D. (1998). Growing up digital: The rise of the net generation. McGraw-Hill.

 Prensky, M. (2001a). Digital natives, digital immigrants. On the Horizon, 9(5), 1–6.

 danah boyd. (2015), It's Complicated: The Social Lives of Networked Teens. Yale University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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